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구원의 종교다. “구원”이라는 말 자체가 “죄로 저주받아 멸망한 상태”를 전제로 한다. 성경이 창조 기사(창 1, 2장)와 타락(3장)을 짧게 기록하고 나머지 성경 전체를 구원과 회복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렇게 성경은 타락과 멸망을 전제로 구원의 방도를 계시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선지서는 바로 타락한 언약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고통과 좌절의 과정을 통과하도록 하시는 단계의 계시이라고 하겠다. 

그동안 강해해 온 호세아 예언의 결론 부분을 다루게 된다. 14장은 호세아 선지자가 전하는 9번째 설교이다. 호세아는 북조 이스라엘의 계속된 배교와 범죄에 대한 질책과 심판 경고에 대한 예언을 마감하고 회개를 권고하고(1~3절) 여호와의 회복을 약속한다(4~8절). 끝으로 예언에 대한 깨달음과 실천을 촉구하는 권면으로 마감한다(9절). 

본문은 호세아 선지자의 회개 촉구와 회복을 담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명에 따라 음란한 여인 고멜에게서 세 자녀를 얻었다. 이제 이들이 회복된 이름 즉 긍휼을 얻게 못하는 자(로루하마)가 긍휼을 얻는 자(루하마)로, 내 백성이 아닌 자(로암미)가 내 백성(암미)으로 풍성한 땅에서 반역으로 흘린 저주의 피로 얼룩진 이스르엘이 하나님을 이긴 이스라엘로 회복되는 소망을 담고 있다. 

 

1. 처참하게 망한 북조 이스라엘


히브리 성경에서는 13:16이 14:1에 해당한다. 13:16은 이렇게 되어 있다. “사마리아가 그들의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형벌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어린 아이는 부서뜨려지며 아이 밴 여인은 배가 갈라지리라.” 

잔인한 앗수르 군대에 비참하고 처참하게 멸망당하는 현장을 묘사한 말씀이다. 이러한 상황은 이미 엘리사 선지자가 앗시리아 왕 하사엘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사건 속에서 이미 예언된 사실이다. 아람왕 벤하닷이 병에 걸려 죽게 되자 엘리사가 문안을 가게 된다. 그 때 벤하닷이 하사엘을 시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맞으라고 명하게 되는 자리에서 그가 얼마나 잔인하게 백성들을 핍박하게 될 것인지를 예견한 엘리사가 한 말이다. 

이는 참신내기에서 승리한 이세벨의 경고에 도피한 엘리야 선지자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세 가지 명령을 받은 사안을 엘리사 선지자가 수행한 사건 중에 하나다(왕상 19:15~18). 엘리야가 수행할 세 가지 임무는 하사엘을 아람 왕이 되게 하고, 예후를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를 후임 선지자로 삼는 일이다. 그렇게 하라고 하신 이유는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처리하고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처리하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즉 역사를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시는 것이다. 

엘리사가 하사엘을 만나자 그가 얼마나 잔인하게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힐 것인지를 예측하고 눈물을 흘렸다. 
* 왕하 8:11~12 하나님의 사람이 그가 부끄러워하기까지 그의 얼굴을 쏘아보다가 우니, 하사엘이 이르되 내 주여 어찌하여 우시나이까 하는지라. 대답하되 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모든 악을 내가 앎이라 네가 그들의 성에 불을 지르며 장정을 칼로 죽이며 어린 아이를 메치며 아이 밴 부녀를 가르리라.

호세아 13:16은 바로 이 사건이 성취된 사실을 지적한다. 북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반한 죄의 값을 치러야 했다. 형벌로 칼에 엎드러져 끊어질 것이고, 어린 아이는 부서뜨려져 사지가 조각날 것이고(나훔 3:10; 시 137:9), 산모의 배가 갈라지는 잔혹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왕하 15:16; 암 1:3). 이로써 엘리사의 예언이 구체적으로 호세아를 통하여 성취되었음이 확인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실행하시는 것이다. 

 

2.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


앗시리아에 철저하게 망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호세아 선지자는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이는 단순하게 죄에 대한 진노와 처단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심을 보여준다. 여호와 하나님은 타락하고 반역하여 망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여전히 긍휼과 사랑으로 계속하여 구원을 선포하신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모습이다. 성도는 이런 하나님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고난을 겪을 때 단순하게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떠나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렇 때 일수록 철저한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으로 알고 소망을 가져야 한다. 

