자녀가 부모를 어떤 아버지 어떤 어머니로 인식하냐에 따라 그 자녀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아버지는 엄하고 어머니는 다정다감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없지 않다. 저의 집의 경우는 전자에 해당한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자녀들이 저를 어려워하는 것 같다. 가끔씩 후회하곤 한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떤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이와 비슷했다. 구약 역사를 보면, 정말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감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했는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다윗을 비롯한 히스기야, 요시야 왕들을 제외하곤 여호와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섬기는 척 만 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했다. 결과 백성은 타락하고 배교했다. 그런 왕에 대하여 이미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예언하셨다. 그리고 왕을 달라고 하는 백성의 요청을 섭섭해 하는 사무엘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삼상 8: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이렇게 시작된 이스라엘의 역사는 사울, 다윗, 솔로몬을 거쳐 분단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루었다. 북조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 앗시리아에 멸망했고 남조 유다는 주전 687년 바벨론에 멸망했다. 호세아는 북조 이스라엘의 번영기에 흥청망정 살면서 우상 숭배와 괘락에 빠진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한 선지자다. 본문은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라는 말씀(호 14:1~3)에 대하여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전하시는 구원과 회복을 보장하시는 약속이다. 

 

1. 간곡한 사랑의 호소 


하나님은 결코 택하신 당신의 백성을 내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회개하며 주께로 돌아오는 자의 간청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얼마나 큰 축복인가? 우리 하나님은 자신의 비참함을 깨닫고 회개하며 나오는 자를 기꺼이 받아주시고 품어주시고 축복해 주신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 점을 말씀한다. 반역과 배교로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나님은 극도로 분노하시며 심판하시겠다고 경고하셨다. “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이는 너를 도와주는 나를 대적함이라(호 13:9)”에서 분명하게 지적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무한한 사랑으로 자식을 잊지 않으시고 제발 돌아와 회복할 것을 호소하셨다. 
* 호 14: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어떻게 회개할 것인지를 세밀하게 가르쳐주셨다. 그럴 때 어떻게 그들을 대응하겠다고 약속하셨다. 네 입으로, 행위를 뉘우치고, 입술의 열매를 드리겠다고 구체적으로 회개하며 주께로 돌아올 것을 요청하신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시다. 그러기에 회개할 때 대충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이미 하나님은 내가 무엇을 했는지 다 알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회개는 그 하나님 앞에 나의 입으로 이실직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비유하신 탕자의 경우를 보자.
* 눅 15:18~21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았다. 이미 그 아들이 자신의 무슨 잘못을 했는지 인식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를 무조건 품어 맞아주었고 목욕을 시키고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워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다. 

그럴 때 주께서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시겠다(4절).”고 말씀한다. 

여기서 “패역” 이란 말(mushuba, apostacy)은 불신과 배신 그리고 타락과 배교의 의미가 없지는 않으나 원문의 의미는 ‘등을 돌려 떠난 행위’를 의미한다. 그러나 영어 성경(NIV)에서는 변덕(waywardness) 으로 번역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반역과 패역의 행위를 회복할 수 없는 배신으로 보지 않으시고 변덕 정도로 보신 것으로 의역했다. 흥미로운 대목이다. 성도는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부모는 결코 자식의 행위를 자신을 떠난 행위로 보지 않듯이 하나님은 택한 백성의 배교를 완전히 하나님을 떠난 것으로 보지 않으시고 끝까지 기다리시고 인내하시며 돌아오기를 기대하신다. 성도가 신실한 회개로 나아갈 때 불안과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배려하시는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의 모습이다. 그러기에 성도는 자신의 삶의 모습에 대하여 항상 돌아보며 점검하여 얻는 내용을 가지고 변명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 힘써야 한다. 

 

2. 이슬 같은 하나님 축복


그럴 때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 호 4:5~7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저희는 곡식 같이 소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1) 복의 근원
하나님께서 스스로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다(I will be like the dew to Israel!)’ 무슨 의미일까?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이 말씀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당시 팔레스타인의 기후와 환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팔레스타인의 기후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보통 4-9월까지가 건기고, 10월부터 3월까지가 우기에 해당된다. 그래서 4월초에 오는 비를 ‘늦은 비’ 9월 중순에 오는 비를 ‘이른 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모든 생물은 비가 오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그런데 6달이나 되는 건기 동안 식물이 어떻게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이슬 때문이다. 이 시기 초목과 농작물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이슬이다. 팔레스타인은 지중해와 요단강의 습도와 심한 일교차 때문에 연간 260일 이상 이슬이 내린다고 한다. 강수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땅에서 이슬은 농작물에 절대적인 생명수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이슬과 같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북조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소생시켜 생존하고 번영하는 복의 근원이 되겠다는 말씀인 것이다. 

2) 이슬의 복
재미있게도 족장 이삭은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인 야곱에게 이런 축복을 했다. 
* 창 27: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건조한 가나안에 이슬은 생존에 필수다. 이삭은 야곱의 일생에 하나님께서 하늘의 이슬로 땅의 기름짐으로 풍성함을 누리는 인생이 되길 축복했던 것이다. 이슬과 같은 하나님으로 이스라엘이 누리게 될 축복이 무엇일까? 본문에서 “저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5~6)”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에서 이슬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이 누리게 될 복이 어떠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원하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은 이슬과 같은 하나님으로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다. 그것의 가지는 옆으로 넓게 퍼지고, 감람나무 같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레바논 백향목 같이 향기롭고 강건하게 된다. 백합화는 참으로 향기롭고 아름답다. 이러한 묘사가 바로 이스라엘이 장차 누리게 될 아름다움과 고상함 그리고 영광스러움을 의미한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철이 들어 삶이 바뀐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민족과 국가가 될 것을 보장하시는 축복의 말씀이다. 

