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회부흥 3년 시스템화 세미나' 및 '성령이 나를 통과하게 하라'라는 주제의 부흥집회가 선우권목사(세종온누리교회 담임)를 강사로 뉴저지 주예수사랑교회(강유남 목사)에서 지난 3월 24일부터 26일까지와 28일과 29일 그리고 뉴욕 하크네시야교회(전광성 목사)에서 27일과 28일 열렸다.

강사인 선우권 목사는 LA충신교회와 한국 분당 남서울교회, 수지제자교회, 세종온누리교회 등 4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중형교회로 성장시켰는데, 이번 세미나에서 그가 개척하는 교회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장시켜주셨는가에 대한 지혜를 나누었다.

3년간 강단을 지키고 기도에 전념하라

선우권목사는 교회를 시작할 때 그 교회를 부흥시키기 원하는 목회자라면 기본적으로 3년간 그 교회를 떠나지 말고 철저히 교회 강단을 지키며 기도해야 한다고 했다. 3년간 새벽기도나 철야기도를 작정하고 기도하면서 다른 교회에 집회 인도하러 가지도 말고, 여행이나 기타 모임에도 참석지 말고, 해외는 나갈 생각도 말고 하루라도 교회를 떠나는 일이 없이 그 교회에서 엎드려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부흥의 역사를 이루어주신다고 했다.

시스템화

그리고 3년간 기도할 때에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시스템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작정하라고 했다.

첫째, 기도제목을 놓고 응답될 때까지 3년간 매일 기도한다.

둘째, 교인이 단 한명이 있어도 그와 그의 가족의 은혜생활과 변화를 위해 그리고 예배드리러 나오도록 최선을 다해 기도하며 관리해야 한다. 특히 교인들과 대화할 때에 권위가 떨어지는 농담이나 화를 내지않아야 한다.

셋째, 일주일에 1회 이상 성경공부와 만남을 가져라.

넷째, 교역자들과 교인들을 철저히 관리하여 매일 해야할 일을 문서화하여 보고하도록 한다.

다섯째, 모든 부서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사진을 찍어서 밴드에 올리고 모두가 동감하도록 한다.

여섯째, 전도형 교회가 부흥하므로 전도할 요일과 시간을 정해놓고 담임목사를 비롯한 모든 교인이 그 시간에는 전도하는 교회로 시스템화 한다. 교역자나 리더가 전도하지 않으면 교인들도 전도하지 않으며, 목회자가 하지 않는 것은 교인들도 하지 않는다.

일곱째,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을 시스템화 하고 모든 모임에 담당자를 세우라. 예를 들어 수요예배도 그냥 드리지 말고, 수요예배를 전담할 사람을 세우고 팀을 짜서 세미나를 한 뒤 모여서 기도하고 안내위원들은 30분 전에 나와서 임무를 잘 수행하도록 한다. 임무 수행을 잘 하는지 담임목사가 반드시 체크해야 하며 수요예배의 설교자는 담당자들이 섭외하도록 하면 주인의식을 갖고 더 열심히 모인다. 또 매달 설교의 주제를 바꾸어가면서 다양화를 이루고, 미리 주제를 알려주어서 교인들이 관심을 갖고 오도록 한다.

그리고 강단에서 통성기도할 때에 많은 이들이 마이크에 대고 큰 소리로 부르짖어 기도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회중들이 기도하는데 매우 방해가 되므로, 통성기도할 때에는 마이크에서 떨어져서 기도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해야한다. 음악으로 반주를 할 경우에는 가사가 없거나 모르는 음악이 좋다. 아는 것은 자꾸 생각이 나서 따라하게 되어 기도의 흐름을 방해하기 쉽다.

또한 설교 전의 기도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성령을 초청하는 뜨거운 영적 기도를 해야 한다. 그래야 회중들의 마음이 열리고 설교자도 능력있는 설교를 할 수 있게 된다.

