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해설

충족의 합리성에 따라 이성을 정의한다(2.11.1.)

억압이 없어지면 성욕은 에로스로 발전하려고 한다. 즉, 성욕의 자기 승화(self-sublimation)가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성욕이 더 강력하게 만족되고 다욱 강화되게 하는 지속적이고 확장된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가? 에로스는 깨어지지 않는 질서 속에서 영원토록 지속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인류문명과 인격까지도 에로스화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생산력의 발달로 노동시간과 노동에 투입되는 에너지가 감소함으로써 에로스가 힘을 얻으면 이것이 다시 노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노동을 에로스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된다면 인간의 의식과 문화도 바뀐다. 이성은 삶에 필요한 노동을 가능케 하면서도 노동이 관능적이 되도록 조직한다. 만족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이성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이 새로운 합리성이며, 이렇게 해서 이성도 에로스에 봉사한다. 이성은 관능적 이성이 되어야 한다. 인간의 모든 의식 속으로 쾌감이 침투하여(”쾌락원칙은 의식에 확장되어“) 인간의 질서는 만족의 질서가 된다. 이렇게 되면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에로스화된 사회가 이루어진다(eroticized community).

이러한 새로운 합리성은 이러한 원칙에 맞추어 노동을 분배, 혹은 재분배하고 새로운 위계질서를 만든다. 위계질서는 그 자체로 부자유한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적색 신호등에 길을 건너지 않도록 꼭 필요한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러한 질서를 세우는가에 대한 질문이 생기는데, 마르쿠제는 성숙한 개인이 이것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어떤 질서가 에로스를 충족시킬 수 있는지는 개인이 합리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성욕을 충족하는 도덕성(Libidinous morality: 성적 도덕성: 2.11.2.)

앞에서 관능적 이성, 사회의 에로스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성적 도덕성이라는 용어도 나와야 한다. 모든 것이 성적이 될지라도 여기에 질서가 없다면 사회는 당장에 무질서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성 본능은 선과 악을 모르는 단순한 충동일진데 이것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면, 어떻게 도덕성 대해 말할 수 있는가? 도덕 자체가 억압이 아닌가?

마르쿠제는 그럼에도 이것은 가능하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장애물이 오히려 성적 쾌감을 더해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성행위를 억제할 때 그만큼 긴장이 더 커지고 충족감이 커지는 원리와 같다. 심지어 프로이트는 성적 자유가 처음부터 억제되지 않는다면 완전한 만족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성적 욕구의 정신적 가치는 쉽게 얻자마자 그만큼 즉시 하락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성적 만족을 크게 하기 위해서는 장애가 필요하다(쉽게 성적 만족을 얻게 되면 그만큼 쉽게 정신적 만족이 사라진다. 어렵게 획득해야 그만큼 만족도 크다).“ 쾌락이 맹목적인 욕구 충족과 다른 점은, 쾌락은 즉각적인 만족으로 본능이 소멸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욕망이 충족되면 욕구가 사라지는 것)과 장애물을 만들어 더 깊은 성취감을 얻도록 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마르쿠제는 이것을 질서 있는 자유를 허용하는 관능적인 합리성이라고 한다.

그뿐 아니라 초자아도 단순히 현실원칙을 따르지 않고 원초아와 비밀스러운 협정을 맺는다는 정신분석적 이론도 있다. 젖먹이와 어머니 사이에 성적 관계가 존재하는데, 이것은 유아가 이에 적대적인 아버지의 거세 위협에 순응하여 이 관계를 끊으면서 자아는 성숙한다. 그러나 후에 이 관계를 회복하려는 충동이 발전한다[1]. 그러므로 초자아는 그 이후에도 가부장적 현실 속에서 투쟁하며 자아는 성장한다. 인간의 본능구조에 있는 이러한 콤플렉스는 성적 도덕성의 확립이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시간의 흐름에 대항한 투쟁(2.11.3.)

