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20일 웨슬리탄생 318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웨슬리학회와 웨슬리언 교회지도자협의회가 “웨슬리 부흥”(Wesley Revival)이란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영등포 대림감리교회(강득환목사)에서 열렸다.
1부 개회예배에서 강득환목사(대림감리교회)가 사회를 맡았고, 이선목목사(인천숭의감리교회)가 "웨슬리 목사님의 웨슬리안 후예들이 이 시간 모일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공동학술대회를 통해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닮아가고 웨슬리 정신을 닮아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를 드렸다.
특송을 맡은 한국버스킹선교단은 " 너의 푸른 가슴속에", "하나님의 은혜" 두 곡을 은혜롭게 찬양드렸다.
감신대 총장 이후정목사는 “한국교회와 리바이벌 ”(행 2:1-4)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후정 목사는 "웨슬리는 사반나에서 영적으로 무기력하게 실패했다. 그리고 웨슬리는 철저히 낮아짐으로 인해 성령충만을 받았다. 무기력한 조선 땅에 의료선교사로 온 로버트 하디 선교사는 처음에는 열심히 했지만 뭔가 영적으로 실패했다. 그때 “오직 나의 영으로 말미암아 되리라”(슥 4:4)는 말씀으로 존 웨슬리처럼 성령을 뜨겁게 체험했다. 여기서부터 불붙기 시작한 성령운동이 평양 부흥운동으로 조선 땅 전체에 부흥의 영향을 끼쳤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캐릭터이고 복음의 본질이다."
"한국교회는 코로나로 인한 침체와 무기력함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우리에게 다시 위대한 영적 회복이 일어날 수 있을까? 지금은 영적인 새로워짐이 요청된다. 웨슬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순수한 초대교회의 원형을 회복하는 것이다."
"웨슬리를 통해서 18세기 영국교회가 잃어버린 생명력을 회복했다. 가장 낮은데서 회개하며 성령의 역사를 경험했다. 회개는 가장 낮아지는 경험을 통해서 웨슬리와 하디가 태어났듯이, 높아지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능력을 베풀지 않는다. 낮아지는 것이 곧 생명력 회복이다."이라고 말씀을 전했다.
본회 대표회장인 주삼식 박사(성결대 전총장)는 " 지금은 혼합과 혼돈의 시대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필요한 시대이다. 하나님의 의와 진리가 드러내는 학술 대회를 통해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게 된다."는 격려사를 했다.
김경수박사(나사렛대 총장) "웨슬리는 꿈을 가지고 선교지에 갔지만 대 실패를 하고 돌아온다. 웨슬리는 야외설교를 내키지 않았지만 웨슬리는 야외설교를 통해서 영국의 부흥을 가져왔다. 자기가 계획한 것은 철저히 실패했는데, 자기가 계획하지 않았을 때에는 영국의 부흥운동으로 발전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하나님의 꿈과 열정이 나에게 어떻게 표현되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 달라진다." 고 축사 했다.
본회 사무총장인 양기성 목사는 “루터의 성자신학과 칼빈의 성부신학에 이어서 성령신학과 성결복음운동의 창시자이며 종교개혁의 완성자인 존 웨슬리 탄생 318주년, 존 웨슬리 회심 283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한국 웨슬리 학회 교수들의 연구 발표와 웨슬리언 교회지도지협의회가 공동으로 학술대회를 열게 된 것은 주님의 놀라운 선행적 은총이며, 웨슬리협의회 현장 목회자들의 후원과 재정지원으로 서로 협력하고 상생하는 웨슬리의 에큐메니칼 정신을 실천했다는 것과 코로나 질병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다룬 것은 시대적 큰 공헌이라고 생각한다"며 인사말을 남겼다.
애틀란타협의회 대표회장 장석민 교수(언더우드대학교 교수)는 축사에서 “학술대회를 통하여 웨슬리 정신으로 미래의 복음화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 조성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웨슬리 선교정신이 깃들어 있는 미국 조지아주 사바나에서, 또는 애틀란타에서 웨슬리학술대회가 개최되기를 기대”한다고 정중하게 초청하며 기도요청을 하였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 낙스칼리지에서 웨슬리 신학을 가르치는 허천회 교수는 "공동학술대회를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는 메세지와 더불어, 최근에 저술한 <웨슬리의 생애와 신학> 학문연구에 큰 도움을 받은 분들에게 영상을 통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허 교수는 "추천서를 써 주신 이은재 교수께 감사드린다. 이은재 박사의 저서 <존 웨슬리의 신학과 유산>은 책을 쓰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또한 박창훈 박사 저서 <존 웨슬리 역사 비평으로 읽기> 도 저술하는데 많은 참고를 했다. 이후정박사가 쓴 <성화의 길>은 훌륭한 학문적인 책이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웨슬리 운동에 목숨을 받치는 양기성 목사님 축복한다. 기회되면 꼭 참여하고 싶다. 한국신학 발전에 기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라는 말로 영상으로 축사를 보냈다.