준비가 안 되었으면 시작하지 마라

그런데 이런 시스템화를 실행하기 전에 주의할 점은, 준비가 안 되었을 경우에는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즉 함께 사역할 일꾼이나 제자가 없다거나(먼저 성경공부를 통하여 제자나 일꾼을 양성해 놓아야 함) 다양한 말씀(성경 문화 배경, 언어연구, 구절에 입각한 강해, 씨리즈 강해, 상담치유적 설교로 접근, 희생하는 목회자 모습, 영성과 은사의 세계로, 통성기도로 이어지고 싶은 주제로)을 전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거나, 영적으로 새벽기도 등 기도자로서 준비되어있지 않거나, 목회 이외에 다른 데(노회 참가, 부흥회 강사로 다님, 가족일에 치우치거나 부부사이가 안 좋은 가정, 죄 짓는 버릇, 세상 운동인 골프, 게임 등에 심취) 신경을 쓸 것이라면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의 양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주라

목회자는 예언의 은사가 있어야 한다. 이는 선지자적 기름부음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선지자는 앞으로 되어질 일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전달하는 사람이다. 목회자는 양들의 신적 탁월성을 찾아내어 알려주어야 하는데, 그런 은사가 없이는 목회를 할 수 없다. 그들이 현재 잘못하는 것이나 실수를 지적하기 보다는 그들이 성령받아 변화되었을 때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말하라. 양들의 실수와 잘못은 목회자가 책임지고 가야 한다.

담임목사는 3년 안에 교인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3년간 최선을 다하라. 만약 3년동안 설교를 듣고 성경공부를 했는데도 변화되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가서 자기를 변화시킬 리더를 만나게 해야 한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일 수 있다. 변화가 안 되면 내 교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른 교회로 옮기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

이민 교회는 자기를 변화시킬 교회를 찾아다니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변화가 되지 않아서 답답해서 나가는 것이므로 섭섭해하지 말라. 그런데 이러한 수평이동의 단점은, 이전 교회에서 기도나 헌금, 전도 등을 하지 않았으면 다른 교회에 가서도 거의 똑같은 습관으로 가기 때문에 그러한 교인들은 어디를 가도 순종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말썽있는 사람은 기도원이나 집회에 데리고 다니면서 기도하게 하고 성령의 불을 받게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수직이동으로 오는 이들은 전도해서 처음 나오는 교회이므로 하라는대로 순종한다. 그래서 전도하라는 것이다. 전도해서 처음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가르치는대로 한다. 따라서 그러한 사람들을 목회에 순종하는 동역자로 세우라.

"나 주 위해 살리라"를 부르는 김영환 찬양사역자

설교시 히브리 문화를 알고 성경을 해석하라

유대인 랍비이면서 예수님을 영접한 바울처럼 기독교인이 된 랍비들이 있다. 그들을 통해 우리 문화 속에서 오해하고 있거나 잘못 해석한 것들을 알게 되었다는 선우권 목사는 그러나 히브리 진리가 매우 오묘하므로 유대주의에 빠져버린 사람도 있고, 문자에만 너무 집착한 나머지 영성이 부족해진 사람도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유대인이 참고하는 토라(모세오경과 성경), 미쉬나, 미드라쉬, 하가다, 할라카, 카발라, 게마트리아 등을 연구하면서 우리의 목표는 유대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예수님을 바로 믿었던 유대인 바울의 영성을 본받는 것이라고 했다.

토라 설교의 원칙은, 첫째 교인들이 설교를 들으면서 뭔가를 적을 수밖에 없게끔 내용을 준비해야하며, 둘째 다음 예배에 빠지지 않도록 예고편을 설명하고 셋째 유대 문화설교를 깊은 은혜의 설교로 접목하는 기술이 필요한데, 이때 언어나 문화에 집착하지 말고 깊은 은혜와 연결이 안되는 내용은 포기하고 영성이 떠오를 때 설교해야 한다.

유대인의 문학 중에는 카이애즘 구조(Chiasm structure)를 갖고 있는 것이 있는데, 이는 중심에 핵심주제를 두고 양쪽에서 대칭구조로 설명해 들어와서 마지막으로 중앙에 있는 말씀으로 결론이 나는데, 그 결론을 바탕으로 풀어가는 방식을 말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될 때에 점층법과 점강법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때에는 히브리 3단계 동사를 찾아내어서 어떻게 사건이 강조되어가는지를 해석해내어야 한다.

성경을 해석할 때에 우리의 문화를 바탕으로 성경을 절대로 해석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대부분 유대인들의 문화를 바탕으로 그들의 문학형태로 쓰여졌기 때문에 유대의 문화와 문학형태를 이해하지 못하면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설교는 차라리 안 하는 편이 낫다.

설교의 한 예를 들자면, 마태복음 8장과 누가복음 7장에 자기의 수하에 있는 자를 위해 간구하는 백부장의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에서 전체적인 맥을 잡고가는 주제는 "하나됨의 믿음"이다.