우리는 지금까지 에로스의 해방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 이제 마지막 장애물이 남았다. 그것은 죽음으로 끝나는 시간이다. 쾌락은 영원히 지속되기를 원하지만 죽음이 시간을 빼앗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를 좌절하게 한다.

망각은 과거의 고통을 잊게 하지만 기억은 충족의 시간을,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찾아준다. 행복과 자유는 항상 다시 찾은 시간과 관계있다. 그렇다면 기억은 시간의 지배에 승리하는가? 이러한 승리는 단지 인위적이며 실재가 아니다. 기억은 그것이 역사적인 행동으로 다시 표출되지 않는 한 비실재적이다. 그렇다면 어떤 해결책이 있는가?

에로스와 죽음 본능 사이의 관계에서의 변화(2.11.4.)

그럼에도 시간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죽음본능은 어떠한 긴장도 없는 지속적인 만족의 상태와 어떠한 결핍도 없는 상태를 추구하므로 에로스가 충족될수록 삶과 죽음의 갈등이 그만큼 줄어든다. 강화된 에로스는 죽음본능의 목적들을 흡수한다. 그러면 우리 삶에서 나타나는 우리를 초기 단계로 당기는 니르바나 원칙의 인력도 제거됨으로써 죽음은 더는 본능의 목적이 되지 못한다.

인류는 죽음에 대항하여 단호하게 싸워야 한다. 죽음에 동의하도록 하는 우리의 교육은 삶을 굴종과 포기로 이끈다. 이것은 문명의 억압적인 모습이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사실에 ”큰 거부“로 대항한다. 우리 삶이 완전히 채워졌고 삶이 에로스의 에너지로 충분히 채워졌다면,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죽음을 합리적으로 고통이 없도록 조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성과 본능이 동맹을 맺음으로써 가능하다. 인간은 이렇게 충만한 삶을, 에로스로 가득한 삶을 보낸 후에 자기가 선택한 시점에서 죽음의 길을 갈 수도 있다[2].

[부록]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해설

마르쿠제의 ”에로스와 운명“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기초로 하기에 용어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그의 저작에 계속 등장한다. 그러므로 독자는 용어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이 용어들은 그것의 타당성의 여부를 떠나서 이미 일반화, 상식화되었으므로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다. 이곳에서는 기본적인 것과 본서와 관계되는 것만 소개한다.

정신분석학(Psychoanalysis)은 프로이트가 원조로서 인간 정신의 구조와 기능, 활동에 대한 이론으로서 의식을 연구하는 심리학과는 달리 무의식적인 정신활동에 초점을 둔다. 무의식은 본능에 의해 지배되어 우리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행동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므로 무의식을 정신분석의 연구대상으로 삼는다.

목차:

1. 정신구조

2. 본능이론

3. 성심리 발달 단계

4. 방어 메커니즘

 

1. 정신구조

인간의 정신은 세 층으로 구분되어 있다: id, ego, superego (Es, Ich, Über-Ich; 원초아, 자아, 초자아). 인간의 행동은 이 세 가지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이드:

원초아는 인간의 가장 어두운 층으로서 그 내용물은 인간의 기본본능(생존본능, 성욕)과 욕구(명예욕,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 그리고 감정(질투, 미움, 신뢰, 사랑)이다. 원초아는 이 욕망에 따라 움직이며 자기 욕구를 눈치도 체면도 양심도 없이 무조건 성취하려고 한다. 이 욕구가 성취되어야 비로소 해소되어 평정을 찾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본능의 보수적 성향이라고 한다. 인간의 행동은 보통 자기가 의식하지 못한 채 이들의 발동에 따라 조종된다. 즉, 인간이 행동을 할 때 이드의 충동을 항상 의식하는 것은 아니다. ”이드는 우리 인식의 어둡고 접근할 수 없는 부분이다 … 끓어오르는 충동으로 가득찬 가마솥과 같은 카오스와 비교할만하다“(프로이트). 프로이트에 의하면 이드에서 성욕이 핵심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근본에서 항상 성욕을 만족하게 하려는 존재이다. 물론 우리가 이것을 항상 의식하는 것은 아니다.

