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하나님은 조용히 도우시는 하나님”

서울신학대학교 황덕형 신임 총장 특별 대담

서울신학대학교 이사회(이사장 전병일 목사)는 지난 5월17일 이사회를 통해 서울신학대학교 차기 총장으로 황덕형 신임 총장을 선출했고, 제113차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정기총회를 거쳐 인준을 받았다. 이제 교육부 선임을 거쳐 9월부터 본격적인 총장 임기가 시작될 황덕형 신임 총장을 만나 각오와 계획을 들어봤다.

▶대담자 : 황덕형 신임 총장(서울신학대학교), 최원영 대표(본헤럴드 대표, 본푸른교회 담임목사)

▶일시 및 장소 : 2019년 7월 18일 오후 4시, 서울신학대학교

▶동행취재 : 윤홍식 웹본부장

Q1. 먼저 지난 5월 이사회를 통해서 제19대 서울신학대학교 총장으로 선출됨을 축하한다. 총장으로 선출된 소감과 각오는 무엇인가?

A. 먼저 어려운 때에 하나님이 내게 총장을 맡기셨다. 부족한 사람을 뽑아주셔서 감사하며, 총회를 통해 인준받을 때 ‘우리 학교가 교단의 학교구나’하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고, ‘나는 교단이 서울신학대학교에 파송한 선교사다’라는 생각과 ‘나는 주님의 종이다. 주님이 일을 맡기셨다’는 각오를 갖게 됐다.

Q2. 9월부터 시작될 4년간의 총장 임기를 위해 지금쯤이면 분주히 <총장인수위원회>가 활동을 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본격적인 임기를 앞두고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

A. 총장인수위원회가 신경 쓰는 부분은 대학평가를 위한 준비이다. 우리 학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지난해 교육부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를 받지 못해 '진단 제외 대학'을 받았다. 그래서 내후년에 있을 대학평가는 최선을 다해 평가에 통과하도록 준비를 지금부터 하고 있다. 내후년 있을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에서는 기준 점수 이상을 받는 것이 목표다.

Q3. 이번 제19대 서울신학대학교 총장 선거에는 서울신대 교수 6명과 교단 목회자 1명, 타 신학교 교수 1명 등 전체 8명의 입후보자가 있었는데, 후보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훌륭한 분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결국 황덕형 총장을 선출하게 된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그렇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나보다 훌륭한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를 선출한 것은 아무래도 표면화된 학교의 갈등을 통합하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나는 다른 후보들과 달리 특별한 배경이 없다. 그러다 보니 학교를 잘 추슬러서 하나 되게 하라는 이사회의 의지가 있던 것 같다. 그래서 통합과 소통이 나에게 맡겨진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Q4. 황덕형 신임 총장은 그간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신학대학원장, 총무처장, 학생처장 등 여러 보직을 맡아 일해 왔고 특히 총장으로 선출되기 전에는 부총장으로 활동을 해왔기에, 누구보다 서울신학대학교를 가장 잘 아는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서울신학대학교의 회복과 발전을 위한 청사진도 남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총장이 생각하는 서울신학대학교의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제일 중요한 것은 대학 구조개혁평가에 따른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또 우리 대학은 이름은 서울신학대학이지만 부천에 있다. 하지만 이 지역과 여전히 소통이 부족하다. 이 지역과 밀착하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시대와 지역의 요청에 부합할 수 있는 우리 학교만의 특성이 있는 대학으로 구조조정해야 한다. 또한 대학원도 경쟁력 있고 미래지향적인 대학원이 되도록 변화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동시에 재정 안정화도 시급한 과제다. 우리 학교는 신학과 관련된 학생이 1200여 명이 된다. 예전에는 이 정도 정원이 걱정 없이 충원이 되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듀얼 디그리(Dual degree) 프로그램도 생각하고 있다.

Q5. 황덕형 총장은 무엇보다도 조직신학자로서 그간 열심히 활동을 해왔고, 특히 성결교단의 교의학을 잘 정리해서 <성결교의학>이라는 책을 내놓아 한국 성결교단의 정체성 확립에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성결교단의 모체로서 서울신학대학교가 갖는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현재 <한성연(한국성결교회연합회)>라는 단체도 있고 <OMS선교회>를 기반으로 동남아에 여러 신학교와 교회들이 있다. 이분들을 묶어서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 교단이다. 우리 교단은 사중복음을 기반으로 한 교단이 맞지만, 사중복음은 운동이고 그 바탕은 웨슬리 신학이다. 우리 교단은 웨슬리적 신학 사고를 바탕으로 실천적 사중복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나는 우리 교단이 세계적인 흐름인 오순절적인 운동을 이끌어갈 가장 적합한 교단이라고 확신하는데 그 기반도 웨슬리 신학이다. 우리 교단은 웨슬리적 신학 사고를 바탕으로 실천적 사중복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나는 우리 교단이 세계적인 흐름인 오순절적인 운동을 이끌어갈 가장 적합한 교단이라고 확신하는데 그 기반도 웨슬리신학이다. 한국교회 성도들의 영적인 체력이 약한 것은 그들에게 신학적 사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교회 다니는 성도들에게 “구원 받은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어보면 그것을 잘 말하지 못한다. 구원 받았다는 것은 무엇보다 의로워졌다는 것이다. 그것을 가장 확증할 수 있는 신학과 교단이 바로 서울신학대학교이고 우리 교단이다.

