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웨슬리언 대학교 총장 및 교단 대표 컨퍼런스

웨슬리언교회지도자협의회는 제1차 웨슬리언 대학교 총장 및 교단 대표 컨퍼런스를 성결대학교 학술정보관 국제소회의실(2021.6.25.)에서 개최하였다.

1부 예배, 사회는 박동찬목사(일산광림교회, 상임회장), 기도는 이일상 목사(상임회장), 성경봉독은 김만수 목사(상임회장)가 순서를 맡았다.

특별순서로 본회 대표회장인 주삼식 목사가 김상식 목사(성결대 총장)에게 본회 회원 추대장을 수여하였다.

주남식 목사(전 기성 총회장, 전 대표회장)웨슬리언교회지도자협의회가 발전된 것은 각 교단 지도자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고, 오늘 여기에 모이신 모든 분들이 계셔서 가능했다. 또한 양기성 박사의 남다른 웨슬리 사랑과, 협의회를 위한 열정과 헌신과 희생의 바탕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은 위기의 시대이다. 지도자들이 고난의 계절에 사회적 영적 도덕적 영향력을 끼치는 협의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축사를 남겼다.

주삼식 목사(전 성결대 총장, 본회 대표회장)는 길갈, 새로운 시작”(5:8~12)이란 주제로 말씀을 선포했다.

주 목사의 말씀을 요약하면,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요한 장소이다. 길갈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새롭게 시작했고, 길갈에서 새로운 다짐을 했다. ‘길갈’(5:9)의 의미는 애굽의 수치를 떠나게 하다는 말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불평불만 의심과 우상숭배로 하나님과 지도자를 원망했다. 애굽의 수치스러운 죄악의 관성이 뼈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있다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의 모든 수치에서 떠나라는 메세지이다.

두번째는 할례를 받지 못했던 광야 세대들에게 하나님은 전쟁 전에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했다.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적의 기습을 초래할 수 있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기를 악화시키는 일이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보다 하나님은 먼저 애굽의 수치를 떨어내는 것을 요구했다. 할례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기 원하셨다. 할례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먼저 할례를 행하기를 원하신다. 관계회복을 원하신다.

할례를 할 때 사용한 도구가 부싯돌이다. 부싯돌로 표피를 베어내는 것이 할례이다. 주님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비 본질, 비 신앙적인 것을 말씀의 검 부싯돌로 베어내는 행위를 요구하신다.

여호수아 510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켰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발은 유월절에서부터 시작한다. 할례를 행한 자만이 유월절에 참석할 수 있고, 유월절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이 말씀은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하나님의 새 생명에 동참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영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길갈에서 영성을 회복한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되새겨봐야할 지점이다. 우리 자신의 길갈은 어디인가? 새로운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애굽의 수치를 떨쳐버려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버릴 것인가? 그리고 반드시 할례를 행해야 한다. 할례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월절잔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의 잔치에 참여하라.

2부 좌담회는 학술공동회장 조진호 사관이 진행하였고, 기조강연은 양기성 박사가, 기감은 이후정 총장, 기성은 황덕형 총장, 나성은 신만규 전총장, 예성은 김상식 총장, 구세군은 조진호 전 총장순으로 진행되었다.

양기성 박사(본회, 사무총장)뉴 노멀시대에 웨슬리언 리더십의 책임과 사명이란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강연의 내용을 요약하면, 기독교 역사를 보면 영적.윤리적 타락으로 인해 교회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회개개혁을 외치는 예언자들이 등장했다. 한국 개신교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이 있다.

(1)1903년 원산에서 시작되어 1907년 걸쳐 일어난 평양대부흥운동이다. 영적대각성운동과 부흥운동은 하디(Robert A. Hardie, 1865-1949) 선교사의 회개운동에서 시작되었다.

(2)웨슬리 정신으로 성결하게 살았던 이성봉 목사(1900.7.4-1965.8.2)이다. 이성봉 목사를 한국의 무디로 부른다.1930년대부터 이성봉 목사는 순회부흥목사로서 한국 교회 성결운동과 영혼구원을 위한 부흥운동을 주도했다

(3)한국최초의 여자 목사로 순복음교회의 대모인 최자실 목사의 삶은 웨슬리 정신 그 자체였다. 이성봉 목사의 부흥회 참석하여 은혜 받고 개신교에 입교했다. 1958년 최자실 목사와 조용기 목사가 순복음교회의 전신인 대조동 천막 교회를 개척했고, 그 후 여의도순복음 교회는 세계 최대교회로 성장했다.

(4)웨슬리언 대학과 교회들이 뉴노멀 시대를 뛰어넘는 부흥운동을 주도할 수 있다. 각 교단의 특색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감리교회는 규칙적인 경건한 공동체적 조직을 넓혀 온 세계로 확장해가고, 성결교회는 오직 성령충만함과 청교도적 청빈한 삶을 살고, 나사렛교회는 나사렛 출신 예수님이 가난한자들을 돌본 것처럼, 가난 퇴치에 앞장서고, 구세군교회는 자선냄비와 박애정신을 가지고 세상과 교회를 연결하며, 순복음교회는 은사를 다시 회복하여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고 희망의 제언을 했다.