호세아는 처참하게 망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렇게 전한다. 
* 호 14:1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호세아는 너희들이 떠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호소했다. 이는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이다. 반복적인 말씀이다. 이미 그는 6장에서 회개할 것을 전한 적이 있다.  
* 호 6:1~3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구원의 복음은 분명하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전하는 것이다. 호세아는 이 복음을 계속 반복하여 전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구체적인 구원의 행위를 전하는 것이 복음이다. 6장에서 그는 하나님의 징계(찢으심, 치심), 회복(치유, 관리) 등 하나님의 구원 패턴(Pattern)을 반복적으로 전했다. 이는 변덕이 심한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과 긍휼로 구원하시는 끈질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전하는 메시지다. 하나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죄인인 우리에게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러한 하나님의 성격과 죄를 처리하시는 방식을 알고 하나님께 나아갈 것을 촉구했다. 

완전히 망한 북조 이스라엘은 오직 회개를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게 되었다. 회개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며 출발점이다. 성경은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제시한다. 세례요한이 전한 메시지가 회개이며(막 1:4), 예수께서 공생애 첫 일성이 회개를 촉구하며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 막 1:15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회개는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 하에 복종하겠다는 결단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후회와 뉘우침, 그리고 반성이 아니라, 이제까지의 살아온 삶의 태도를 버리고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예수께서 비유하신 탕자 비유에서(눅 15:17~20), 탕자가 비참한 상황 속에서 결단하여 “이에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겠다”고 다짐하고 결단에 옮기는 행위와 같고, 계시록에서 주께서 에베소교회에 명하신 말씀에서 확인된다. 
* 계 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러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베드로 사도는 회개(metanoeo, repentance)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육신의 몸을 씻는 것이 아닌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구체적인 행위가 회개라고 했다. 성경은 이를 세례로 설명한다(벧전 3:21c). 사도 바울은 세례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아 난 자로서의 확신에 찬 고백이며 선언이라고 주장한다. 즉 참된 회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구체적인 행위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 롬 6:3~4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3. 구체적인 회개의 과정


어떻게 회개할 것인가? 호세아 선지자는 회개의 구체적인 과정을 예시한다. 
* 호 14:2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이 말씀에서 회개의 몇 가지 단계를 생각하게 된다.   

첫째, 나의 말로  
* 호 14:2a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 와서 
여기서 말하는 “말씀을 가지고”는 성경 말씀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말씀은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명확한 말로 설명하라는 것이다. 그저 마음으로 잘못했지 라고 생각만 하고 반성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이실직고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결단을 실토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다. 사케오는 예수를 만났을 때 아주 구체적으로 잘못을 설명하고 어떻게 하겠다는 결단으로 회개했다. 
* 눅 19:8~9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곱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그저 “모든 것을 잘못했어요!” 뭉퉁거려 대충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조목조목 들어 잘못을 말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다. 또 진정한 회개는 그 어떤 예물과 제물로 해결하려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무엇을 드려 해결하려는 것이 회개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점검하고 결단한 것을 구체적인 표현하는 것이 회개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사보다 인애와 긍휼을 원하신다고 하셨던 것이다.
* 미 6:6~8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 천의 숫양이나 만 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둘째, 구체적인 고백과 실천으로  
회개는 구체적인 “아룀”으로 구성된다.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2b)."라고 설명한다. 이 말씀에서 보듯이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아주소서”라는 고백이 회개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실토와 고백을 담아 하는 회개가 선한 것이며 그 고백 즉 회개를 받아 달라는 간청이어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은 말씀과 기도다. 말씀과 기도라는 두 바퀴는 하나님께 나아는 수레가 잘 굴러가도록 하는 핵심이다. 거창한 수송아지와 수양으로 드리는 화려한 속죄물을 드릴 때 회개가 받아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입술의 참회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신다. 성경에서 대표적인 회개의 사례가 다윗의 경우일 것이다. 
* 시 51:16~19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 

하나님은 갚진 제물을 요구하신 적이 없으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제물은 진정성 있는 참회하는 마음이다. 