에고(ego):

에고(자아)는 의식을 가진 인격을 의미한다. 자아의 요소로는 먼저 인지하고 생각하고 기억하는 의식 활동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이드의 요구와 수퍼에고, 사회적 환경을 끊임없이 중재해서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성숙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쾌락원칙이 아니라 현실원칙을 따른다. 이드는 이들 사이에서 교신하면서 잘 판단하여 본능의 욕구를 허락하거나 거절한다. 세 요소, 즉 이드와 에고와 수퍼에고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 교환한다. 원초아의 욕구가 자아에 의해 지나치게 억압되면 문제가 생긴다. 그러므로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적 문제 대부분이 이 밀어냄과 억압 때문에 생긴다고 보았다.

이렇게 자아는 현실을 관찰, 검사, 보존하며 현실과 화해함으로써 자신의 생존을 유지한다. 그 중요 기능은 이드의 본능적 충동을 조절 변경하며, 현실과 이드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자아는 이를 위해 쾌락원칙을 현실원칙으로 대체한다.

그러나 자아는 원초아로부터 성장한 것이므로 원초아의 흔적을 보존하고 있다. 이드와의 관계에서 자아의 과정은 이차 과정이 된다. 자아의 사고의 근원에는 (과거 원초아의 충동대로 살았던) '만족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현실원칙이 과거의 만족을 찾으려는 자아의 과정을 우회하게 하므로 (사정상 욕망을 직접 채울 수 없으므로 다른 방법을 사용하여 충족한다) 자아는 현실을 적대적인 것으로 경험하며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 우회 과정에서도 현실은 비록 수정된 만족이기는 하지만 만족을 제공하므로 자아는 삶의 파괴도 무릅쓰는 원초아의 충동을 거부한다.

수퍼에고(초자아):

초자아는 사회 규범, 도덕, 계명이 양심으로 형성된 정신층이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교육을 통해 습득되고 외부로부터 아이에게 심어진 사회, 특히 부모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초자아가 형성된 후에야 비로소 인간은 사회 규범에 맞게 행동하며 자기본능적 욕구를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 초자아는 자아가 열심을 내어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이기도 하다. 자아는 자기 이상인 초자아와 비교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지나치면 열등감을 갖게 된다. 초자아가 세운 계명을 어기면 죄의식을 갖게 된다. 초자아의 대부분은 의식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초자아의 내용이 의식되기 위해서는 자기 성찰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초자아는 자아와 함께 ”밀어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쾌락원칙과 현실원칙:

쾌락원칙은 욕망의 대상을 당장 소유하거나 해소함으로써 만족을 얻으려는 원칙이며, 행위의 결과를 계산하고 참음으로써 더 큰 만족을 얻으려는 태도가 현실원칙이다. 현실원칙은 쾌락을 추구하려는 이드(ld)의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욕구를, 현실 여건을 고려한 후 나중에 충족시키거나 혹은 단념시키는 자아의 활동 원칙으로, 현실원칙을 존중한다는 것은 현실 세계의 제약과 행위의 결과를 계산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충동이 야기하는 고통을 줄이려는 시도인데 시간적 연기가 더 큰 만족을 준다는 것이 다르다. 쾌락원칙과 현실원칙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현실원칙이 자아를 위축함으로써 본능들의 자발적인 발전은 정지되고 본능의 형태들은 어린아이의 수준에서 응고된다. 이러한 본능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각종 정신질환이 올 수 있다.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갈등의 요소를 의식 세계로 끌어와서 이 갈등을 없앰으로써 정신치료가 가능하다.

