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희 목사】 개혁은 첫사랑을 회복하는 것이다.

  • 입력 2024.01.08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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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목사의 몸과 발로 쓴 ”다시 원형복음으로“ 시리즈 ⓷

개신교는 날마다 개혁해 나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생명은 매일 자라간다. 매년마다 옛 껍질을 벗어내고 새로운 은혜 속으로 들어간다. 생명은 정체되지 않고 날마다 성장하고 움직인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생명이기에 날마다 새롭게 하는 일을 그만두면 영적으로 죽은 것이다. 이런 면에서 교회는 본질을 향하려고 하는 방향성을 가져야 하고 말씀을 통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의지와 노력이 얼마나 있느냐가 미래의 교회가 결정된다.

어느 날 지인 목사님이 저서에 대한 책 검토를 위한 자료를 보내주셨다. ‘한국교회 아버지 사무엘 마펫책이었다. 초대교회 이후에 말씀으로 부흥한 모델을 한국교회 역사 속에서 근거를 찾고 싶었는데 그 자료가 고스란히 소개되었다, 그것은 초대 한국교회 부흥의 비결에 대한 에딘버러 선교대회에서 행한 마펫의 선교 발제 내용이었다. 한국교회를 이렇게 부흥하게 한 힘은 말씀사경회가 뿌리였다는 글을 읽는 순간 필자가 이 책을 쓰면서 고민하던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었다.

결코 많지 않는 분량의 책의 핵심 논지는 결국은 말씀이다라는 것이었다.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그동안 필자가 생각하고 경험한 사역을 통해 체험된 것을 정리했다.

필자의 마음속에 한국교회의 역사 속에서 일어난 객관적인 검증 스토리가 필요했던 중이었는데 사무엘 마펫의 한국교회 선교 자료는 이 책을 끊어졌던 130년 전 평양대부흥의 역사와 연결시키는 역사적 의미를 주었다. 아울러 한국교회의 답은 말씀이라는 사실에 더욱 확신을 갖게 했다. 사무엘 마펫이 당시 한국교회를 바라 본 것과 필자가 한국교회를 생각하는 것과 우연의 일치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라 여겨진다. 필자가 그의 선교 역사를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한국의 초대교회는 철저히 성경 중심이었고 헬레니즘 방식이 보다는 헤브라이즘 방식을 한국에 적용한 탁월한 점이 돋보였다. 그것이 한국교회 기적의 부흥을 일으킨 힘이었다고 본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순수한 좋은 역사를 이어가지 못하고 단절되어 지금 교회 안에 사경회는 사라졌다. 반면에 성경이 지식과 교회 성장의 도구로 변질 되면서 교회가 점점 본질을 떠나기 시작했다.

한국교회 부흥의 중심

말씀 사경회

주기도문에 나라가 임하게 하옵시고는 필자와 모든 교회의 기도 제목이다. 교회는 건물이 아닌 모든 그리스도인이다. 우리가 곧 교회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사람이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건설하는 일이 교회의 사명이다. 주님이 이루고자 하는 나라를 오늘 교회는 대신 이어 받아 세상에서 이루어야 한다. 인간이 모인다고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부른 사람만이 교회에 올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다. 교회는 인간의 생각이 아닌 주님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공동체다. 다윗의 영원한 언약에 따라 믿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지금까지 축복해주셨다. 그것을 이어 가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다.

그런데 이렇게 주님의 언약을 이어 간 초대교회와 단절한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님이 정한 규례대로 교회를 세우기보다는 이방의 헬레니즘 방식을 본받아 교회를 세웠던 초기교회 역사가 있다. 그것은 중세 로마가톨릭 교회였다. 예수와 복음을 선포했지만 방식은 여전히 세상의 방식을 차용했다. 이런 모습이 1000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것을 갱신한 한 사건이 있었다.

500년 전에 마틴 루터가 95개조 논제를 제시한 것은 로마교회에게 질문과 토론을 통한 공개적인 만남을 요청한데서 시작한다.

"진리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부터 그리고 그것을 밝게 드러내려는 열망에서 아래의 논제들은 문학 석사인 마틴 루터에 의하여 비텐베르크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루터는 그곳에서 이 주제들에 대하여 강의를 하도록 공식적으로 임명받은 바 있다. 그는 직접적으로 토론에 참여할 수 없는 자들에게는 서신으로 토론하기를 요청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질문과 토론을 통해 지금 당면한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가 얼마나 성경적인지를 함께 소통하며 발전적인 방향을 찾자는 의도였지만 이런 루터의 제안은 결국은 교황에게 거절당함으로 종교개혁은 생각지 않게 촉발되었다.

결국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는 개혁이 일어나 지금의 개신교가 탄생 되었다. 하지만 종교개혁자들 본질인 성경으로 돌아가는 역사는 이루었지만 여전히 건물과 외적인 형태는 개혁하지 못하고 이전의 가톨릭 방식을 그대로 가져왔다. 이런 점에서 16세기 종교개혁은 미완의 개혁이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에서 벗어난 복음의 핵심을 회복하는데 놀라운 개혁을 이루었다. 하지만 헬레니즘화 된 로마가톨릭의 이분법 구조는 벗지 못했다. 종교개혁자들이 교회 개혁을 이루었지만 그들에게도 한계가 있었다. 그들이 이루지 못한 생활과 방식의 개혁은 오늘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이다. 우리도 역시 원리는 성경을 따른다고 하면서 실제 삶은 여전히 로마가톨릭 모습과 헬레니즘 스콜라 신학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것에 포로가 되어 지금까지 지배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교회 개혁은 이루었지만

헬레니즘적 구조에 대한

개혁은 이루지 못해

오늘 우리도 종교개혁자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오직 믿음을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선포했지만 어떻게 그 믿음대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부족했다. 그동안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에만 초점을 두다보니 복음으로 삶이 변화 하는 영역은 등한시했다. 그러다보니 예수 복음을 외치는 것과 실제 복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과 일치하지 못함으로 교회가 사회로부터 비난 받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주님의 교회를 복음대로 살아가는 방향에 초점을 두고 복음의 능력을 발휘하는 구조로 교회가 갱신되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 해야 할 선결 과제는 교회를 먼저 바르게 진단하는 일이다. 무엇이 구습이며 벗어야 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 후에 비성경적인 부분을 수술하고 다시 회복하는 실제적인 성경적 솔루션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아드 폰테스 성경” “아드 폰테스 예수 복음 아드 폰테스 한국 초대교회 를 그려본다. 다시 한국교회가 말씀으로 흥왕하는 기적의 그날을 소망 해본다. 이것을 위해 필자와 같이 교회갱신의 여정을 떠나보자. 엠마오 길을 거닐면서 두 제자와 예수님과 나눈 길거리 담화를 함께 나누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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