셋째, 온 마음으로 드리는 찬양으로
* 호 14:3c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히브리어 원문은 “가장 좋은 예물인 어린 수송아지인 우리의 입술로 지불하겠습니다.(I will pay young oxon our lips)"이다. 이를 영어 성경에서는 ”입술의 열매(the fruit of our lips, NIV, NASV, RSV), 찬양의 말씀(the word of praise our lips, JB), 입술의 맹세(the vows of our lips, ESV) 등으로 번역했다. 

하나님께서 받기를 원하시는 제물은 거창하고 비싼 제물이 아니라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의 제물이며 그로 인하여 갖게 되는 사죄의 은총에 대한 감격과 기쁨을 표하는 찬양을 기뻐하신다. 성도는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참된 거듭남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 진정한 내적 치유가 이루어져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기로 맹세하며 구원의 기쁨과 감격으로 찬양하게 된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런 제물을 원하신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와 찬양으로 이어지는 기쁨과 고백의 제사다. 

넷째, 고백과 헌신으로
말로만의 회개가 아니라, 반드시 ‘회개의 합당한 열매’로 제사를 드려야 한다. 
* 호 14:3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찌니라.

고백과 헌신에는 세 가지의 합당한 회개의 열매가 담겨있다.  
1) 환경과 상황의 지배로 부터의 해방: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이는 더 이상 세속적인 세력과 힘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결단이다. 성도가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면 이젠 더 이상 세상으로 되돌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출애급한 이스라엘 백성은 고통을 겪게 될 때 마다 애굽으로 되돌아가자고 외쳤다. 예수를 믿으면서 조금만 힘들과 어려우면 실망하고 세상으로 되돌아가려는 것을 하나님의 싶은 구원의 심정을 조금도 알려고 하지 않는 유치하고 어리석을 행위일 것이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진정한 성도가 될 수 있겠는가

2) 힘과 군사력을 의지하지 않음: “말을 타지 아니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세상적인 생각 속에서 군사력을 의지했다. 그러나 다 힘센 앗수르에게 망했다. 이들에게서 구원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심을 망각했던 것이다. 
예수를 믿기 시작하면서 받게 되는 유혹이 이전에 세상 적으로 살던 방식과 습관을 따라가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성도에게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2~3)”라고 규정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살전 4:5)”라고 경고한다.   

3) 세속적 우상을 버리는 것: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더 이상 신이라 하지 않겠다. 
이 모든 것에서 돌이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결단을 고백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 즉 입술의 열매이다. 자신의 이제까지 믿고 의지했던 것을 더는 믿지 않고 의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회개다. 지난날의 육체의 소욕을 버리고 성령의 소욕을 사모하는 결단을 하고 구체적으로 삶 속에서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 회개다.  
* 갈 5:16~17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더는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주의 백성으로서 살겠다는 고백 즉 입술의 맹세로 드리는 신령한 제사가 참된 회개다. 시편 기자의 고백을 보자. 
* 시 147:1~3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 도다.

 

결론  


구원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 구원을 수여하시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신앙이 바른 성도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나아가게 되는 길이다. 그에 맞게 북조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은 심판으로 끝나지 않고 회복의 과정을 거치신다. 이와 마찬가지로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로 전혀 무기력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서 희생시키시어 하나님과의 소통의 길을 마련하셨다. 히브리서 기자를 이 구속의 도리를 믿을 때 주어지는 놀라운 신분의 변화를 강조하며 성도에게 주어진 특권을 강조한다. 
* 히 4:14~16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호세아 역시 같은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정한 회개와 감사의 찬송을 촉구한다. 성도는 이렇게 자신의 죄인임을 인정하고 솔직하고 신실한 고백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이는 구체적인 행위가 수반된다. 은혜를 입고 혜택을 받은 것을 아는 자가 그냥 말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무엇인가 마음의 표현을 구체적으로 하게 마련이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진정한 회개를 원하시며 온전한 구원을 보장하시는 놀라운 말씀을 이 시간 듣습니다. 위선과 거짓으로 포장하지 않고 진정성 있는 구체적인 회개를 하게 하시고 우리를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망극하신 사랑과 긍휼하심을 믿고 주께 담대히 나아가게 하옵소서. 이것이 예수 안에서 얻게 된 새로운 신분임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나아가 참된 고백과 결단 그리고 구체적인 삶의 변화된 모습을 보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거룩하신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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