원초아(이드, Id)의 기원:

원초아는 인간 정신에서 가장 먼저 생긴 것이며 부분적으로는 타고났다. 신생아는 태어나면서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그는 태어나면 동물과 같으므로 원초아만 충족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입이 가장 중요하다. 그는 먹는 것과 입을 통해 느낀다. 또한 피부를 통해서도 느끼므로 따뜻하고 건조하고 부드러운 접촉을 좋아한다.

원초아는 시도 때도 없이 쾌락만을 추구하는 쾌락원칙을 따르므로 항상 성취될 것을 요구한다. 신생아는 욕구 충족을 느끼는 정도에 따라 만족감과 불만감을 체험하면서, 이와는 다른 욕구들과 감정이 형성된다. 즉, 그의 본능의 구조 및 무의식적인 성격이 형성된다. 유아에게 욕구가 지나치게 충족되거나 반대로 충족되지 않으면, 성격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아기는 자기 본능의 충동이 표출될 때 그것이 어떻게 충족되는지에 따라, 본능의 충동으로부터 감정과 욕구가 형성된다.

자아의 생성과 발달 과정:

신생아는 생후 몇 달이 지나면, 자기가 사물과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더 분명하게 인지하게 된다. 자기 육체의 경계선과 자기 감정에 대한 의식이 생긴다. 내가 누구인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얻으면서 자기의식을 내용적으로 채워나간다. 이러한 방법으로 원초아의 일부가 자아로 발전한다: ”자아는 원초아의 일부분이 외부 세계와 접촉하면서 영향을 받아 수정된 것이다. 그것은 원초아의 충동을 받아들이고 보호하기 위해 생성되었다“(프로이트).

초자아(superego)의 생성과 발달 과정:

이러한 자아의 발달 과정에서 또 하나의 정신적 실체가 등장하는데, 바로 초자아이다. 초자아는 부모에 대한 유아의 오랜 의존에 기인한다. 부모의 영향은 초자아의 핵심이다. 결국 초자아가 기존 도덕의 강력한 대표가 되고,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영향들이 초자아에 영향을 미친다. 부모와 부모의 사회적 대리인들이 개인에게 부과한 외적 제한들은 자아 속에 내사(內射)되고, 그것이 개인의 양심이 된다. 그러한 제한을 위반할 경우 죄의식이 생긴다. 자아는 대체로 초자아에 봉사하거나 초자아의 명령을 받아 억압을 수행한다. 그러나 억압은 곧 무의식적이고 자연발생적인 것으로 되고, 죄의식 대부분이 무의식적인 것으로 된다.

초자아가 발달하기 전에는 불안(Angst)이 초자아 역할을 한다. 아이는 부모 사랑을 받으면서 벌을 받아 부모의 사랑이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진다. 이를 통해 양심 불안의 전신인 어린이의 실제적인 불안이 생긴다. 부모의 양육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초자아로 바뀐다. 초자아는 소위 ”동일화“를 통해 생긴다. 이 과정에서 비교와 다른 자아와의 적응이 일어난다. 이러한 비교와 적응은 남아가 어머니를 둘러싸고 경쟁 대상자인 아버지에 대한 공격성이라는 마찰을 통해 일어난다. (여아와 어머니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초자아는 이제 공격성에 대해 균형을 잡아주는 균형추로서 자리 잡게 되고, 이것은 원초아에 대한 수동적인 공격(가치, 규범)을 통해 기능을 발휘한다. 따라서 초자아는 부모를 대신하여 생기는 것이며, 이것은 자아 안에 있는 상급 심급이다(고등법원의 결정을 되돌리는 대법원과 비교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초자아는 교사들이나 모범적인 사람의 영향을 받게 된다.

긍극적으로 초자아는 원초아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으로서 프로이트는 도덕과 양심을 감정 세계의 요소로 본다(Elemente der Gefühlswelt). 이로써 그는 도덕과 양심을 이성과 연관시킨(Faktum der Vernunft) 칸트와 완전히 구별된다.

