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희 목사의 몸과 발로 쓴 “다시 원형복음으로” 시리즈 ④

두 개의 패러다임

서구 사회를 움직인 움직이는 두 개의 패러다임이 있다. 그것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다. 헬레니즘은 인간이 기준이 되는 인본주의라면. 헤브라이즘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대로 사는 신본주의다. 그리스도인은 헤브라이즘의 연장선에 있다. 세상은 헬레니즘의 가치관을 갖고 있다. 서구 사회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국가가 많지만, 지금은 헬레니즘이 거의 지배하고 있다. 이것은 오랜 시간을 통하여 패턴화되었다. 지금은 서구 사람들뿐 아니라 세계의 대부분의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패러다임이 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모든 것을 인간 방식으로 바라본다. 이것이 한마디로 본 헬레니즘 사고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모든 것을 인간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헬레니즘 문화가 매력적이다. 하지만 영혼을 죽이고 결국은 멸망에 이르게 하는 헬레니즘 문화는 아주 위험하다. 헬레니즘의 마지막은 인간이 신이 되는 것이다. 애굽의 파라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 로마의 가이사는 모두 스스로 신이라고 생각하는 교만함은 모두 헬레니즘에 속한 모습이다.

 

세상과 교회까지 지배하고 있는 헬레니즘

세상의 모든 영역은 헬레니즘의 문화와 철학이 뿌리가 되고 있다. 헬레니즘은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고 현세적이며 영적인 부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하나님이 만든 세상을 자기 기준에 따라 분리한다.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것을 이분법으로 보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선택하는 문제를 지니고 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욕심 때문이다. 헬레니즘 문화가 계속 지배하면 인간의 개인주의가 지배함으로 시기와 질투와 살인과 경쟁 등으로 갈 수밖에 없다. 헬레니즘 문화에 지배받은 나라는 모두 역사 속에 사라졌다. 전쟁과 싸움과 모함과 암살이 쉬지 않고 인간을 뒤덮는다. 처음에는 매력적이지만 나중에는 인류를 패망하게 한다.

척 콜슨은 교회란 무엇인가?”에서 두 세계관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필자가 제시하는 내용과 같다.

인간 안에 있는 헬레니즘 철학과 문화와 삶의 양식은 악한 것들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악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인간중심인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본받지 말라고 한다. 우리의 삶 속에 깊게 들어온 헬레니즘 문화와 방식은 인본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미 우리 속에 있는 이런 삶의 양식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뼛속 깊게 뿌리 박혀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자기를 드러내는 죄와 사망의 법에 해당된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인간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도 가만히 들어와 교회의 방식 중에 많은 것이 헬레니즘에서 차용한 것들이 많다. 이것들은 예수를 믿어도 삶의 변화를 힘들게 하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헬레니즘화 된 유대인

신본주의 같은 인본주의 유대인은 본래 헤브라이즘을 이어온 신본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 역시 침묵 시기를 거치면서 거의 헬레니즘화 되었다. 외적으로는 헤브라이즘이지만 내적으로는 헬레니즘화 되었다. 얼핏 보면 신본주의를 주장하지만 실제는 인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함으로 인본주의 방법을 사용했다. 식민지하에 있는 유대인은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적용했는데 그것이 헬레니즘 방법이다. 유대인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민족인데 인간적인 생각을 따랐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의 방식인 하스몬 왕조를 만들었다. 이방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마치 사사 시대에 왕을 달라고 하면서 자기들의 왕을 세운 것과 같다. 그리고 토라를 연구하는 탈무드 교육서를 만들어 나중에는 성경보다 유대교를 전파하는데 더 우선을 두었다. 지금도 토라보다는 탈무드 구전 율법을 배우는데 더 치중하고 있다. 성경보다 장로의 유전과 인간의 법을 더 우선시하고 있다. 결국 그들이 만든 법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잘못을 범했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chabad.org/library/article_cdo
이미지 출처 – https://www.chabad.org/library/article_cdo

유대인은 성경을 따라 생활하기보다는 자기만의 분파로 헬레니즘화 되면서 변질되었고 결국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혼합화가 일어났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신앙을 강조하지만 방식에서는 많은 부분이 헬레니즘 방식을 취했다. 그것은 유대교는 종교화되면서 변질되었고 세상 사람의 모습과 비슷했다. 당시 유대인의 모습을 향해 예수님은 화 있을진저라고 책망했던 것도 이런 모습 때문이다. 어떻게 유대교가 은연중에 자기도 모르게 헬레니즘화 되면서 변질되었는지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것은 얼마나 헬레니즘의 영향이 무서운가를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가 유대교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에세네파. 셀롯당으로 나누어져 때로는 서로 반감을 갖다가도 예수를 죽이는 일에는 함께 힘을 합치는 현상이 발생한다. 모두 헤브라이즘의 본질을 벗어나 헬레니즘화 된 것이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헬레니즘화 된 유대교의 모습은 그들의 종파를 통해서 분리주의가 나타났다. 헬라가 지배하는 400년의 긴 침묵 시대를 거치면서 다수의 유대인은 믿음을 이어가지 못했다. 유대인들 역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안으로 헬레니즘을 방식을 도입하여 생존을 모색했다. 그들 중심으로 지금의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이 되었다. 유대인의 모습 중에 헬레니즘 방식이 많이 담겨져 있다. 그들 역시 인본주의에 물든 것이 많다. 유대인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이런 점에서 위험하고 그들속에 있는 헬레니즘 방식을 조심해야 한다.

 

누가 헤브라이즘 원류를 이어 오고 있는가?

그렇다면 누가 성경적인 헤브라이즘 방식을 이어 왔는가? 그것은 남은 자들이다. 믿음을 지킨 유대인들이다. 그들은 예수를 믿고 복음을 받아들였다. 요셉과 마리아, 시므온과 안나, 세례요한,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루살렘교회를 이룬 유대인 성도들이다. 그들은 끝까지 성경적 헤브라이즘을 지켜온 사람들이다. 지금 필자가 말하는 헤브라이즘은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 방식이 아닌 믿음을 지키고 예수를 믿는 유대인의 방식을 의미한다. 유대인이었지만 유대교를 따르지 않고 믿음을 지킨 바나바와 바울과 실라와 마가 등의 신앙을 이어 가는 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가 지향해야 할 신앙의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는 유대인에 대해 모두 긍정적으로 보거나 아니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다. 예수님도, 바울도. 베드로, 요한과 제자들은 모두 유대인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당시 유대교 유대인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그들은 성경이 본래 말하는 복음을 믿고 그것을 따라간 믿음을 갖고 있었다. 구약부터 내려온 복음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며 신실하게 믿음을 지켜온 사람들이다. 중간에 변질된 대다수의 유대인이 아닌 그루터기로 남아 끝까지 성경적 헤브라이즘을 지켜온 사람들과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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