세상적인 삶의 방식을 버리고 온전히 예수를 믿어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이슬과 같은 하나님께서 충성하신 은혜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신실한 성도는 이 약속을 굳게 믿어야 한다. 대충 회개할 것이 아니라 철저한 회개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하나님께 돌아올 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전의 행위를 반역으로 보지 않으시고 변덕으로 보셔서 기꺼이 품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을 깊이 인식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일고 신뢰할 때 그 성도는 튼튼하고 맛있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자가 될 것이다.

모세가 비스가산 위에서 최후로 가나안 복지를 바라다보면서 지은 노래가 있다. 
* 신 32:1~3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  

이슬을 낮에 내리지 않는다. 밤에 새벽에 그것도 조용히 내린다. 성도에게 있어서 이슬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 우리의 죽음 영혼을 소생시키고 성장하게 하고 열매를 맺고 향기를 발하게 한다. 이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새롭게 되고 생동감과 역동성이 있고 지침이 없이 강건하게 생을 살아가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 살게 된다는 의미다.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예언하라 명하셨다. 
* 사 26:19 티 끝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

성도가 이슬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복을 누리며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때 죽어가던 세상이 변할 것이다. 살아날 것이다. 주께서는 이미 성도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며 빛이라고 규정해 주셨다. 하나님의 이슬을 듬뿍 받아 주변에 흘러넘칠 때 썩어 죽어가는 곳에 새롭게 소생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어두움 속에 헤메는 자들이 밝은 빛의 세상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 그런 가정이 예수를 믿는 사람이며 가정인 것이다. 
* 시 133:1~3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 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하나님께로 돌아온 성도에겐 마치 헐몬 산에서 흘러넘치는 이슬과 비와 같이 그 집안에 풍성한 복을 누리며 평안(샬롬)의 향기를 주변에 널리 풍기게 될 것이다. 바라기는 여러분과 가정이 예수 안에서 풍성하게 행복과 복을 받아 누리는 가정이 되길 바란다.  

 

3. 확실한 신앙고백과 헌신


진정한 회개와 고백으로 하나님께 돌아온 북조 이스라엘, 에브라임은 비록 하나님의 강력한 징계로 혼이 났기만 후에 하나님의 이슬의 은혜를 받아 진정한 신앙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 돌아보시고 풍성한 복을 허락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 호 14:8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내가 그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사람은 미련해서 실수를 하고 손해를 봐야 비로소 자신의 약점을 알게 되고 한계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게 된다. 북조 이스라엘 역시 그럴 것이다. 하나님의 강력한 심판을 경험한 후에 깨닫고 하나님에 나와 고백하게 도리 것이다. 세상의 우상과는 더 이상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나의 하나님입니다! 우리 역시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손해를 보고 창피를 당하고 환란을 겪은 후에 지혜로운 자는 다시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듯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런 경험을 통하여 더욱 하나님을 고백하게 되고 확실한 신앙을 갖게 되고 성숙하게 도리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 본 호세아서에서 북조 이스라엘의 타락상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호세아의 가정이 이를 잘 보여준다. 고멜과 같은 길거리 여인이 아내가 되고 누구의 자녀인지도 모를 자녀를 낳고 키우며 호세아는 당시 사회 속에서 하나님을 떠난 백성의 위선과 거짓 그리고 타락과 배교의 삶의 모습을 자신의 가정에서 보며 괴로워하고 낙심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흩어졌고(이스르엘), 긍휼을 받지 못했고(로루하마), 백성이 아닌(로암미) 상태애서 장차 회복되어 일치된 나라 이스라엘이 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풍성히 받아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통일된 이스라엘이 되는 하나님의 나라 회복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이는 그들 스스로 우상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라며 더는 우상을 섬기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백성이 되겠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푸른 잣나무같이 아름답게 온 세상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언제 이렇게 될 것인가? 예수께서 오셔서 그렇게 하실 것이다. 주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셨다. 
* 마 13:31~32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그렇다. 천국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우리가 천국으로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 복음을 믿는 자는 온 세상에 평안과 구원을 전하는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놀라운 경륜 가운데 우리를 예수 안에서 부르시고 회복시키시며 재생시켜 하나님의 뜻을 펼치며 살아가도록 지금도 부르시고 다루어 가신다. 

 

결론


살아계신 하나님은 지금도 사랑하는 택한 자의 인생을 다루어 가신다. 단련시키시는 것이다. 치시고 고치신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행위는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구원의 행위다. 이미 호세아는 이런 하나님을 깊이 알라고 강력하게 말했다. 
* 호 6:1~3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삶 속에서 힘들고 고통스러운가?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기 바란다. 그 힘든 상황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간섭하시고 다루시며 여러분을 온전하게 하는 과정이다 그 후에 여러분의 인생 속에 이슬 같은 복을 풍성히 퍼부어 주어 주실 것이다. 그러기에 성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은 힘써 알아야 한다. 말씀 속에서 그 하나님을 발견하고 만나고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진실한 고백으로 세상이 더는 나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고백할 때 하나님은 이슬 같은 복을 주실 것이다. 이 놀라운 은혜가 풍성하길 바란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놀라운 구원의 진리로 하나님께서 멀리 계시지 않으시고 우리의 삶과 생애 속에 함께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건조하고 목마른 인생 속에 풍성한 이슬로 축복해 주시겠다고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비밀을 깨닫게 하옵소서. 나 중심의 욕망 가운데 살아가는 죄 된 인생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아 예수 안에서 거듭나게 하시고 구원의 복된 인생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를 버리거나 외면하지 않으시고 치시고 고치시며 역동적으로 다루시며 이슬 같은 풍성한 은혜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고 고백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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