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110) - 에스겔(2)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부회장 KC대 전 총장

“이에 내가 델아빕에 이르러 그 사로잡힌 백성 곧 그발 강가에 거하는 자들에게 나아가 그중에서 민답히 샤멤: 깜짝 놀라다. 두려워 떨다) 칠 일을 지내니라...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겔3:15,17).

에스겔서는 우리나라의 일제시대에 신앙인들에게 가장 많이 읽힌 성경일 것이다. 고난이 많고 희망이 없는 시대에 읽는 구약 성경들 중에서, 구약 에스겔은 재앙과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소망을 얘기하는 책이다. 에스겔서에는 에스겔이 부시의 아들이며 포로민으로서 주전 597년 느부갓네살 왕 때 바벨론에 포로로 붙잡혀갔다고 말한다. 그는 여호야긴 왕과 그와 함께 한 측근들과 함께, 상류층과 기술자들에 포함되었다(왕하 24:10이하). 에스겔은 델아빕(곡식의 언덕, 바빌론어로는 홍수의 언덕)에 정착했던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그 델아빕은 니푸르 강 근처, 그발 강이라는 이름의 강이었고 해협이었다. 여호야긴 왕 유배 후 5년(주전593년)에 예언자 에스겔은 소명을 받는다(3:15). “제 삼십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여호야긴 왕의 사로잡힌 지 오년 그달 오일이라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겔1:1-3).

유다의 도성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땅(겔4-24; 8:1;20:1;24:1)의 멸망에 대한 심판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 예언 신탁의 본질은 에스겔의 소명과 예루살렘 파괴(주전587/586) 사이에 있었던 5년에 속한다. 이 때에 에스겔은 멀리 포로로 붙잡혀가서 생활하는 중에 있으며 재난으로 피했던 사람들 중에 한 사람으로부터 고향 소식을 듣게 된다. “우리가 사로잡힌 지 십이년 시월 오일에 예루살렘에서부터 도망하여 온 자가 내게 나아와 말하기를 그 성이 함락되었다 하였는데”(겔33:21). 이 짧은 시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방 나라에 대한 예언(겔26-32)의 대부분이 기록되어진다.

새 성전의 환상이 에스겔 예언자 활동의 후기 10년(주전 583년)에 선포되고 기록된다(겔29:17). “우리가 사로잡힌 지 이십 오년이요 성이 함락된 후 십 사 년 정월 십일 곧 그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그 땅에 이르러 나를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겔40:1-2). 연대기는 적어도 주전 587년 예루살렘 몰락 전 시기에 남유다의 멸망의 위기들이 있었고, 그 기원이 있음을 추정하게 된다. 구원의 예언선포는 아마도 그 유다의 멸망 후에 기원하고 있다.

예루살렘 성전의 환상은 에스겔이 팔레스틴에서 사역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겔8-11장). 그러나 하나님의 영에 붙들리는 환상은 예루살렘 안에 있는 상황으로 볼 수 없고 에스겔의 초기 시기에 있지 않은 것 같다(8:3). “주의 신이 나를 들어 하나님의 신의 이상 중에 데리고 갈대아에 있는 사로잡힌 자 중에 이르시더니 내가 보는 이상이 나를 떠난지라 내가 사로잡힌 자들에게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모든 일로 고하니라”(겔11:24-25). 하나님의 영, 성령이 에스겔을 인도하는 모습을 통해 오늘의 시대를 우리가 관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는 소망을 갖게 된다. 이는 예언 사자(메신저)의 보고를 통하여 예레미야 예언자와 유사한 것에 이른다(렘29장, 예레미야의 바벨론 포로에게 보내는 편지). 에스겔은 환상과 꿈, 이상 중에 하나님의 영에 이끌리어 다니는 타임머신을 타고 움직이는 체험을 많이 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장면은 곧 말씀의 선포의 순간이며 하나님께 이끌리어 예언하는 시간이었다. 오늘 주의 종들이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성령 충만의 시간과 유사할까. 하나님 말씀(레마)이 임하여 주의 메시지를 전하며 오늘도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일과 유사하다.

독신 생활이 예레미야 예언자에게는 상징적인 중요성을 가졌다(렘16:2). 역시 에스겔도 갑작스런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그에게도 중요한 아내를 상실하듯, 나라가 없어지는 의미를 가진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내가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번 쳐서 빼앗으리니 너는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말며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종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우지 말고 사람의 부의하는 식물을 먹지 말라 하신지라 내가 아침에 백성에게 고하였더니 저녁에 내 아내가 죽기로 아침에 내가 받은 명령대로 행하매”(겔24:15-18). 예루살렘이 파괴되는 것에 대한 이스라엘 반응에 대한 대표로서 “너는 애도하거나 눈물을 흘리지 말라!” 에스겔의 개인적 체험은 그 밖에 어느 곳에서도 심지어 육체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데, 떨리거나 기절하거나 벙어리 상태가 되고 묶이는 행위 등이 나타난다(겔3:15; 22; 4:4이하; 6:11; 12:17이하; 33:21이하). “인자야 너는 탄식하되 허리가 끊어지는 듯이 그들의 목전에서 슬피 탄식하라”(겔21:6). 이러한 이상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고 에스겔 설교의 내용과 특히 심판 선포에서 그러한 역할이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놀랄만한 현상은 병적 증세를 가진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예언자가 되고 주의 종이 된다는 것은 보통 평범한 삶을 산다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주의 영에 붙들린 사람들은 하나님의 환상과 말씀에 도취된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에스겔은 그렇게 하나님의 신(영)에 붙들린 예언자였다. 주님도 그러한 모습으로 아버지의 영에 붙들려 공생애를 보냈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가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눅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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