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박사】 한국 여행기로 선교의 가이드가 된 조원시 선교사

  • 입력 2024.06.27 11:11
  • 수정 2024.06.27 11:28
글자 크기
프린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신배 교수의 구약 이야기 (371)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83)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다윗의 시)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자 누구오며(아도나이 미 야구르 베아호레카)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15:1).

날씨가 더워지면서 외부 활동이 줄어들었다. 이는 에어컨과 냉방 공간을 찾으면서 실내에서 사람들은 냉방병으로 말미암아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세계는 싸움과 전쟁이 줄어들지 않고 여전히 팽팽한 정쟁(政爭)의 논리를 만들어 권력 유지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지진이 일어나고 홍수가 일어나 재앙을 가져오면서 자연재해가 세계의 빈민층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이 더위를 이기려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한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장소와 공간에 서야 하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가 누구인가? 시편 15편은 이것을 질문하며 시를 시작한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호레크 타밈 우포엘 쩨데크)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웨도베르 에메트 빌레바보)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15:2-3).

시편 15편은 시편의 네 부분 중에 두 번째 시편 15-24편에 해당한다. 시편 3-14편의 1부분과 25-34(3번째 부분)35-41편의 네 번째 부분에 해방하며 시편 1권을 구성한다. 첫 번째의 탄식의 시들이 네 번째 감사의 시들로 옮겨가는 구조는 시편 1권의 구성이 하나님의 부재 현실에서 시작되는 이 탄식은 하나님을 만나는 상황, 성산에 오를 자격 조건을 논하는 두 시편(15, 24)에 감싸여서 그 구성에서 탄식과 왕, 토라 등의 구조를 보여준다. 그래서 시편 15-24편이 중앙집권식 대칭 구조로서 성전에서 성전으로이어지는 대칭되는 형태로 구성된다. 시편 15(찬양), 16(신뢰), 17(개인탄식시), 18(제왕시), 19(토라시), 20, 21(제왕시), 22(개인탄식시), 23(신뢰시), 24(찬양시) 등의 구조이다. 성전과 왕, 토라의 중심 주제를 보여준다.

시편 15편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의 조건이 바로 제시되고 있다. 곧 정직(타밈)하고 공의(체데크)을 실천하고 진실(진리, 에메트)를 말하기-2(3개의 긍정적 조건)와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않기,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기, 이웃을 비방하지 않기-3(3개의 부정적 조건), 그리고 망령된 자를 멸시하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기-4(2개의 긍정적 조건), 이자 받지 않기, 뇌물 받지 않기-5(2개의 부정적 조건) 등이다. 시편 24편과 짝을 이뤄서 성전에 올라 하나님과 교제할 사람의 조건은 깨끗한 손과 청결한 마음이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않는 것과 거짓 맹세하지 않는 것 등이다.

이 두 시편은 토라와 경건을 요구하고 있다. 이 두 시편이 이를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비베제 베에이나이오 니메아스 웨에트 이르에 아도나이 에카베드)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니쉐바 레하라 웨로 야미르)”(15:4).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며 눈과 마음이 어디를 향하여야 하는지, 그 삶의 방향과 설정을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다. 하여 물질 중심적인 삶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 삶을 살아야 함을 결론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카세포 로 나탄 베네세크)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로 임모트 레오람)”(15:5).

시편 15편은 순례 시편으로서 시편 84, 122편이 이에 해당하며 예루살렘으로 순례하는 길에서 부르는 순례의 노래와 의식의 노래이다. 또 예배자가 성소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자격 조건을 제시한다(15. 24). 성전 입장 의식을 나타내는 시편 15, 24, 33편은 1) 성전에 입장하도록 승인 받는 자격 질문(15;1; 24:3; 33:14) 2) 윤리적 요구에 응하는 대답(15:2-5; 24:4-5; 33:15) 3) 축복의 말씀, 성전에 입장할 자격을 가진 사람들과 관련된 축복(15:5; 24:6; 33:16) 등이다. 이 시편 15편과 24편은 법궤를 가진 성전과 관련하여 포로기 전의 쓰여진 시임을 알 수 있다(존데이). 짧은 시편 15편의 성전 입장 자격시는 바로 우리가 오늘 하나님을 만나는 현존, ‘하나님 앞에서(코람 데오)’ 사는 삶을 보게 한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온전하게 살아간 선교사가 있다.

 

존스 선교사(G. H. Jones, 조원시, 1867.8-1919.5)는 미 북감리교회에서 아펜젤러, 스크랜턴 가족 다음으로 세 번째로 한국 선교사로 파송 받았다. 그는 한국어와 한국사, 한국 문화 및 한국 전통 종교에 정통한 학자였다. 그는 미국 뉴욕에서 출생하여 16세에 선교사로 부름을 받아, 20세에 1888517일 한국에 도착하여 배재학당에서 수학을 가르치며 아펜젤러 선교사를 도왔다. 그는 앞서 거론했듯이 감리교의 중요 보직을 거치며 협성신학교와 한국 교역자 양성에 힘썼. 그는 루이스 로스 와일러(Louis Rothweiler)와 공동으로 1892년 한국 최초의 찬미가 1판을, 1902년 제 6판에 205장의 찬미가를 수록하였다. 조원시는 1892년에 프랭클린 올링거(Franklin Ohlinger)가 창간한 한국 최초의 영문 잡지 더 코리안 리포지터리(The Korean Repository)의 발간과 편집에 기여하였다. 190012월에는 순 한글판 신학월보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서 문서 전도의 장을 열었다.