이렇게 비합리적인 생물학적 본성을 충족하려는 원초아와 합리적인 사회의 요구(초자아) 사이에서 이것을 중개하면서 살아야 하는 자아는 갈등과 고통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 사회의 요구, 즉 도덕과 노동 법칙을 따라야 사회가 안정되고 문화가 진보를 이룬다. 그런데 그 대가로 많은 규정을 만들어 죄의식을 늘이고 본성의 성취, 즉 행복을 줄일 수밖에 없으므로 이 이론을 세운 프로이트는 비관주의자이다.

2. 본능이론

본능(Trieb)이란 목적 지향적인 정신적 힘이다. 본능에는 대체로 긴장감이나 욕망, 불쾌감이 동반하므로 그것이 항상 충족되기를 요구한다. 이것이 Instinkt와 다른 점이다. 본능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이것이 더욱 강렬해지고 그 결과 지각과 사고력이 제한된다.

본능을 발생 시기에 따라 분류하면 원초적 본능(primäre Triebe)과 후천적 본능(Sekundärtriebe)으로 나뉜다. 원초적 본능은 타고난 것으로서 배고픔, 목마름, 성욕과 같이 생존을 위한 본능이다. 후천적 본능은 물욕, 권력욕과 같이 명망과 안정을 찾는 욕구로서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것이다.

본능을 기능 면에서 분류하면 삶 본능(eros)과 죽음본능(thanatos)로 나뉜다. 이 두 가지 본능은 본서에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와 같은 구실을 하므로 그 의미를 잘 파악해야 한다. 프로이트에게는 이 두 본능이 인간의 행동을 규정하는 원초본능이다.

삶 본능(Eros): 삶 본능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식욕, 성욕과 같은 생물학적 욕구 충족을 요구한다. 이것은 육체적 접촉이나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이 욕구를 충족함으로써 쾌락을 얻는 모든 생각이나 행동을 일으킨다. 프로이트는 삶 본능에서 리비도(성욕)를 근본적인 것으로 보았다. 리비도가 인간 성격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 프로이트는 인간 성격 발달의 역사를 전부 성기와 관련해서 설명한다(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복기, 생식기)

죽음본능(Thanatos): 죽음본능은 생명체가 무기물의 상태, 즉 부동(不動)과 죽음의 상태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생명체는 태어나자마자 주위와 갈등이 시작하므로, 태어나기 전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니르바나상태)가 가장 편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죽음본능 이론으로 여러 가지 심리현상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반복강박증, 보존하고 무변화를 추구하는 성향 등. 모든 사람은 죽음에 대한 무의식적인 소원이 있다. 죽음본능은 공격성(살인, 자살, 잔인함)으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죽음본능과 삶 본능은 서로 혼합되어 있다. 보통 에로스가 이 죽음 본능을 제압하고 있다.

리비도(성적 에너지/ 성욕):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리비도는 중심 개념이다. 그는 이 말을 단 하나의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간단하게 성적 에너지, 성욕으로 정의한다. 그가 대부분 이 의미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리비도가 집중적으로 모이는 곳이 성감대이다. 그런데 이 리비도는 문화적 영역에서도 승화되어 나타난다. 즉, 성욕과 관계 없어 보이는 인간의 활동도 성적 에너지가 전환된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그의 이론은 pansexualism(모든 욕구를 성욕에 뿌리를 두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 리비도는 어린이 시절 여러 발달 단계를 거치면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리비도 발달 단계에서 일어나는 장애가 성인이 되면 여러 병리학적 문제를 일으킨다.

마르쿠제는 자주 리비도적(libidinous)을 sexual과 구분해서 사용하는데, 양자는 같은 성욕을 말하지만 sexual은 성기 사용과 관련되고, 리비도는 성기뿐만 아니라 좀 더 광범위한 성욕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유아와 어머니 사이에 libidious union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성기를 사용하지 않는 성적 결합을 말한다.