이후정 박사(감신대 총장)감리교단과 감신대학교의 웨슬리 신학의 현황을 발표했다.

(1)조선 말엽 아페젤러 선교사의 복음 전파로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시작되었다.

(2)초기 감리교 선교사들은 미국의 부흥운동과 복음주의 경건주의 영향을 받았다.

(3)캐나다 출신 감리교 선교사 로버트 하디는 웨슬리언 영성과 신학에 기반을 둔 회개운동을 주도했다.

(4)일제 강점기에 자유주의 혹은 진보적 신학 이슈가 있었지만 한국의 개신교는 기본적으로 복음주의, 경건주의 신학을 지켜왔다. 그것은 웨슬리언 유산이다.

(5)부흥운동신학- 고난당하는 한국 교회를 지탱해주는 영적 힘을 공급했다.

(6)고난당하는 민족을 가슴에 품고 울던 기도의 영성이 있다. 구국기도, 민족제단과 같은 기도운동은 웨슬리언 부흥 운동이 범 교단적으로 퍼져 있다는 증거이다.

(7)한국감리교회는 웨슬리신학과 영성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하지만 감리교회의 지나친 정치화는 다소 웨슬리언 전통에서 벗어났다. 새로운 부흥과 회개가 일어나야 한다.

(8)감리교회는 복음주의와 자유주의, 보수주의와 진보주의가 믹서 되어 있다.

(9)1960-70년대 감신대는 신정통주의 신학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90년대 이르러 변선환, 홍정수 교수의 다원주의 내지는 현대신학의 이슈로 큰 풍파를 겪었다.

(10)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비판과 한계를 설정한 다음에 웨슬리언 복음주의를 지킬 수 있다.감신대의 제1의 이념인 웨슬리언 복음주의는 종교개혁의 유산이며 성경적 기독교’(존 웨슬리)의 대 원리이다. ‘성경적 기독교란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세워진 최초의 교회, 순수한 시대의 기독교이다. 이것을 회복, 복원하는 성령운동, 성화의 운동이 웨슬리의 미션이다.

(11)감리교회는 웨슬리의 염원과 갈망을 잊어버린 잠든 신학교가 되어서는 안된다. 다시 회개와 부흥의 선한 영향력을 주도하는 성령 운동의 산실이 되어야 한다. 기도영성 전통을 회복을 기대한다.

(12)감신대의 비전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참된 선한 목자를 훈련하고 양육하는 것이다.

성경적 원천을 복원-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참된 선한 목자를 훈련하고 양육하는 것.

(13)감신대는 웨슬리언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먼저 신학교 교수들이 경건과 영성의 실천에 재헌신하고 있다. 그것을 위해 총장과 신학대학 교수들은 매주 기도원에서 기도를 드린다.

황덕형 박사(학술공동회장, 서울신대 총장)기성교단과 서울신학대학교의 웨슬리 현상을 발표했다.

(1)성결교단의 근본적인 신앙과 신학의 기초는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이다.

(2)한국 성결교회는 18세기 영국의 성공회의 테두리에서 성장했던 웨슬리의 부흥 운동과 미국 서부개척 시대의 혼란한 시대상을 배경으로 일어난 19세기 미국의 부흥운동을 모두 받아들였다.

(3)성결교회는 두 요소들 사이의 새로운 통합적 해석을 모색 중에 있다. 하나님의 메시지에 성실하게 응답하면서, 시대의 요구를 성결의 진리로부터 해명하고, 더 발전 시켜 해석학적 역량을 키워가야할 사명이 후학들에게 요청된다.

(4)웨슬리의 성결신학은 존 플레쳐(John Fletscher, 1729-1785)가 성령세례의 체험을 소개하면서 널리 퍼졌다. 또한 20세기 초 미국에서 일어난 웨슬리 신학의 재발견의 영향으로 웨슬리의 설교에 녹아있던 성결의 현상이 성서적이고 역사적인 통찰로 재조명되고, 구원론적 체계속에서 신학적 해석이 강화되었다,

(5)아우틀러(Albert Outler, 1908-1989)를 비롯한 미국 감리교 신학자들의 노력으로 새로운 학문적 지평을 넓혀갔다.

(6)조종남 박사(서울신학대학교 명예총장)으로 말미암아 성결의 의미가 교의학적으로 다듬어졌고, 모든 성경 이해의 표준적인 모델을 제시했다. 이후 한영태 박사(전 서울신대 총장)는 웨슬리 신학을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집필하여 교단 신학으로 공고히 자리잡게 하였다.