1893년 제물포에서 가르친 신학반 신학생들, 가운데 조원시, 그의 책
1893년 제물포에서 가르친 신학반 신학생들, 가운데 조원시, 그의 책

 

http://www.archive.org/stream/korealandpeoplec00jone#page/n0/mode/2up  링크를 연결하면 조원시 선교사의 책 전부를 영인본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왕성한 선교 활동과 문서 활동을 벌이다가 52세 짧은 나이로 19195월 플로리다에서 소천한다. 존스 선교사는 이른 나이에 한국의 남부 선교 여행을 다니며 1891년 코리아 미션 필드 11월호에 자세히 그 매일의 여정을 소개한다. 그는 매일 남부 순행기록을 남기며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 방문한 곳, 지역의 특별한 모습 등을 청년 선교사의 눈으로 그리고 있다. 그는 원래 남부 선교 여행을 올링거 선교사와 하려 했지만 안 되었고, 또 후에 아펜젤러 선교사와 압록강 지역까지 함께 여행하려 했지만 행정적인 문제로 할 수 없었다. 조선 후기 통리기무아문에서 외국인에게 발급하던 일종의 여행 허가증인 호조 발급 문제로 지연되어서 갈 수 없었다. 압록강 지역을 포기하고 그는 18898월 서울-양평-지평-원주-충주-문경-상주-안동-대구-청도-부산까지 이어지는 여행을 한다. 이는 첫 번째 아펜젤러와 함께 하는 선교 여정이었다.

존스가 기록에 남긴 약품들과 책 목록은 우리에게 재미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그는 칵커의 그리스도론과 그리스 철학, 프리센의 초기 기독교 시대의 순교자와 옹호자 등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보도한다. 1889816일 흰색 몽골 말과 회색 야생마를 타고 두 사람이 동대문을 떠나면서 이처럼 표현한다. “산뜻한 아침 공기는 나에게는 모든 것이 장밋빛이었고, 무한한 자유로움에 충만했으며, 내가 인식한 것은 나의 일상의 경험이었고, 내가 나의 시선을 어디에 두어도 이 나라가 나에게 맡겨진 것처럼 느꼈다. 그날 아침 우리는 아름다운 푸른 산들과 어디에나 잘 자라고 있는 논밭을 지나 40(12마일)를 지났다. 한곳을 지나며 우리는 연못에서 기르는 셀러리(celery)로 먹을 수 있는 연()을 기르는 것을 보았다. 조선 사람들은 절인 음식을 좋아한다. 나 역시 좋아하는데 많은 한국 음식 중에 내가 즐기는 음식이 바로 절인 음식이다.”(한국 미션필드)

존스는 동구릉을 들렀고 더운 8월에 강물에서 목욕을 즐기며 원주방향으로 길을 간다. 사람들은 서양 선교사들이 먹고 자는 모습을 보고자 몰려들었다. 존스와 아펜젤러가 아쉬워하는 것은 공식적으로 전도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외국인들이 유아를 납치해 약을 만든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포교 금지령이 내려있었다. 한국인들은 남자는 노는 모습이며 여성은 노예처럼 일하였다. 남녀 사람들의 모습은 지저분함이 일상이고 유일하게도 죽음과 산신령만이 그들의 유일한 종교였다. 문경새재를 넘는 이야기와 비로 인해 40리를 나아가는 모습, 치악산과 원주, 청주와 충주의 모습을 그리며 300년 전에 일본에 침략 받은 큰 고통을 묘사하고 있다. 1889820일 화요일, 원주 목사와 강원 관찰사를 만나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 한국 문화와 풍습을 엿볼 수 있다.

한국 사람은 15-18세이면 남자가 결혼하는데 22세의 조원시는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목사가 놀란다. 선교사를 보고 선생인 척 하는 아이를 보고 놀라는 모습이며 환영하는 맛있는 환영주는 고급 전통주이었을 것 같다. 접견실과 감영접견실, 커다란 석조 법정 등을 소개한다. 그리고 조원시 선교사는 관찰사의 모습을 소개한다. “사실 관찰사는 아펜젤러와 나에게 그렇게 호감을 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키도 작았고 목소리도 작았으며 얼룩진 얼굴과 침침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일반적인 한국 양반들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의 모자에 있는 작은 금속 수탉이 그의 관직을 나타냈다. 그는 우리에게 국적과 나이, 그리고 첫 번째 대통령에 대해 물었다.”(미션 필드). 존스 선교사는 이처럼 한국 여행기를 통해 이후에 선교하러 들어오는 선교사에게 길잡이가 되었고, 한국 선교의 빛을 전하는 이들에게 선교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처럼 조선은 존스 선교사와 같은 선구자에 의해 서서히 복음의 문은 열리고 있었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