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구제의 출발과 끝은 하나님, 그렇다면 불교는?

 

【편집자 주】 기독교나 불교는 대표적인 선행과 사랑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행위를 기독교는 구제라고 말하며 불교에서는 보시라는 표현을 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약자의 하나님’인 것을 강조한다. 약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히 여겨주심이 구제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구제는 인색함이 없는 최선으로 베풀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귀결시킨다. 구제에 따른 보상은 온전히 하나님께 있다. 그렇다면 불교의 보시는 기독교의 구제와 무엇이 다른가?

 

이웃들의 어려움을 돌아보고 따스한 사랑의 손길을 펼치는 것을 나타내는 말로 기독교에서는 주로 ‘구제’(救濟)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불교에서는 주로 ‘보시’(布施)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1_성경에 나타난 구제(救濟)

1) 구제의 당위성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돌봄, 배려를 성경 전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요새가 되시고, 피난처가 되신다(사 25: 4).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고,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잠 14: 31). 가난한 이웃에게 인색하게 하지 말고 긍휼히 여기는 따스한 마음을 가져야 하며, 가난한 이웃의 어려움을 모르는 척 외면하지 말고 사랑의 손을 펼쳐야 한다(신 15:7-11). 잠언에서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19:17), 가난한 자를 구제하면 부자가 된다고 가르친다(11:24-25).

레위기 19:9-10과 23:22에서는 곡식을 거둘 때에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떨어진 이삭을 줍지 말며, 포도밭의 열매를 다 따지 말고 포도밭에 떨어진 열매를 줍지 말라고 명령한다. 이것은 곡식이나 과일을 수확할 때 일부를 남겨두어서 먹을 것이 부족한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신명기 24:19-22에서는 밭에서 추수를 하고 곡식 한 묶음을 밭에 빠뜨리고 왔을 경우에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그것을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둘 것이며, 감람나무를 떤 후에나 포도를 딴 후에는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먹을 것이 부족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함이다.

신명기 23:24-25에서는 이웃의 포도밭에 들어가서 마음대로 그 포도를 따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가서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 역시 고아, 과부, 나그네, 품꾼 등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함이다.

출애굽기 23:10-11과 레위기 25:2-7, 11-12, 18-22에서는 여섯 해 동안은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둘 수 있으나 일곱째 해에는 경작을 하지 말고 땅을 묵혀두고, 휴경을 하는 동안 저절로 자란 곡식과 포도 열매를 가난한 사람들이 먹게 하고, 그 남은 것은 들짐승들이 먹도록 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포도밭과 감람원도 마찬가지이다. 일곱째 해에 파종을 하지도 못하고 소출을 거두지도 못하면 식량이 부족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약속하신다. “여섯째 해에 내 복을 너희에게 주어 그 소출이 삼 년 동안 쓰게 하리라”(레 25:21).

십일조에 관한 규례 가운데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배려를 찾아볼 수 있다.

신명기 12:5-7, 11-12, 17-19; 14:22-27에서는 십일조를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지고 가서 가족뿐만 아니라 남종과 여종, 토지를 분배받지 못한 레위인들과 더불어 함께 먹고 즐기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리고 신명기 14:28-29; 26:12-15에서는 십일조를 매 3년마다 성중에 거류하는 레위인, 나그네, 고아, 과부 등 땅을 소유하지 못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십일조가 공동체 전체의 코이노니아를 위해서,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이 더 이상 소외당하지 않도록 하는 데 적극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헐벗고 주리고 소외된 사람들을 자신과 동일시 하셨다(마 25:31-46). 그들에게 베푸는 것은 곧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반면에 그들을 외면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외면하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 25:45). 또한 예수님께서는 영생의 길을 묻는 재물이 많은 사람에게 소유를 팔아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주라고 말씀하셨다.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막 10:21).

세례 요한은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하라”고 가르쳤다(눅 3:11). 바울 사도는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라”고 교훈한다(행 20:35). 히브리서 13:16에서는 “나누어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신다”고 가르친다. 요한일서 3:17에서는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고 말한다.