(7)웨슬리 신학은 목창균 박사(서울신대 전 총장)과 교회사가인 박명수 교수가 미국의 19세기 성결운동의 특징과 한국 초기 선교에서 주어졌던 사중복음의 자취를 강조하면서 또 한번의 변화의 과정을 만났다. 사중복음은 웨슬리 신학이 현장에서 부흥운동으로 나탄 것으로 해석한다. 한국의 성결교회는 이념적으로 웨슬리와 연결되어있고, 실제적인 관계는 미국의 19세기 부흥운동과 연관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8)서울신학대학교에서는 웨슬리 신학이란 명칭보다는 성결신학이란 개념이 교단 신학의 주류적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9)서울신학대학교에는 두 개의 연구소가 있다. 최인식 교수가 주도한 글로벌 사중복음 연구소와 황덕형 교수가 설립하고 김성원 교수가 이끌어가는 웨슬리 신학연구소이다.

(10)두 연구소는 기존의 웨슬리 신학의 성결 해석을 너머서는 해석을 제시하여 세계 신학계와 교회에 공헌할 수 있으리라 본다.

신민규 박사(전 대표회장, 나사렛대 전 총장, 나사렛 교단 감독)나사렛 교단과 나사렛대학교의 웨슬리 신학 현상을 발표했다.

(1)나사렛 교단은 웨슬리의 완전성결에 대한 확신을 강조한다.

(2)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완전성결의 증거이며, 이것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주어지는 순간적인 사건이다.

(3)나사렛 교단은 예수님을 나사렛 사람으로 기억하고 고백하는 공동체이다.

(4)나사렛 교단은 시골이나 도시 변두리, 저개발 국가 안에서의 사역에 중요한 우선순위를 둔다.

(5)나사렛 교단은 복음전파 사명을 위해 정책 수립할 때 웨슬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 강조했던, 성경, 교회의 전통, 이성, 경험을 중요하게 여긴다.

(6)성결에 대한 나사렛 교단의 사회참여와 헌신은 교육, 전도, 구제로 구체적인 3대 전략으로 이어지고 있다.

(7)나사렛 교단은 항상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언제나 뉴노멀이다.

김상식 박사(성결대학교 총장)예성과 성결대학교의 웨슬리신학 현상을 주제로 발표했다.

(1)예성교단은 웨슬리 신학의 성결 교리를 계승발전하고 있다.

(2)예성 교단 헌장을 보면, “웨슬리의 성경적 복음 신앙을 계승함을 강조한다.

(3)웨슬리는 한 책의 사람”, 즉 성경의 사람이었다. 예성 교단은 성경이 유일한 권위임을 인정한다.

(4)웨슬리는 복음적 신앙의 사람이었다. 예성 목회자들은 웨슬리의 신앙을 이어받아 보수적이며 복음적인 교단임을 긍지로 여긴다.

(5)예성 국내선교위원회는 교회개척학교통해 복음전도를 위해 개척자를 발굴하고 후원한다.

(6)웨슬리의 복음전도와 열정을 구현하기 위해 성결 전도대를 운영하고 있고, 도시 개척교회 및 농어촌 교회를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성결전도집회를 하며, 거리전도 및 축호 전도를 한다.

(7)웨슬리의 선교정신 세계는 나의 교구이다라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해외선교위원를 중심으로 전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고 있다.

(8)웨슬 리가 감리교를 이끌었던 두 가지 축인 경건의 사역”(개인적 성결)자비의 사역”(사회적 성결)을 정기적인 목회자 연장 교육을 통해서 훈련하고 있다.

(9)웨슬리 신학을 창조적 종합의 신학이라 부른다. 성결대학교는 창의적인 역량을 갖춘 학생을 배출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조진호 사관(학술공동회장, 구세군대학원대학교 전 총장)구세군과 구세군사관대학교의 웨슬리 신학 현상을 주제로 발표했다.

(1)종교개혁자들의 두 가지 유산, “성경신학칭의 신학의 바탕위에 웨슬리는 성결신학을 강조했다.

(2)구세군 창립자 윌리엄 부스는 메도디스트였다. 그에게 선구자는 한 분의 하나님과 요한 웨슬리였다. 부스는 웨슬리의 글과 교리 정신의 실천을 따랐다. 부스는 성서의 사상과 웨슬리 전통에 기반을 둔 철저한 복음주의적 행동주의자였다.

(3)구세군의 신학과 정신은 성결한 삶에 대한 믿음과 교리이다. 구세군은 주일 11시 예배를 성결회혹은 성결예배라고 부른다. 자신의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온전히 헌신하는 성별일을 정하여 예배를 드린다.

(4)구세군은 나눔과 청빈의 삶을 향한 단순한 삶을 지향 한다-사관생활비규제, 종교재산의 사유화 금지, 의복이나 치장에 있어서 유행을 경계하는 것.

(5)모든 구세군이 참여하는 책임운동은 공적인 영역에서 선한 청지기로서 책임있는 정직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한 성결운동이다.

(6)구세군 교육과 훈련과정 저변에 흐르는 정신은 구원과 성결에 집중하고 있다.

(7)구세군의 커다란 장점은 성결의 실천과 현장에 있다-자선냄비, 사회복지시설 탐방 및 봉사.

(8)구세군의 실천과 이론신학의 균형이 필요한데 그 한계는 보완될 필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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