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은 신앙전수의 자리며 사명을 확인하는 곳

최종인 목사의 The Table

【편집자 주】 성경에는 여러 테이블(식탁)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의 테이블, 야곱, 요셉, 다윗, 에스더 등 구약의 인물들은 식탁에서 많은 영적 경험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뿐 아니라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식탁을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서 식탁의 교제를 했고, 바울 사도는 빌립보에서 루디아와 간수의 집에서 식탁을 나누었습니다. 계시록에는 우리가 천국에 가면 어린양의 혼인 잔치 테이블에 초대를 받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식탁을 경험합니다. 가족들과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교회에서도 교인들이 애찬을 나눕니다. 직장과 수많은 만남 속에 우리는 식탁을 대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의 테이블은 과연 건강한가?’를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들은 <최종인 목사의 The Table>을 통해 가정과 교회와 직장이 살아나는 경험을 나눌 것입니다.

 

 

최종인 목사, 평화교회담임, 성결대, 중앙대석사, 서울신대박사, 미국 United Thological Seminary 선교학 박사, 공군군목, 성결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교수

오늘날 우리는 주일학교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각 교회들마다 주일학교가 모이지 않는다고 한탄합니다. 주일학교의 하락은 결국 미래 교회의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심각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다음 세대의 교육이 주일학교만의 책임일까요? 성경에서 보면 신앙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출발한 것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세상 사는 날 동안 나를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리라”(신 4:10)

유대인들은 자녀에게 율법을 가르칠 것을 의무로 명령하고 있습니다. 특히 절기 때의 식탁은 가장이 음식을 나누면서 자녀들에게 믿음을 전수하는 복된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와 같이 현대 교회의 가정들도 가정에서부터 자녀들에게 신앙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 방법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은 식탁이라고 봅니다. 유대인들처럼 식탁에서 신앙을 전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족들 모두 바쁘고 현대인의 생활 여건상 한자리에 모이기 어렵습니다. 부모들은 생활을 위해 밤낮없이 나가 일합니다. 자녀들도 경쟁사회에서 낙오되지 않으려고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 독서실을 오고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개인주의를 부추기는 많은 매체들이나 게임 오락 등은 가족공동체를 해체하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상황이 어렵다 해도 가정에서조차 신앙교육을 방치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자녀의 신앙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주일학교에만 의조하지 말고 ‘성경엄마’ 또는 ‘성경아빠’가 되어 가정에서부터 신앙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자녀들의 인격이나 신앙이 자랄 수 있는 곳은 학교가 아니라 가정입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 부모들조차 아이들의 교육을 학교에만 맡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자녀들이 학교에서 무신론적 교육과 도덕적으로 타락한 인본주의적 교육만 받음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식탁을 방치하였습니다. 식탁은 단순히 식사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식탁을 신앙교육의 자리가 되도록 바꾸어야 합니다. 다른 자리에서는 어렵지만 식탁에서 신앙을 전수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정

성경에서 가정은 생육과 번성이 시작되는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가족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복 주시는 진원지였습니다. 하나님은 가족의 혈통을 통해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복이 가족을 통해서 전해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야곱은 자녀들에게 복을 주면서 가족이 하나님이 내리시는 복의 통로임을 밝혀 주었습니다.(창49:2~28) 예수님의 족보에서는 믿음을 지키면 예수님의 가족에 포함될 수 있다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가족은 혈연에서 출발하였지만 믿음의 공동체로 확장되어야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과 가정의 식탁

인간은 음식의 섭취를 통해 자연과 연합되고 사회적 관계 속에 참여하게 됩니다. 즉,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인간이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사회적 존재임을 지속적으로 확증하는 활동인 것입니다. 음식의 섭치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의 중요한 일부가 됩니다. 인간은 식물을 섭취하면서 자연을 몸속으로 받아들이고 생명을 유지합니다. 음식 섭취는 인간과 자연이 상호 의존적으로 교류하는 활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첫 번째 명령은 “동산의 과실을 임으로 먹으라”였습니다. (창 2:16) 그러나 이와 함께 동산 중앙에 있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열매는 먹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아이러니하게 음식의 섭취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는 행위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의 먹이통인 구유에서 태어나십니다. 이는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의 양식으로 오셨다는 상징적인 사건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먹게 하고 피를 마시게 함으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결국 자신을 구원의 식탁의 음식으로 내 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음식을 탐하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고, 음식 먹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의 도래를 선포하는 핵심적인 방법으로 삼으셨습니다.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은 가족들이 모인 식탁에서는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면서 서로를 축복하고, 음식을 떼며 나누는 행위가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피터슨의 주장처럼 가정의 식탁에서는 축복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음식을 떼면서 제자들과 유월절 잔치를 가지셨습니다. 나눔은 공동체의 존재의 이유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누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식탁에서의 신앙교육

그렇다면 식탁에서 신앙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먼저 구원이야기 나눠져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누구를 통해서 믿게 되었고, 현재의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는지 부모나 조부모로부터 이야기를 통해 다음세대에 전수되어야 합니다. 사실 가족이란 단순히 혈연관계로 모여 생활하는 집단이 아니라 인생이 태어나고, 자라고, 함께 만들어가는 삶의 자리입니다. 가정에서 신앙교육은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신 6:8)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에 기록하라”(신 6:9) 이것은 고대 유대인들 역시 가정에서 신앙교육을 한 것을 명령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가정의 식탁에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나눠야 합니다. 보드 바딘(Todd Bardin)은 “유월절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셨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는 절기이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식탁에서 하나님이 유월절을 통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자녀들에게 알려줍니다.

 

세 번째로 가족들은 식탁에서 주께서 주신 사명나누어야 합니다. 성만찬으로 알려진 예수님의 마지막 식탁은 구원과 함께 사명을 전달하는 기회였습니다. 만찬에 참여한 사람들은 주님께로부터 전달받은 사명을 세상에 나가 전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제자들과 나눈 이 만찬의 식탁 역시 확대된 가정 식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탄을 통해 제자들이 사명을 받았듯, 성도들은 식탁을 통해 각자의 사명을 다시 확인하는 신앙교육이 있어야 합니다.

『Appearance While the Apostles are at Table』, Duccio di Buoninsegna, 1308-1311

 

네 번째로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식탁에서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식탁을 관찰해 보변 그들은 함께 모여 식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식탁교제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키웠던 것입니다. 따라서 가정에서부터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어려서부터 교회생활이 중요함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다섯 번째로는 가정의 식탁에서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도록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식탁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눅22:16)고 하셨습니다. 즉 진정한 최후의 만찬은 아직 베풀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가정의 식탁에서 하나님 나라에서 맞이할 예수님과의 식탁을 소망하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계시록 21장에는 마지막날에 하나님의 혼인잔치에 성도들을 초청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과 함께 하는 천국에서의 잔치를 가르치면서 이 땅에서 소망으로 살아갈 것을 가르쳐 주는 식탁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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