3. 성심리 발달 단계(psychosexual developmental stage)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성격은 사춘기까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5단계를 거쳐서 발달한다. 이 발달에 리비도(성욕)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리비도는 사춘기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쳐서 서서히 발달한다. 단지 어린이의 성욕은 성인의 그것과 다른 형태로 나타날 뿐이다. 이것이 프로이트의 획기적인 이론이다. 성인의 성욕은 주로 성기와 관련되어 있지만 어린이는 성기뿐만 아니라 다른 욕망, 안락함, 관계 등으로 그리고 자기 몸을 체험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즉, 어린이의 리비도는 알아나가면서 호기심을 가지고 자기 몸을 체험하는 것으로 나타나므로 성인의 성욕과는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그 근본은 리비도이다. 따라서 유아(어린이)도 리비도의 존재, 즉 자기 성욕을 표현하는 존재이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 프로이트는 각 단계에서 장애가 생기면 이것이 성인이 되어 각종 심리적인 병을 일으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심리치료를 위해서도 이것을 알아야 한다. 어린이가 성심리학적으로 잘 발달해야 건강한 성인이 될 수 있으므로, 문화마르크스주의는 어린이의 성욕을 억압하지 않고 자유로이 펼치도록 도와주려고 한다. 동성애 경향도 일찍 발견하여 이것을 억누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발달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아이가 어른과 성행위 하고자 하는 욕망도 억누르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이들은 소아성애도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성감대가 나이에 따라 이동함에 따라 심리 발달 단계가 구분되고 발달한다.

1). 구강기(0-1세)

유아는 모든 것을 입을 통해 탐색한다. 이 기간에는 유아가 주위 환경을 입과 혀와 입술로 지각하고 탐구한다. 유아는 자기 손가락을 빨기도 하고, 입에 들어오는 음식을 테스트해보는 것을 좋아한다. 어머니의 젖가슴을 빠는 것도 쾌감과 만족감을 준다. 빨아당기면서 긴장을 해소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적 신뢰가 형성되므로 이 단계는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서 장애가 생기면(고착되면) 나중에 성격 장애가 생긴다.

2). 항문기(1-3세)

항문기에는 성감대가 구강에서 항문으로 바뀐다. 유아는 배변을 통해 쾌락을 느낀다. 그는 괄약근을 통제하며 이를 통해 어느 정도 정결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기 시작한다. 즉 배변을 통제하여 외부세계에 적응하는 것을 처음으로 배워나간다. 생후 첫해에는 아이의 욕구가 부모를 통하여 최대한 충족되지만, 배변 훈련시기부터 아동은 차츰 욕구 충족이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으며 거부되기도 하고 따라서 유예시켜야 함을 배운다.

이 과정에서 그에게 외부의 억압(강제)이 있으면 장애를 받아 성격장애가 온다. 지나치게 강요하면 항문에 고착현상이 와서 후에 강제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다. 즉, 아끼고 보존하려는 인색함이나, 지나치게 깨끗함을 추구하는 결벽증, 남을 지나치게 통제하려는 경향, 사디스트적인 복수심, 강제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다.

3). 남근기(phallic stage, 3~6세); 오이디푸스기

(오이디푸스는 자기 아버지인 줄 모르고 어느 남자와 결투하여 그를 죽인다. 나중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서 그의 어머니인 테베의 여왕과 결혼하여 왕이 된다. 나중에 모든 것을 알게 된다. 어머니는 목을 매어 죽고 자기는 눈을 침으로 찔러 장님이 된다는 신화이다).

이 때는 성기가 성감대가 되므로, 성욕이 성기를 통해 자극되고 충족된다. 아이가 자기 성기를 탐색하고 성기와 놀이를 한다. 또한 이성 성기에 관심을 많이 가진다. 이 시기에 남아는 여아에게 남근이 없다는 것을 알고 놀란다. 남근이 없는 것을 벌로 보고 그는 거세공포증을 가지며, 여아는 반대로 자기에게 남근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남근을 선망한다.

