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이다

 

영광(榮光)과 오욕(汚辱)의 역사를 지닌 교회사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발등상으로 세상에 있다. 교회에 서린 빛나는 영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에덴동산의 원형에서 시작된 교회의 씨알은 노아의 방주, 광야의 성막, 예루살렘 성전을 거쳐 역사적 변천의 길을 따라 보다 선명해졌고 주님의 성육신 이후는 몸 된 교회로 그 성체(成體)를 이루었다. 이제 주님을 통해 이루어진 구원의 역사는 교회를 통해 진행되고 있다.

인류의 여명기를 밝혔던 복음의 능력이 인류 역사에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그로 인해 교회는 소위 기독교의 황금 시기라 불리는 천년의 역사를 간직하게 되었다. 그 많은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카노사의 굴욕’(l'umiliazione di Canossar)처럼 왕권을 무력화시킨 교황권의 확립은 교회에 부와 권력을 안겨주었지만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래서 이 시기는 인류의 암흑기로 단죄되어왔다.

세계 역사는 교회 역사를 제외하고 말할 수 없다. 그만큼 교회와 관련된 일들이 역사의 중심축만 아니라 역사의 저변에까지 스며들었고 그 와중에 영광과 수욕의 오르내림을 부단히 반복해왔다. 지금 교회는 역사상 가장 저급한 형태로 온갖 수난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변화를 거부한 교회에게 운명처럼 덧씌워진 변질의 모습들이 원수의 노리갯감으로 전락하거나 비방자들의 뭇매감이 되게 만들었다. 교회의 중요한 지체들에 의한 자학 행위는 지금도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교회 vs 여론 = 매전필패(每戰必敗)의 슬픈 현실

교회가 힘을 잃으면 여론에 끌려 다닌다. 때리면 맞고 꾸중해도 아무 변명도 못한다. 인위적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것도 못마땅하지만 여론의 뭇매에 제대로 항거조차 못하는 교회의 현실은 기막히다. 자신들의 세계에서는 밥그릇 싸움에 이골이 난 전사 집단인데 세상과의 선한 싸움에는 대치도 하기 전에 꼬리부터 내린다. 교회는 생태적으로 반기독교적인 풍토 속에서 잡초처럼 생명의 싹을 틔운 공동체인데 아군과 적군에 휩싸인 상황에서 목소리다운 목소리 한 번 내지르지 못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영적 전쟁이란 허울 좋은 구호를 내걸기는 해도 보이지 않는 싸움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 전적은 무참하다. 매전필패다. 하나님을 신앙함으로 보강되는 영적 전력의 높낮이를 누구보다 간파하고 있는 사탄은 교회의 허장성세를 역이용한다. 살살 달래다 치명적인 일격을 날린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완승의 진지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 뺏고 뺏기는 고지전이 끝없이 계속된다. 상하는 것은 주님의 교회다. 주님은 새로운 군대를 모집 중이시다. 교회가 잠들고 혼곤한 잠에서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차라리 골짜기의 해골 떼를 깨우고자 하신다. 사방의 바람이 호출을 기다린다.

노망난 어른들과 철없는 후배들을 누가 깨우치랴

조국교회를 위해 아직 살아있어야 할 분들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벌써 이주해도 될 분들은 질긴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이 장수를 누리며 철딱서니 없는 후배들과 노탐에 노망이 들어 횡설수설하는 어른들을 깨우친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성인은 말없이 죽음의 길을 택하고 범인은 한 마디, 한 동작이 껄끄럽기 짝이 없다. 세상은 끓는 가마솥처럼 부글거릴 뿐 종의 길을 보이는 이가 없어 그을음만 가득하다. 생사가 하나님의 주권에 있으니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알 길 없어 하늘을 쳐다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한 영혼의 가치는 악인이나 선인이나 다르지 않다. 그런데 너무 답답한 마음이어서 그런지 간혹 한 트럭의 산 자와 한 사람의 죽은 자를 바꾸라면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100년의 기간을 두고 조국교회의 마지막 회생을 위해 주님께서 회생시킬 자를 한 둘 고르라면 누구였으면 좋을까? 그들의 회생 대가로 살아있는 목회자 일이 만의 목숨이 필요하다면 서명 작업에 응할 자 과연 얼마나 될까? 어쩌면 재림 이전에 비상조처로 주님을 잠시 다녀가게 하시는데 십만의 목회자가 목숨을 버려야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목사직 반납운동이 거세질 것이다.

자신의 가슴을 치고, 자기 뺨을 치라

누가 누구를 탓할 것인가? 요나처럼 “내 탓”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에덴의 비극은 정작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은 것이 아니라 죄의 전가였다. 하와는 하나님이 맺어준 짝이었다. 아담 스스로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호들갑을 떨며 감격하던 반려였다. 사랑하는 아내의 허물을 사내답게, 인류의 첫 조상답게, 하나님의 작품답게 스스로 덮어썼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까? 죄의 전가는 곧 이은 위장과 은폐였다. 철판으로 가려도 드러나고 하늘 꼭대기에 숨어도 끌어내실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어리석은 짓만 반복했다. 전가는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큰 교회, 작은 교회 할 것 없이 서로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리지 말자! 목회자, 평신도 가릴 것 없이 상대를 꼬나보지 말고 자신의 가슴팍을 세차게 때리자! 자신의 뺨을 때려야 한다. 조국교회의 문제를 자신 탓으로 돌리며 십자가의 처형장으로 선착순에 들고자 달음박질하는 그런 암팡진 자세가 그립다. 울자! 뜨겁게 울어보자! 에스라를 둘러쌌던 느헤미야 총독과 유다의 백성들처럼 며칠이고 회개의 눈물을 흘려보자! 니느웨의 백성들과 짐승들처럼 울부짖음이 일본열도를 뒤흔들고 중국의 장강 물길을 파도치게 하자!