믿음을 히브리어로는 에무나(אמנ)라고 하는데, 이 용어는 아만(אמן)의 여성명사로 "한 공동체와 연합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다는 것은 공동체와 연합되어있다는 의미이며, 믿음이 없다는 것은 공동체와 하나가 되어있지 않다는 뜻이다.

히브리 문화에서 공동체의 의미를 성경에서는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합하여(따바크, 마 19:3-6)라고 말씀하며, 여기에서 "합하다"라는 히브리어 '따바크'는 '사랑'이라는 의미를 갖고있다. 즉 사랑은 하나가 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백부장의 믿음을 왜 예수께서 칭찬하셨을까? 믿음이라는 말이 공동체와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백부장은 첫째로 자기의 아들도 가족도 아닌 일개의 종과 하나가 된 것이다. 둘째로 그는 유대인들에게 회당을 지어줄만큼 유대인들과 하나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군대의 예를 들으면서 예수님을 머리로 하여 예수님과 자기 자신이 하나가 되었음을 고백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라고 하신 말씀은 "너는 상전이면서 종과 하나가 되었고, 로마인이 유대인과 하나가 되었구나. 그리고 나(죽었다가 부활)와 하나가 되었구나"라는 뜻이다. 이는 종의 고난이 자기의 고난이며, 예수님의 고난도 그의 것이며, 예수님의 부활도 내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랑이 그의 안에 있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능력과 부활과 고난을 모두 함께 지고가는 한몸 의식을 말한다.

백부장이 예수님을 만났고 그의 종은 집에 있었지만, 백부장과 종이 하나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종을 만나지 않았어도 그의 종의 병이 나은 것이다. 예수께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에서 백부장의 하나됨을 보시며, 그리스도가 내 속에 없는 이스라엘과 반대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백부장을 가리켜 그것이 믿음이라고 가르쳐주신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분리를 무서워 한다. 그래서 하나가 되기 위해 하나님께서 계신 지성소로 들어가는데, 지성소 안에서만 하나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정녕 죽으리라"라고 하신 말씀에서 "죽는다"는 히브리인의 개념은 "분리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악과를 먹으면 에덴 동산과 분리된다, 즉 에덴동산에서 나가야 된다"라는 뜻이다. 히브리인들이 분리를 싫어하고 하나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에덴에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2장20절 말씀의 그리스도와 죽고 부활하는 연합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바로 에덴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여 성령과 하나가 되면 우리의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지배하여 우리 맘대로 화내지 않게 된다. 그런데 성령의 나타남은, 내가 살아있으면 안된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면, 그리스도의 마음이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언어가 하나님의 언어가 된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의 언어이다. 그 사람의 언어가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쓰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 인생의 첫번째 목표는 언어가 바뀌어야 한다.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늘의 말을 해야 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의 창조의 능력이 우리에게 있으면 우리가 말하는대로 이루어진다. 교회의 리더를 하나님께서 세우셨기 때문에 선지자적 영성을 갖고있는 목회자의 선포되는 말을 순수하게 믿으면, 하나님께서 그 믿는대로 복을 주신다. 그러한 목사의 말은 말하는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다시 에덴을 만들고 싶으시기에 성막을 만드시고 그 안에 지성소를 만드신 것이다. 그 지성소가 바로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장소인 에덴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오셔서 성전을 정화하시면서 모든 제사드리는 제물을 다 내쫓으시며 오직 성전 안에는 예수님만 계시면 된다는 것을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는 것이다. 즉 죽으셔서 부활하신 후에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하나가 된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성경은 백부장이 처음엔 종과 그 다음엔 유대인과 마지막엔 예수님과 하나가 됨을 점층법을 사용하여 기록한 것을 찾아내어 설교도 3단계 점층법 설교를 하라.

유대인들은 아침마다 학가다(읊조리는 것)를 해야 한다. 그들은 아침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번이든 스무번이든 계속 중얼거린다. 그러면 배속이 말씀이 차곡차곡 쌓여서 쌓인 그 말씀이 선포하면 기적을 일으키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 내 영이 에덴을 회복하는 것이며, 에덴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에덴 주위의 강들을 만드시고 그 강들을 통하여 생수의 강이 우리에게 흘러들어오게 하셔서 우리가 다시 에덴에 갈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주님의 양들 속에 숨겨진 그분의 형상인 신적 탁월함을 볼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에덴을 회복하여 하나님과 하나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이끌어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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