이 시기의 중심 주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다. 이를 통해 아동은 자기와 성이 같은 부모에게 경쟁심을 느낀다. 남아는 어머니를, 여아는 아버지를 더 좋아한다. 이 시기에 나타나는 콤플렉스 현상은 남자아이가 자기를 아버지와 동일시함으로써 극복된다. 이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이기지 못하면 신경증과 강박증이 생긴다.

4). 잠재기(latency stage, 6~12세)

잠재기에는 성욕이 더는 발전하지 않는다. 아동은 이 시기에 성욕을 억제하거나, 친구, 취미 등 다른 것에 더 관심을 끌게 된다.

이 시기에는 아이들이 다른 성의 아이들을 멀리하고 동성의 친구를 더 좋아한다. 리비도는 공부와 놀이로 승화된다. 수치심이 자라고 부모를 멀리한다. 부모와 육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싫어한다.

이 시기에 환경의 요구를 받아들여 쾌락 원칙을 버리고 현실 원칙을 따르며, 아버지의 권위와 금지 또는 양심에 따라 초자아(사회적 도덕적 자아)가 형성된다.

5. 성기기(12세 이후)

이때는 사춘기로서 성호르몬이 많이 나와서 성욕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다시 회복되면서 강화되어 이성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 성욕은 유아기의 것이 아닌 성인의 성욕이다. 육체와 지성은 빨리 성장하지만, 감정의 성숙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사춘기에는 갈등이 많고 활력이 넘치고 내적으로 불안한 시기이다.

이때부터는 성적 환상이 생기고 자위행위를 시작한다. 남아는 첫 사정을 경험하고 여아는 월경을 시작한다.

사춘기는 성적 충동을 정상적인 성욕으로 통합하는 시기이며, 정서적 해방과 독립을 추구하는 심리적 이유기이다. 이전 단계들에서보다 약하기는 하지만 이 단계에서도 갈등이 있다. 그러나 이전의 어느 단계에 고착되지 않았다면 이성과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 이성 관계와 또래 관계를 맺기, 학문, 예술 등에 몰두하기 등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활동을 통해 만족을 찾고, 원시 자아의 충동을 승화시킨다.

처음의 세 단계에서는 자신의 신체 부위에서 만족을 추구하므로 전성기기(pregenital stage: 0-6세)라고 한다.

4. 방어 메커니즘(defence mechanism)

방어 메커니즘이란 서로 충돌하여 일어나는 갈등을(욕구와 윤리의 충돌) 심리적으로 잘 극복하여 갈등이 없게 하는 정신적 활동을 말한다. 방어 메커니즘은 병적 행동이 아니다. 대부분 그것은 갈등의 상황에서 내적으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도록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갈등이 없는 삶을 위해 방어 메커니즘을 잘 사용해야 한다. 이것은 긴장을 처리해서 심리적인 평정을 유지하게 하는 일반적으로 자아의 무의식적인 기능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미성숙한 방어 메커니즘 때문이다. 자기의 심리적 평정을 위해 다른 사람을 심리적으로 관련시키는 것이 방어 메커니즘이다(예: 동일화).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갈등의 원천을 왜곡, 대체하거나 판단하는 심리작용을 일으킨다. 이것이 과다하게 사용되면 정신 병리 현상을 일으킨다.

이것은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사용되므로 자아 방어 메커니즘이라고도 한다. 방어 메커니즘의 종류는 상당히 많은데, 우리는 본서와 관련된 범위에서만 살펴본다.

밀어냄(억압: Verdrängung): 밀어냄은 가장 중요한 방어 메커니즘으로서, 자기가 원하지 않는 원초아의 충동을 자아와 초자아가 무의식의 영역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불현듯 나타나는 불쾌하고 괴롭히는 기억, 수치심을 일으키는 생각이나 소원, 죄의식을 의식의 영역에서 쫓아내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해 자아는 보호된다. 이것도 보통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그런데 자기가 밀어내어 무의식에 있는 것은 꿈에 다시 나타나거나 보상 행위로 나타나기도 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억압된 것은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는 돌아와서 정신적으로 영향을 준다(억압된 것의 회귀: 억압된 것의 귀환). 이것이 큰 불안이나 행동장애를 일으킬 정도로 커지면 병이 된다.

