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의 떡을 문자적으로 예수님의 살이라고 해석하는 것을 주의해야

 요즘 한국교회에서 행하는 성찬식에 개신교의 성찬론과는 다른 요소들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신학적으로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그 요소로 첫째, 성찬식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주님의 죽음만을 기억하는 과거 지향적 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성찬 때 사용하는 하얀색 가운도 마치 장례식이나 입관식 때 시체를 덮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둘째는 교단 헌법에서 성찬식에서 사용 후 남은 떡 이나 포도주를 태우거나 묻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도 떡이나 포도주를 예수님의 살이나 피라고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로마가톨릭의 화체설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부활의 주님과의 만남과 연합을 성찬의 의미라고 가르쳤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김광열 교수는 "칼빈은 현재적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임재와 만남의 교제가 주어지는 성령의 역사가 임하는 예식임을 분명히 했다."고 한다. 아울러 김교수는 "개혁신학은 성찬에서의 떡과 포도주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이해하는 화체설을 거부하며, 동시에 그것을 상징적으로만 이해하여 주님과의 실제적인 만남과 성령의 은혜의 역사가 주어지는 예식임을 간과하는 기념설도 성경의 가르침을 떠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우리는 로마가톨릭교회와 같이 성찬의 떡을 문자적으로 예수님의 살이라고 해석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가톨릭에서 성체성사를 행할 때 신부가 축복기도를 드리면 그때부터 떡은 예수님의 살로 바뀌고,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로 변화된다는 가톨릭의 화체설은 성찬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가복음 14장 22절 이하에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 시기 전에 최초로 제자들에게 성찬식을 거행하실 때 “이것이 내 몸이니라”라고 하신 말씀은 문자적인 의미로 이해하기 보다는 단지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칼빈은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나는 아버지께로 간다고 하신 말씀들(요 14:2, 12)을 근거로 예수님은 승천 후에 성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 것이고, 그 주님의 인성이 이 땅 위에 계신 것으로 말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성령님의 역사로 인격적인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분의 은혜를 받게 되지만, 예수님의 인성으로 이해되는 살과 피가 지상에 다시 오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가톨릭에서는 성찬예식 때마다 실제로 주님의 몸이 찢기고 피가 흘려지는 골고다 언덕에서의 희생제사가 계속 반복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데, 그것 역시 주님 의 십자가의 사역은 한 번으로 완성되었다고 말씀하는 성경의 교훈(히 10:12)에서 벗어난 가르침이다. 칼빈은 요한복음 6장 56절을 근거로, 주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은 주님과의 실재적인 연합과 교제의 역사가 주어지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가르쳤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의안에 거하나니”(요 6:56).

성찬에서 떡과 포도주가 문자적으로 예수님의 살과 피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은 아니며, 실체 되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상징으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즉 그것을 먹고 마시는 동안 성도들은 성령님의 역사하심 속에서 주님의 임재 안에 거하게 되고 주님을 만나 그분과 연합하고 교제하며 그분의 은혜를 받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찬식은 단지 주님을 기념하는 정도의 예식을 넘어 성령님의 역사가 주어지는 예식인 것이다.

종교개혁자 칼빈이 가르친 성경적 관점을 영적 실재설이라고 부른다. 성찬에서의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주님의 살과 피로 변화된다고 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그 떡과 포도주가 상징하고 있는 주님과의 실제적인 만남과 교제와 연합이 주어지는 성령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영적 성장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은혜의 방편들에는 기도, 말씀 그리고 성례가 있다. 그중에서 우리는 그동안 기도에 대해서는 강조를 많이 했고, 기도생활은 한국교회가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 효과적인 은혜의 방편이 되어왔다. 성구암송, 성경읽기와 쓰기 그리고 제자훈련 등을 열심히 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더욱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성례가 은혜의 방편이 되는 것을 상대적으로 많이 놓치고 있었다.

마가복음 14장 25절에서 주님은 최초의 성찬 예식을 거행하신 후에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이는 요 한계시록 19장에서 말하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서 교회와 주님의 온전한 연합의 축제가 주어지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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