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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헌신'과 '희생'을 잃어버린 오늘교육과 교회의 붕괴, 미래는 카오스이다.
  • 발행인최원영목사
  • 승인 2019.06.17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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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718
사진: 김경자목사 제공

희생과 헌신을 가르치지 않고 성공만 가르치는 부모의 자녀교육은 머지않아 블랙홀처럼 한국사회를 ‘카오스’로 빠뜨릴 수 있다.

조벽(숙명여대 석좌교수) 교수는 한국 부모의 자녀교육  문제를 지적한 적이 있다. 첫째, 자녀'기생하는 존재'가 아니라 ‘기여하는 존재’로 키우라고 권면한다. 아이를 기생하는 존재로 키우는 부모의 특징은 “내가 먹여주고 태워주고 입혀주고 뭐 사주고 다 할 테니까 넌 그냥 앉아서 공부만 해. 공부해서 남 주냐? 오로지 너만을 위해서, 네 주변에 있는 거 네가 다 끌어다 써라.”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를 기여하는 존재가 아니라 기생하는 존재로 키우고 있다고 했다.

둘째, 한국에서 들은 말 중에 '공부해서 남 주냐'가 가장 충격적인 언어였다고 한다.자녀들을 이기적인 존재로 양육하고 있다고 한다. “인재라는 것은 도달하는 목표점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라고 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가? 의미와 가치를 정신속에 심어주어야 한다.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얻기 위한 목적이라면 이것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셋째, 자녀를 ‘정서적 흙수저’로 키우고 있다고 한다. 빈부격차에 따른 신분세습을 의미하는 ‘금수저’ ‘흙수저’와 달리 ‘정서적 금수저’와 ‘정서적 흙수저’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항공 사주 일가를 예로 들어 자녀를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경제적 금수저’가 ‘정서적 흙수저’로 자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자녀를 정서적 금수저로 키우라고 권면한다. '정서적 흙수저'는 한국교육의 단면일 수 있다.

한국교회 이대로 가면 안된다는 인식을 정상적인 지성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너무 '편리주의'를 따라간다는 것이다. 예배도 편해야 된다. 예배 분위기도 좋아야한다. 예배를 섬기는 사람들의 수준도 높아야한다. 내가 편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한다. 내 삶을 내 교회 예배 현실에 맞추기보다는 나에게 편리한가 아니면 불편한가를 먼저 따진다. 교회가 나에게 시간과 물질과 헌신을 강요하느냐? 안하느냐? 이것으로 좋은 교회냐 아니면 불편한 교회인가를 판단한다. 예수님의 정신에서 심각하게 벗어난 모습이다.

또한 편의주의 신앙이 '한국 교회 생태계'를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다. 편하게 신앙생활하겠다는 편의주의 신앙생활로 말미암아 미자립개척교회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대형교회로 성도들이 수평이동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것은 더 심화될 듯싶다. 교회생태계가 깨져버리면 한국교회는 공멸하게 된다.

작은 교회는 모자리판이다. 모자리판이 건강해야 벼를 이식할 수 있다. 그런데 모자리 역할을 하고 있는 개척교회들의 생태계가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다. 결국에는 모자리에 모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이식할 모가 없으면 한국 교회는 함께 공멸할 수 있다. 생태계가 한 번 망가지면 복원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간다. 어쩌면 다시는 복원이 불가능할 수 있다.

편의주의 신앙은 ‘희생이 없이 값싼 은혜’를 추구한다. 본 훼퍼는 헌신과 희생이 없는 신앙은 “값싼 은혜”라고 했다. 기독교 신앙이란 무엇인가? 기독교 신앙은 나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 가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이런 신앙이 없다면 값싼 은혜에 불과하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본헤럴드대표, 변화산기도원협력원장,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등. 주기도문 연구 등 다양한 책을 저술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문제점들을 살펴보았다. 사회나 교회나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방식은 같다. 예수님의 제자도에게 그 해결 방안을 찾아 볼 수 있다. 예수의 제자들이 걸어가는 길이 무엇인가? 제자들과 무리들은 가는 길이 다르다. 제자들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가? 그 해답을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제자란 누구인가? 스승을 따라가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제자이다. 첫째, 제자는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자기 욕망과 욕구가 강하다. 그러나 제자들은 날마다 내려놓아야 한다. 내려놓는 것이 때로는 죽는 것보다 힘들 때도 있다. 그러나 주님이 내려 노라하면 내려놓아야 한다.

