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사회전반에 걸쳐서 번지고 있는 ‘미투’현상은 긍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이다. 위압적인 위치에 있는 자들의 횡포에 눌린 피해자들의 강렬한 외침이 사회 구석구석을 공의롭고 화평한 무대로 만들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사회 영역에서 나름 원로로 추앙받는 이들의 몰락을 보며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라는 진리를 떠 올린다. 교회라고 해서 예외가 아님을 누구나 다 예견할 것이다.

깨끗하고 공정한 사회 구현은 세상의 빛이요 소금인 그리스도인의 몫이어야 하는데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내세우는 세상이 칼을 들이대고 있다.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 그리고 성직자라는 신분을 지닌 사람으로서 회개한다. 그러면서도 ‘나도 당했다’라는 폭로정신이 사회 정의 구현 혹은 인권존중이라는 거대 담론에 대한 성경적 시각을 표현해 보고자 한다.

우선 피해자들에 대하여 진심으로 동정과 위로를 전한다. 어쩔 수 없는 약자 입장에서 당하게 된 그 고통과 아픔은 가해자들이 잘 실감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위(지위와 돈)로 그렇게 행한 것이 특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죄의식이 없었고 ‘미투’운동에 의한 사회적 비난 때문에 용서를 빌며 법적 형벌을 달게 받겠다고 나선 것일 수 있다. 죄의식이 분명 있었다면 그런 일이 벌어졌을 당시 진심어린 사과가 있었을 것이다.

한편 그리스도인으로 ‘미투’ 운동이 과연 성경적인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앞에서 말한 거대담론을 충분히 동의한다. 그러면서도 영적으로 이것이 기독교인이 자발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운동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마귀에게 속한 자이다. 그 마귀는 고소고발을 일삼는 자이다. 성도들의 자유를 박탈하고 죄의 무게에 눌려 고통이라는 감옥에서 살도록 사력을 다한다. 마치 검찰과 같은 역할을 한다. 어떻게 해서라도 죄를 묶어서 구속시키고자 함이다.

그러나 성령은 고소 고발하는 자가 아니다. 물론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는 분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한 방편이지 속박의 고리를 채우기 위한 방편이 아니다. 그는 세우시는 영이다. 진리의 영이다. 그 영이 우리에게 주신 권세는 파하려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세우고자 함이다. 따라서 ‘나도 당했다’라는 ‘미투’ 운동보다는 ‘나도 죄인이다’라는 ‘미투’ 운동이 교회 내에 번져야 한다고 본다. 성령은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하신다. 그것이 부흥운동으로 이어졌다. 기독교 역사가 증언하는 것이다. 폭로로 인해서 가해자를 축출하는 것도 정의구현이지만 회개운동은 갱신운동으로 이어져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가 사는 것이다. 복수는 원한을 낳지만 회개는 용서와 화평을 낳는다. 오래 전에 가톨릭에서 전개했던 ‘내탓이요’라는 것과 이제 개신교가 ‘나도 죄인이요’라는 새로운 미투 운동을 벌일 때라고 믿는다.

‘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의 범죄로 인한 죄와 사망의 권세가 왕 노릇하게 한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우리의 순종으로 생명의 젓줄에 잠기는 역사만 만들어가게 하옵소서!’

서창원 박사(고창성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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