교회여! 그대는 여전히 주님의 신부

사랑한다. 나의 신부여! 광야의 모래구덩이 속에 내버려진 그대를 안았던 내 가슴에는 아직도 핏덩이였던 어린 생명의 칭얼댐이 기억된다. 포대기로 싸고 젖동냥으로 키우며 세상의 시장과 골목을 누비기 그 얼마였던가? 첫 걸음마를 하던 날 나의 천사들이 손뼉을 쳤고 아장아장 걸으며 뒤뚱거리다 넘어지고 다시 안간 힘을 쓰며 몸을 일으킬 때 나의 천군들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머리카락에 윤기가 나고 몸이 아름다움을 한껏 뽐낼 때 그대의 봉긋 솟아오른 가슴은 “엘 샤다이”(두 개의 젖가슴을 가진 하나님)의 자애로움을 느끼게 했다. 에베소의 수호신인 아데미는 젖가슴이 많은 여신으로 숭배되었지만 나의 신부인 그대는 엘 샤다이의 그림자였으니 만족함이 내 가슴에 차고 넘쳤다.

우리가 정혼을 맺던 날 그대는 홍조 띤 얼굴로 날 힐끔 쳐다보았고 난 그대의 전 존재로 인해 기뻐했다. 내가 그대에게 준 정혼선물을 아직도 기억하는가? 내 생명을 지참금으로 주고 영원한 임재를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대는 먼 길 떠난 그 짧은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나의 자랑이었던 그대의 순결을 더럽혔다. 거짓 연인들의 품을 떠나라! 창기라 업신여김을 당해도 그대는 여전히 나의 신부다.

나의 신부, 나의 누이 조국교회

사랑한다. 나의 누이여!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바쳤던 헌시가 생각난다. 니체, 프로이트, 릴케의 가슴에 연정과 영감의 씨앗을 동시에 심어주었던 루 살로메의 생애가 그려진 <나의 신부여, 나의 누이여>가 기억난다. 유럽 지성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여인의 영혼을 탐색하던 40년 전 그날들이 어슴푸레 마음 한구석에 잔상으로 얼룩진다. 누이는 나의 사랑이지만 연인처럼 내 가슴에 품을 수 없는 사랑이다. 누이는 자신의 사랑을 찾아 길을 떠날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누이는 나의 사랑이다. 나의 누이는 내 어머니의 작은 생명이다.

이 땅에는 나의 누이 같은 교회들이 많다. 손아래든 손위든 누이는 다만 누이일 뿐이다. 백인교회, 흑인교회로 나뉠 수 없고 동양교회, 서양교회로 갈릴 수 없는 한 뿌리에서 가지를 뻗은 너와 나는 오누이다. 아버지를 기억하는 우리의 폭과 넓이가 다르고 아버지를 기념하는 의식에서 너와 내가 차이를 보인다 해도 한 아버지를 모신 한 핏줄로서 다르지 않음을 기억하라! 나의 누이는 결점 없는 영혼으로 태어났다. 내게 영감의 분천이 되고 내 지친 걸음을 잠시나마 쉴 수 있는 내 누이의 품은 나그네인 내게 하늘이 내리신 지상휴게소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교회를 채우라

사랑한다. 나의 영광이여! 그대는 내 모습으로 지음 받았기에 나의 영광이 그대의 존재를 채운다. 그대는 나의 하나 뿐인 보화다. 나의 광채는 그대의 모습을 통해서만 세상에 전해진다. 세상이 깊은 어둠에 쌓였어도 그대가 먼 바다를 지키는 등대가 되고 오두막을 밝히는 등불이 되며 세상을 비추는 달빛이 되었을 때 인간의 영혼은 편하다. 원수가 그대를 시시때때로 괴롭혀도 온유한 그대가 사자 같은 눈빛 한 번 번득일 때 사탄의 졸개들은 오금이 저렸다. 지난 세월 동안 그대는 잘 견뎠고 오래 버텼으며 영웅적으로 싸웠다.

그대의 전신에 남긴 상처들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그날이 오면 천상에서 가장 밝은 빛으로 상흔을 채워 주리라! 그대가 원수의 농간에 휘둘림 당하고 헛된 영광에 마음 빼앗겼을 적에 나는 긴 한숨으로 무수한 밤을 밝혀야 했다. 다행히 그대의 작은 지체들이 땅바닥에 떨어진 영광의 부스러기들을 모아 내 앞에 올렸을 때 나는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그대의 영광을 그대를 향한 내 진실한 사랑의 힘으로 복원시켰다. 그대는 그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내 유일한 영광임을 명심하라! 내가 내 아버지의 영광을 죽음으로 지켰듯이 그렇게 지켜주길 앙망한다.

 

 

조국교회를 위해 강산마다 기도로 가득했던 그 날을 오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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