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예배공동체
교회는 예배공동체다. 모든 것은 예배로부터 시작된다. 교회에서 예배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예배란 단어가 실천을 강조하는 서신서에는 단 한번만 나온다(롬12:1). 이상하지 않는가? 그렇게 중요한 예배라면 예배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자주 등장해야 하는데 오히려 예배에 대해서 성경은 침묵하고 있다. 어쩌면 단 한번 나오는 성경 구절에 그 답이 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그냥 예배라 말하지 않고 영적 예배라 말했을까? 그리고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라고 했을까? 우리는 예배의 이미지를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에 매여 있는 경우가 많다. 마치 구약의 성전처럼...그러다 보니 예배당에 예배를 드리는 것에 초점이 있다. 하지만 바울은 예배를 몸으로 드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 뜻은 예배당에 모여 드리지 말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일주일에 한번 예배당에 가는 행위가 예배가 아니라, 더 높은 수준의 예배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몸이 곧 성전이요 예배하는 전(殿)임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몸은 생활 속에서 드리는 예배를 말한다.
예배 따로 삶 따로
로마서 12장 1절은 앞에 1-11장까지 내용을 실천하는 서언과 같은 첫 구절이다. 그렇다면 12장-16장의 모든 실천적인 내용은 우리 몸이 성전으로서 보이지 않는 삶의 예배를 의미한다고 볼수 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3:16). 이제 그리스도인은 예배당에서 예배하는 것으로 멈추지 말고 본격적으로 일상의 삶속에서 예배자로 살아가야 하고 예배하는 그곳을 성전과 교회로 세워가야 한다.
우리의 예배는 주로 예배당에 모여 집회와 대회의 이름으로 프로그램화된 것이 많다. 그래서 모든 것에 예배라는 이름을 붙인다. 예배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예배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다 보니 모든 곳에 예배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헌신예배, 총동원예배, 개업예배, 돌예배, 출판예배, 개업예배, 졸업예배... 등 예배의 수가 셀 수 없도록 많다. 그러다 보니 1부 예배는 간단히 드리는 형식이 되고 주된 것은 2부 순서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성경은 어디에서도 그렇게 예배 이름을 붙인 예가 없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바울은 로마서 마지막 부분에 자기의 모든 사역은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감당한 것이라고 언급한다(롬15:16) 이것은 모든 것이 예배였고 자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바치는 산제물이 되었고 영적 제사장으로서 살았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예배 따로, 삶 따로가 아닌 내가 살아가는 모든 삶이 예배가 되며 거룩한 제사장의 (벧전 2:5) 삶을 살아가는 예배자의 모습을 이다.
특정 장소를 넘어 모든 삶이 예배당
예수님은 평생 어린양의 제물로 예배의 삶을 사셨다. 우리처럼 예배를 프로그램화 하지 않았다. 우리의 몸이 산제물이라면 이제부터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모두가 영적예배가 되도록 하는 사명이 있다. 특별한 장소만 예배당이 아닌 이제 우리가 예배자로서 그곳이 거룩한 성전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다. 바울이 갇힌 셋집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고 세우는 성전인 것처럼 오늘 우리가 있는 그 자리가 성전이요 복음의 제사장으로 있는 것이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