금번 공동학술대회를 위해서 해외지회에 소속된 뉴욕협의회 이대우 목사와 토론토 협의회 허천회 박사, 라스베가스협의회 이재광 목사 등이 축사를 보내왔다.
기하성부총회장인 김명현 목사의 축도로 1부 예배를 마치고, 2부 논문발표의 시간을 가졌다.
제 1 발표,“경건주의의 질병과 치유 이해”
제1 발표자 이은재 교수(감신대)는 “경건주의의 질병과 치유 이해”란 주제의 논문을 발표했고, 논찬은 오성욱 교수(서울신대), 좌장은 오광석 교수(감신대학교)가 진행했다.
이은재 교수는 “질병과 치유”라는 주제에서 경건주의자들의 신학적 질문에 초점을 맞추었다. 질병의 원인은 무엇이며, 질병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경건주의자들은 질병은 육체적인 혹은 몸의 문제라기보다는 영혼의 문제라는 인식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다.
경건주의자들은 인간의 죄와 재앙을 나타내는 알레고리로 폭넓게 사용했던 신약성서와 유사하게 질병을 이해하고 있다(막 2:17).
경건주의의 아버지 필립 야콥 슈페너(Ph. J. Spener)는 “경건한 열망”(Pia Desideria)에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중병에 들었고, 각 지체들이 생각하듯이 치료제를 필요로 한다고 보았다.
경건주의자들의 고백을 보면, 마음의 고통을 돌보시는 분, 영혼의 질병을 담당하시는 분, 마음에 평안과 고요를 주시는 영혼의 의사, 그분은 그리스도이시다.
경건주의자들은 질병을 어떻게 보았는가? 질병에 대한 기도에서 질병은 하나님에 의해 부과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경건주의자들은 모든 고난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가르쳤다. 하나님은 불행, 전쟁, 질병, 재앙을 만드시고 보내신다. 구약 이사야 말씀(사 45:7-8)에서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경건주의자들은 사탄보다는 죄를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함으로써 종교개혁 신학으로부터 강조점을 조금씩 옮겨갔다.
그렇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부과된 질병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에 대한 경건주의자들의 입장은 다음의 세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질병은 구약성서가 이해했던 것처럼 죄에 대한 확실한 징계로 받아들여졌다.
둘째, 질병은 하나님의 변경할 수 없는 판단에 따른 최종적인 징벌이다. 질병은 하나님께 돌이키도록 한다고 주장한다.
셋째, 경건주의자들에게 질병은 하나님에 의해 부과된 십자가로 표현되었다. 경건한 환자들은 인내하면서 질병을 기쁨으로 짊어져야만 했다. 그리스도인의 질병이 그리스도의 고난의 일부로 수용되었다.
경건주의자들은 질병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혹은 질병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해결하려는 방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주님께서 모든 것을 해결하실 것이라는 신앙을 통한 위로에 초점을 두었다. 질병은 참된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경건주의자들은 질병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으며, 두려움과 희망은 무엇이었을까? 경건주의자들은 질병을 유익하고 필요한 것이라고 보았다. 경건주의자들에게는 영혼의 건강이 더욱 우선적이었기 때문에 기꺼이 육체의 건강을 포기했는데, 몸의 질병이 영혼의 회복에 유익할 것이라고 믿었다.
발제자 이은재 교수는 “질병과 치유”라는 주제를 이끌어가면서 논문의 결말을 “영성과 목회의 균형”를 강조하였다. “그리스도는 위대한 의사이시며,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신앙은 더 이상 기적과 그리스도의 현현에 의존하지 않고, 도리어 신자들의 책임적 결단을 요청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동시에 의료보건과 근대적 의미의 병원시설에 대한 요구도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진취적으로 다루어졌다. 그래서 질병의 문제에 대한 영성적(Spiritual)이고 목회적인(Cure of Souls) 사역은 종교개혁에서 전환을 이루었고, 경건주의에서 실행”되었다고 보았다.
제 2 발표, "교회 위기와 웨슬리의 영성"
제2발표자 박창훈 교수(서울신대)는 “교회위기와 웨슬리의 영성”이란 주제의 논문을 발표했고, 논찬은 김영택 교수(성결대), 좌장은 노윤식 박사(웨슬리언협의회)가 진행했다.
인류역사에서 흑사병이나 한센병과 같이 전염병은 늘 존재했다. 전염병이 창궐할 때 신앙의 선배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역사적 과정을 들여다보면 코로나19를 대처하는데 지혜를 얻게 된다. 중세에는 수도원이 병원 역할을 담당했고, 치료보다는 격리시설 및 요양시설이 주된 기능을 담당했다. 종교개혁을 주도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병원의 개혁에도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중세에 성행하던 무차별적 구빈을 구별하여, 정부의 주도하에 대상을 선별하여 폐쇄된 수도원을 병원으로 활용하도록 지도하였다. 종교개혁자의 노력으로 국가주도형 병원이 생겼다.