Q6. 좀 민감한 질문을 하겠다. 서울신학대학교는 얼마 전 논문 표절 문제로 시끄러웠는데,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며 또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A. 지난 표절시비의 문제가 발생할 때 대다수 교수들은 너무 안타까워했다. 대부분의 서울신대 교수들까지 그렇게 보는 것은 부당하다. 모두들 자기 학문에 최선을 다해 연구하고 있으며, 논문 표절의 문제는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앞으로 재발방지 및 교수들의 윤리적 자정능력으로 회복되리라 본다.

Q7. 서울신학대학 뿐 만 아니라 전체 기독교 대학의 가장 큰 고민은 기독교의 정체성이 학내 다른 구성원들과 잦은 충돌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서울신학대학교도 신학과 외에 타 과 학생들도 있고 교직원들 중에서도 비기독교적인 사고를 가진 구성원들도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런 모든 학교 구성원들과 화합을 이루면서도 기독교 대학으로 정체성을 잃지 않는 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그렇다. 이것은 모든 기독교대학의 과제다. 이를 위해 첫째, 철학적인 질문을 해결해야 한다. 우리 학교가 갖는 기독교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세상의 보편타당한 논리와 기독교의 진리가 만났을 때 그것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기독교의 진리를 통해 세상 학문의 진리가 더 깊어지고 더 지혜로워질 수 있다는 확신이다.

둘째, 이사님들이 우리 학교의 전통과 진리를 지키려는 의지와 자세가 중요하다.

셋째, 대화가 중요하다. 현재 우리 학교는 명목적으로 비 기독교인이 약 50% 가까이 된다. 그러므로 그들과 깊은 대화가 있어야 한다. 비 기독교인들에게 우리 학교가 삶의 도움이 된다는 이해를 위해 대화와 설득이 필요하다.

Q8.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입학정원의 급격한 감소로 모든 대학들이 생존을 위한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서울신학대학교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울신학대학교의 총장으로 이 부분을 어떻게 준비할 계획인가?

A. 대학입학정원의 감소는 재정 악화로 이어지기에 이 부분이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맞다. 안타깝게도 우리 학교는 전체 학생의 20%를 줄여야 해서 1년에 약 20억 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그러므로 우리 대학의 생존을 위해서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 학교는 경기도 권에 있어서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문제에서는 좀 자유롭다. 오히려 더 좋은 학생을 유치하는데 총력을 기울이면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Q9. 개인적인 부분의 질문을 하겠다. 신학자이며 총장이기 전에 신앙인으로서 지난 인생의 여정 속에 “내가 만난 하나님”을 간증해 줄 수 있는가?