2) 구제의 자세

구제할 때 어떠한 자세를 지녀야 하는가? 구제하는 자는 궁핍한 자의 처지를 깊이 헤아리는 심정(잠 29:7)과 그를 사랑하는 마음(고전 13:3)을 지녀야 한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구제를 하는 것이 아니고,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후 9:7).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주어야 한다(신 15:10; 잠 3:27). 구제하는 자는 또한 성실함으로 하되(롬 12:8),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한다(눅 12:33; 행 11:29).

구제할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은밀하게 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1-4).

3) 구제에 대한 보상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이웃을 보고 사랑의 손을 펼치는 사람에게 그가 하는 모든 일과 그의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신 15:10).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게 될 것이다(잠 11:25).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 이사야 58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10-11절).

또한 구제를 즐겨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고 영생에 들어가는 상급을 받는다(마 25:31-46).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는 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다(딤전 6:18-19).

 

2_불경에 나타난 보시(布施)

1) ‘보시’의 뜻

‘보시’는 ‘베풀다’는 뜻이며, 흔히 재보시(財布施), 무외보시(無畏布施), 법보시(法布施)의 셋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재보시란 재물을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다. 절이나 승려, 또는 가난한 사람에게 돈이나 물품을 베푸는 것이 재보시에 해당된다. 무외보시는 다른 사람이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곧 다른 사람의 두려움을 제거해 주거나, 나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이다. 법보시는 진리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불타의 가르침을 알려주는 것을 법보시라고 하며, 보시 중에서 법보시가 최상의 보시라고 말한다.

2) 보시의 당위성

불교 경전에서는 보시를 불교 신자들이 실천해야 되는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로 말하고 있다. 잡보장경에서는 물질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곧 부처에게 주는 것이며, 그 복덕은 부처에게 보시하여 얻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대승불교에서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제시하는 보살의 수행법인 육바라밀 가운데 첫 번째 항목은 보시이다.

화엄경(華嚴經)의 십지품(十地品)에서는 부처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환희지(歡喜地)에서 법운지(法雲地)에 이르는 열 단계의 수행 체계를 말하고 있다. 제7단계인 원행지(遠行地)에서 보살은 십바라밀(十波羅蜜)을 수행하는데, 그 첫 번째 항목이 보시바라밀이다.

또 불교의 대표적인 포교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는 사섭법(四攝法)에도 보시가 첫 번째 항목으로 제시된다.

이처럼 보시는 불교 신자들이 실천해야 하는 중요한 수행 덕목 가운데 하나로 제시되고 있다.

3) 보시의 자세

불교 경전에서는 다른 사람을 나 자신처럼 여기고 자비를 베풀라고 가르친다. 이것이 동체자비(同體慈悲)이다. 어려운 사람을 볼 때 외면하거나 무관심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듯 관심을 갖고 돌보아야 한다. 의식주와 생활물자를 비롯하여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할 것이 아니라, 아까워하는 마음을 품지 말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華嚴經 十無盡藏品 第十八).

또 보시를 하면서 그 대가를 바라지 않고 아무 조건 없이 베푸는 것이 참 된 보시이다. 대가를 바라면서 보시하는 것은 참된 보시가 아니다. 금강경(金剛經)에서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곧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를 말한다. “보살은 마땅히 머무는 바가 없이 보시를 행할지니, 이른바 색(色), 소리, 냄새, 맛, 촉감, 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한다.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보시할 것이며, 상(相)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妙行無住分 第四)고 가르친다. “만약 그 마음에 머무는 바가 있다면 그리 되지 않도록 해야하며.... 일체중생을 유익하게 하기 위하여 마땅히 이와 같이 보시해야 한다”(離相寂滅分 第十四).

4) 보시의 과보

불교 경전에서도 보시를 행하는 사람에게 큰 복이 임한다고 가르친다. 금강경에서는 “만약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이 헤아릴 수 없이 크다”고 말한다. 마치 “동서남북 하늘의 크기를 사람이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처럼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를 행하면 그 복덕도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이 크다”는 것이다 (妙行無住分 第四). 화엄경의 십무진장품(十無盡藏品)에서는 보살이 얻는 열 가지 보물창고를 말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시장’(施藏), 곧 보시의 보물창고이다. 육바라밀 수행법이나 화엄경의 십지 수행법 가운데 보시 덕목이 들어있다는 것은 곧 보시를 행하면 그만큼 불교의 궁극적 목표인 성불에 가까이 가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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