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 박히게 예수를 넘겨주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고발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마27:12,13). 총독은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고 침묵하는 예수의 모습을 보고 크게 놀라워했다. 예수는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묵묵히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 죽음 앞에서도 초연한 예수님의 모습이 로마인 총독에게는 놀라운 광경이었다. 리더들은 온갖 욕설과 비방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묵묵히 견디는 훈련도 필요하다.
"한 입으로 쓴물과 단물을 내 뱉는 무리들"
빌라도는 백성들에게 묻는다. 바라바와 예수 중에 누구를 놓아주랴? 종교지도자들의 지침을 받은 백성들은 한 목소리로 외친다. 바라바를 놓아주라. 그리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라. 십자가 형벌은 당시 가장 끔찍한 형벌이다. 백성들 중에는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할 때에 호산나 외치며 찬송하던 무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종교지도자들의 시기로 예수님을 죽이는데 큰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무리들은 한 입으로 단물과 쓴물을 뱉어내고 있다.
아름다운 성도의 모습을 그려본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한입으로 일생동안 한결같이 내가 사랑하는 예수님을, 교회를, 사람들을 칭찬하며 믿고 신뢰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예수님도 우리를 향해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축복했다. 우리가 이런 놀라운 수준높은 대우를 받을 만큼 정결하지 않다. 단지 주님을 믿는다는 한 가지 사실로 인해 주님은 이렇게 인정하고 격려하고 있다.
사랑하는 말, 축복의 언어, 은혜로운 말, 위로하고 격려하고 힘을 주고 비전을 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복이다. 한 입으로 찬송하다가 상황이 바뀌니까 저주를 퍼붓는 어리석은 모습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원한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
빌라도는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24절)고 했다. 백성들외쳤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25절). 자신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도 모루고 엄청난 말을 쏟아놓았다. 무죄한 예수님의 피를 흘린 대가를 자랑하듯이 자신과 후손들까지 책임지겠다고 한다. 역사는 우리들에게 교훈을 던져준다. 유대인들은 A.D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끔찍한 학살을 당한다. 또한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에 의해 600만 명이 살해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예수 십자가에 고초당하다"
(1)예수님이 당하신 고초는 치욕스러움 그 자체였다.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고, 가시관을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오른손에 들리고, 무릎을 끊고 희롱하고.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머리를 치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너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온 왕이 아니라고 비웃는 것이다. 경멸하는 것이다. 조롱하고 있다. 그런 치욕을 받으셨다. 인류의 죄악을 짊어진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은 견디기 어려운 참혹함 그 자체였다.
예수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조롱을 몸소 다 받으셨다. 핍박과 조롱과 모욕 앞에서도 예수님은 분노하지 않았다. 원망하지 않았다. 보복하지 않았다. 이러한 참혹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기에게 주신 사명을 위해 묵묵히 인내했다. 이렇게 사명의 길이 힘들고 고달프고 어려운 것이다. 사명의 길은 꽃가마 타고, 화려한 대장군의 말을 타고 가는 것이 아니다. 사명의 길은 초라하다. 나귀새끼를 타고 걸어가는 것이다. 사명의 초라한 길을 걷다보면 내공이 싸인다. 고난 가운데 영적 능력을 얻는다. 고난의 길을 뚫고 나가면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영적인 힘이 쌓인다.
사명의 길에서 힘들 때 극복하는 길이 있다. 첫째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다. 누군가 나의 자존심을 짓밟을 때 원망하지 말고 보복하지 말고 먼저 주님께 나아가라. 나를 위해 고난당하신 예수님이 나에게 이길 힘을 주실 것이다. 예배의 자리로 적극적으로 나아가라. 오히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라.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라. 전통적인 방법이 고난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둘째로, 모든 짊을 들고 십자가 앞에 나아갈 때, 승리와 평안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십자가는 우리를 다시 일어나게 하는 영적 에너지를 제공한다. 나보다 먼저 예수님이 고난을 몸소 당하시고 이기셨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억지로 져도 은혜이다"
(2)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졌다. 이것도 하나님의 섭리이다. 그러나, 당시는 창피하고 힘들었지만, 부활하신 주님이 바로 하나님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는 그에게는 엄청난 기쁨과 감사가 된다.
때로는 억지로 십자가를 질 때가 있다. 내가 받아야할 십자가가 아닌데 십자가를 지는 경우가 있다. 억울함과 조롱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나 기억하라,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큰 영광으로 갚아주실 것이다.
"악은 잠시 승리할 뿐이다"
(3)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과 모든 사람들과 마귀는 스스로 승리했다고 생각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옷을 제비뽑고 나누었다. 머리에 유대인의 왕이라 죄패를 붙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했다.
종교지도자들도 예수를 희롱했다. “남은 구원하고 자기는 구원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왕이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40절). 또한 자기 죄로 인해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예수를 모욕했다.
"십자가에서 부활하로 승리하신 예수님"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였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고, 무덤이 열리면서 죽었던 성도들의 몸이 많이 살아났다(52절). 부활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부활 후에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였다. 예수님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많이 부활해서 예루살렘에 보였다. 이미 장사하여 죽은 사람이 살아서 성에 나타난 것이다.
백부장과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일어난 일들로 인해 심히 두려움에 빠졌다. 이들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했다. 이들은 그 현장을 보았기 때문에 심히 두려움에 빠진 것이다. 자신들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으로 끝나지 않았다. 예수님은 사망권세를 물리치고 죽음에서 3일 만에 부활하셨다. 모든 죄와 사망과 원수를 물리치시고 당당하게 영원한 왕이 되셨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라. 모든 삶의 문제들은 십자가 안에서 다 해결된다. 십자가안에 하나님의 선한 계획과 뜻이 있다. 십자가를 잊지 마라. 기독교 신앙은 십자가의 기둥으로 세워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