A. 나는 “내가 만난 하나님은 조용히 도우시는 분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려면 나를 보라고 말한다.

나는 서울신학대학에 학생으로 입학 당시에 장학생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금요일에 시험을 앞두고 월요일에 갑자기 맹장 수술을 하게 됐다. 당시 집안에서는 신학대학 들어가면 학비는 줄 수 없다고 해서 장학생으로 들어가는 길 밖에 없을 정도 절박했다. 하지만 시험을 며칠 앞두고 맹장 수술로 인해 시험을 포기할 무렵 갑자기 학교에서 시험이 한 달 연기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행히 이후 더 준비를 해서 장학생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서울신대 교수로 들어올 때도 그랬다. 독일 보쿰(Bochum)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나는 박사 되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 하지만 한국으로 급히 돌아가야 해서 주심 교수에게 박사 논문 평가서를 재촉을 하니까 주심이 “나는 다 썼는데, 부심 교수가 아직 안 썼다”라고 말하면서 부심 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마침 아프리카 선교 중인 부심 교수가 전화를 통해 “그 논문의 한 부분이 어둡다(Dunkel)”는 것이다. ‘논문에 논리적인 문제가 있다’는 부심의 전화상의 평가를 듣자 순간 두려움이 몰려왔다. 지난 5~6년간에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 같았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다가 은혜를 받았다. 기도가 끝날 무렵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면서 ‘나는 주의 종이므로 어디든 가겠다. 주님께 순종하겠다’는 기도를 하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 5~6시 무렵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서울 신덕교회에서 전화가 부목사로 오라는 전화였다. 보통 때 같으면 박사 논문 통과를 앞두고 한국으로 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바로 전날 밤에 하나님께 “어디든 가겠습니다. 무조건 순종하겠습니다”하며 서원한 것이 있어서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이 주님이 나를 목회 현장으로 부르시는 싸인임을 확신했다. 다음날 나는 곧바로 순종했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신덕교회 부목사로 8개월쯤 일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독일에서 논문 심사를 마쳤으니 마지막 시험을 보라는 전화가 왔다. 그래서 다행히 시험을 보고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목회하면서도 내 마음에는 여전히 학교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당시에 서울신학대학교에 조직신학으로는 도저히 자리가 없었지만, 마침 당시에 연구전임교수 제도로 인해 들어올 수 있었다. 나는 그 때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서울신학대학교 교수가 된 것은 하나님께 올린 기도의 응답이라고 확신한다.

Q10. 정말 감동적인 간증이다. 그렇다면 평소에 좋아하는 성경 말씀과 찬송가는 무엇인가?

A. 나는 시편 40: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하나님이 내게 새 노래를 주시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통해 세상은 ‘저 사람에게 하나님이 살아 함께 하시는구나’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말씀이 힘이 된다. 찬송은 384장 ‘나의 갈길 다가도록’을 애창한다.

Q11. 조직신학자로서 신학적 용어 중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단어가 있다면 무엇인가?

A. 나는 ‘계시’라는 단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계시는 끝났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이 아니다. 계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계시 외에는 없다.

동시에 성결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성결은 종말론적인 개념이다. 인간에게 주시는 종말론적인 요청이 바로 성결이다.

Q12. 아무래도 가장 가까이에서 젊은 청년들을 만나는 총장으로 이 시대 청년들의 장점과 부족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더불어 이 시대 기독청년들에게 하시고 싶은 권면은 무엇인가?

A. 기독청년들에게는 꿈을 크게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믿는 대로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세상을 대해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구한대로 꿈꾼 대로 된다.

Q13. 가족 이야기를 알고 싶어 하는 독자들이 많을 듯하다. 사모는 어떻게 만났으며, 자녀들은 지금 무엇을 하는가? 또한 가족의 가훈이나 사명이 있다면 무엇인가?

A. 나는 아내를 독일 가기 직전에 만났다. 당시 사돈댁의 어르신이 우리 집사람의 선배였다. 집에서는 독일에 가려면 결혼하라는 말을 했는데, 마침 사돈댁이 “이화여대 학생 중에 목사를 찾는 여자가 있다”는 말을 했다. 당시 나는 육군 군목을 마쳤고, 아내는 대학원을 막 졸업을 앞둘 때였다. 그렇게 만났다. 당시 아무것도 없는 신학생을 뭐 볼 것이 있다고 믿고 따라와 준 아내가 감사하다. 자녀는 2명이며 큰 아들은 우리 학교 M.div이고, 둘째는 고등학교 2학년이다. 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큰 소원을 품어라. 하나님이 세우시는 가계가 되게 하라”라고 말한다.

Q14. 지난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와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면 무엇인가?

A. 제일 힘들었던 때는 서울신대 연구전임교수로 들어왔을 때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요즘이 더 마음이 무겁고 힘들다. 가장 행복했던 시기는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한 시간들이다.

Q15. 독일 유학 중에 에피소드가 있는가?

A. 맨 처음에 독일을 갔을 때 일이다. 당시 쌍둥이 형제인 동생도 같이 독일에 왔다. 입학 후 얼마 안 있어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내가 여자를 바꿔가지고 다닌다는 오해를 받은 것이다. 동양인 쌍둥이라 사람들이 오해한 것이다. 쌍둥이어서 같이 공부하고 같이 토론하고 같은 성향의 신학적 사고를 품게 됐다.

또 교회사 교수에게 어거스틴을 배우는데, 그분은 강의를 쉽게 해서 100% 가까이 이해할 수 있었다. 삶과 경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진지하게 말을 했고 강의를 들으며 은혜를 받은 기억이 있다.

바쁜 와중에 인터뷰에 응해줘서 감사한다. 신임 총장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과 학교 운영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발견해서 매우 기쁜 자리가 됐다. 황 총장의 고백처럼 ‘조용히 도우시는 하나님’이 사역 가운데 함께 하실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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