이 밀어냄은 보통 ‘억압’으로 번역되는데, ‘밀어냄’이 더 정확한 번역이다. 프로이트가 사용하는 밀어냄이라는 개념은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억압이라는 용어와 다르므로 구분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다. 

퇴행: 퇴행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메커니즘으로서 보통 무의식적으로, 자아의 기능이 발달 과정에 있을 때의 상태(미성숙의 상태)의 자아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이 때는 미성숙한 생각이나 행동, 표현들이 큰 문제 없이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위협적인 현실에 직면해서 감당이 어려우면, 책임감이 적었던 이전의 발달 단계로 돌아가서 행동함으로써 불안이나 위협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인이 되어서 외부의 요구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릴 때 하던 반응을 취함으로써 안정적인 과거로 돌아가는 것(퇴행)이다. 이 경우에 문제는 일시적으로 해소하지만, 이것이 계속되면 성격 장애가 형성된다: 의존적, 우유부단, 도전에 약함. 일찍이 기저귀를 뗀 아이가 동생이 생겨 부모의 관심이 그에게 가면 갑자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것도 퇴행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유아 때에 변을 보면 부모가 사랑으로 이것을 처리해주었기 때문이다. 어린이에게 잘못을 꾸짖으면, 그가 갑자기 더 어릴 때의 행동을 하는 것도 퇴행이다. 과거 유아시절 그런 행동을 했을 때 부모가 기뻐했기 때문이다.

승화: 성취하기 어려운 욕망이나 소원을, 사회에서 인정받거나 고상하게 보이는 활동을 통해 대리 만족을 얻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술, 과학, 음악, 스포츠에 심취하거나 일에 열중한다. 과도한 욕망으로 정신 장애를 일으켜 문제가 되면, 치료를 위해 각 욕망에 맞는 승화 방법을 제안한다. 예를 들면, 공격적인 사람은 스포츠를 통해, 성욕이 강한 사람은 예술을 통해 승화시킨다. 프로이트는 문화 발전에서 승화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으며, 마르쿠제는 이 이론을 따른다. ”승화는 사회적 가치에 맞추어 목표를 수정하고 대상을 변경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합리화: 자기의 부정적인 행동에 합리적인 이유를 붙여서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

동일화: 타인의 행동이나 행동 방식을 받아들여서 내면화하는 것. 자기가 존경하는 혹은 공개적으로 사랑받는 사람(스타)을 모방하는 것. 이와 반대로 자기가 두려워하는 사람을 닮아가는 예도 있다. 외부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자기가 두려워하는 특정인의 어떤 행동이나 습관, 가치관을 자기 인격 속으로 내면화하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이 외부에서 오는 두려운 인물로 인식되지 않는다. 예: 자기가 두려워하는 상관의 표정을 닮아간다. 그 이유는 자기를 그 상관과 동일화함으로써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투사: 자기도 인정할 수 없고/없거나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자기 감정, 소원, 충동 등을 다른 사람이나 그룹에게 투사하는 것. 예: 누구에게 복수하고 싶을 때, 가상의 사람을 만들어 가상으로 그에게 복수하게 하는 것. 이 경우 자기가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으므로 자기는 그 죄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미주]

[1] 이것은 근친상간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이것을 허용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2] 이들은 자살도 자유 죽음(Freitod; freedeath)이라는 말로 포장한다.

송다니엘 목사(유럽종교개혁연구소) 이메일 daniel.song@gmx.de
송다니엘 목사(유럽종교개혁연구소) 이메일 daniel.song@gmx.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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