성결운동을 일으킨 존 웨슬리(John Wesley)는 강단에서 신학만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목회현장에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상황과 어려움 그리고 그들의 소망을 듣고 믿음의 조언과 격려의 활동을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745년 9월에 있었던 브리스톨(Bristol) 연회에서 웨슬리는 부흥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난 런던, 브리스톨, 그리고 뉴캐슬에 병자들에게 나누어 줄 약을 비치할 것을 결의하였다
또한 부흥운동을 위한 설교자들이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영적인 치료와 함께 가난하고 연약한 육체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의술도 시행할 것을 독려하였다. 웨슬 리가 저술한 『원초적 의술』의 서문에서 우리는 근본적으로 질병에 대한 웨슬리의 신학적 입장을 볼 수 있다.
웨슬리의 당시 영국국교회는 옥외설교는 생각하지도 못했고, 교회 건물을 벗어난 설교는 죄악으로까지 생각하였다. 웨슬리는 산상수훈을 읽는 중에,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옥외설교의 분명한 선례임을 깨닫고 “보다 겸손하게” 3천 명 앞에서 옥외설교를 시작하였다.
웨슬리는 영국국교회 교구의 경계에 구애받지 않고 “어느 곳에서라도” 자신의 사역을 묵묵히 하겠다는 의미에서, “세계는 나의 교구”라는 말을 남겼다
웨슬리는 흑인 노예무역 제도를 반대했다. 그 당시 영국인들은 흑인노예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던 시대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흑인노예제도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고, 노예무역에 종사하는 선장, 상인, 소유주 등을 향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하고, 사슬에 묶인 자들의 진정한 해방을 기원하였다. 당시 영국 최대의 항구이며, 흑인노예무역의 중심지였던 브리스톨에서 웨슬리는 반인간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위해 강제로 잡혀와, 짐승처럼 취급받아, 노예로 팔아 넘겨지는 흑인들을 위해 하나님의 정의가 드러나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1758년 11월 29일 원즈워스(Wandsworth)에서 죄를 확신하고 하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두 흑인노예에게 처음으로 세례를 베풀었던 웨슬리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기뻐했다.
웨슬리는 영성훈련을 강조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공동체는 구원의 길(Ordo Salutis)을 함께 가면서, 신앙의 성숙과 영성을 도모하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바로 “은혜의 수단”을 수행하는 공동체이다. 교회를 통해 수행되는 다양한 형태의 "은혜의 수단"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기도, 성경읽기와 묵상, 성찬, 교제를 중요한 은혜의 수단으로 인도하는 영적 교제로 보았다. 특히 교제(Christian conference)는 세 그룹의 나누었다. 속회(class), 반(band), 신도회(society). ‘속회’는 10-12명으로 구성하고, 누구나 참석이 가능하다. ‘반’은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고, ‘신도회’는 최고의 영적 성숙도가 있는 성령충만한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1791년 웨슬리의 임종 후 신도회는 300명의 설교자와 7만 명의 회원을 가진 단체로 성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산업혁명과 이신론으로 혼란한 영국 사회에서 진정한 교회를 찾는 이들에게 희망이었다.
웨슬리는 은혜의 수단은 단순히 개인의 내적 영성훈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구제를 통한 사회를 나눔을 강조했다. 웨슬리는 구제를 은혜의 수단으로 강조였다.
발제자가 논문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도는, 첫째, 은혜의 수단에 참여함으로, 예측할 수 없는 하나님의 손길을 고백하며 신앙의 길에서 어긋나는 점은 없었는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
둘째,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 두려움 속에서 살면서도 서로를 위해 애쓰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기와 돌보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셋째, 예배와 교회의 존재방식에 대한 적극적이고 포괄적인 신학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코비드19는 전통적인 예배에 대한 변화를 요청받았다. 아직은 두렵고 떨리지만, 장소와 시간을 공유하는 예배가 장소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웨슬리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느 곳에서라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의 역동성을 본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예방과 치료를 위한 격리로 인해서 파생된 배제, 낙인, 소외를 극복할 공동체적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질병은 선과 악이라는 흑백논리로 구분할 수 없는 복합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행할 수밖에 없었던 격리가 만들어내는 배제, 낙인 그리고 소외를 이제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묻고 답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몫이다. 임상의학에 기초한 의술(cure)은 빠르게 발달하지만, 상대적으로 축소되어가는 인간의 공동체적 영성을 회복(care)해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제는 “왜”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하며 “함께”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금은 우리 모두에게 잔혹한 시험의 시간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우리 모두의 절박한 구원의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