제자는 내것이 아무것도 없다. 한 마디로 청지기이다. 청지기는 주인이 맡겨준 것을 성실함으로 감당하는 관리인이다. 청지기가 관리하는 것은 아무것도 자기 것이 아니다. 주인이 잠시 맡긴 것이다. 제자들에게는 내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자기 것을 주장하면 그 즉시 하나님의 나라는 붕괴하기 시작한다. 날마다 자기를 내려놓고 비우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것이 제자이다.

둘째, 제자란 '자기 십자가'를 자기가 져야 한다. 나는 본푸른교회 담임목사로서 내가 감당해야할 십자가가 있다. 장로님들은 장로님들이 감당해야할 십자가가 있다. 자기가 감당해야할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제자이다. 자기 십자가가 있다. 그런데 적당하게 묻어가는 제자가 되면 공동체에 큰 짐이 된다. 몸이 닳아 없어질지언정 자기 십자가를 자기가 감당하는 것이 우리 사회와 교회를 회복하는 길이다.

져야 될 십자가의 짐이 많다는 것은, 그 만큼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거꾸로 져야 될 십자가가 전혀 없다는 것은 삶의 영향력이 없다는 증거이다. 불행한 인생이다. 교회와 사회에서 짊어져야할 헌신의 무게가 많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 만큼 일을 잘한다는 것이다. 리더가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살면서 이력서가 많아진다는 것은 축복이다. 이력서도 화려한데, 온유와 겸손으로 자기 십자가를 스스로 짊어지고 간다면 공동체에 큰 기쁨이 된다.

셋째, 제자란 '주를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한다. 기독교는 역설적인 종교이다. 자신을 버리면 얻는다. 먼저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하늘의 영광으로 주님이 채워준다. 이 진리는 기독교를 이 땅의 소금이요 빛으로 세워가는 기둥이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5,26)

사진: 김경자목사제공

기독인들의 자녀교육방식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오늘의 교육방식이 미래를 어둡게 할것인지 찬란하게 창조적인 문화를 만들것인지? 그것은 오늘이 결정한다. 제자도에 의한 교육방식인지, 이기적이고, 인본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교육방식인지를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역사는 반복한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배운다. 세계교회사를 우리는 배웠고, 지금 그 현실을 보고 있다. 영광스러운 기독교가 이교도에 짓밟히고 병든 문화에 무너져 내리는 처참한 광경을 보고 있다. 큰 교회, 작은 교회 구분하지 말고, 나에게 편한 교회이냐 불편한 교회인가로 구분하지 말고, 나에게 경제적 이익을 주는 교회이냐 아니면 나에게 경제적 유익이 전혀 없는 교회이냐를 구분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인간의 욕심을  내려놓고, 헌신과 희생을 향한 제자의 길을 뚜벅뚜벅 삶의 자리에서 실천해야 한다. 항상 선택은 두길이다. 내가 편한 곳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헌신이 필요한 곳을 향해 찾아가는 내려놓음이 절실하다. 이것만이 오늘 우리의 병든 모습을 정화할 수 있는 길이라 본다.

익산동산교회는 편의주의 신앙을 극복하기 위해서 교회의 평생 실천 목표를 정했다고 한다. "죽어도 예배, 굶어도 십일조, 쓰러져도 새벽기도, 힘들어도 전도"이다. 교회 유산을 이어가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라 볼 수 있다.  모든것은 기초이다. 기초는 견고할수록 좋다.

이기심과 편의주의 신앙이 우리 교육과 교회를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있다. 날마다 자기를 비우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위해 생명까지 드리는 헌신과 희생만이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 그런 가정에서 영적 지도가 나온다. 이기적인 가정, 편리주의 신앙을 따르는 가정에서는 역사의 인물을 기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교육, 교회 생태계를 더 이상 파괴하지 말라. 그러면 그 대가는 너무도 참혹하게 다가올 것이다.

 

발행인최원영목사  jho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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