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死線)을 오가는 중보기도자 바울

  • 입력 2021.01.26 11:29
  • 수정 2021.01.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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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사역자에게 고하는 말씀 (35)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다.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다.

사울왕의 피가 흐르는 다소 사람 사울

메신저가 본받아야 할 기도의 사표 "바울". 다소에서 태어난 베냐민 지파의 사울은 이스라엘의 건국 시조인 사울과 같은 가계(家系)에 속해 있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옛 왕조의 피가 그의 몸속에 흐르고 있었다. 사울은 젊어서 가말리엘의 문하에 들어가 율법을 익혀 율법에 두루 정통했다. 대(大)랍비 힐렐의 손자였던 가말리엘은 “율법의 영광”이란 별명을 지닐 정도로 탁월한 유대교학자였고 산헤드린 공회원으로 백성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랍비 중의 랍비인 라반 가말리엘의 제자가 된 바울은 스승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을 정도로 율법에 철저한 인간이 되었다. 그는 아무 흠이 없다 자인할 정도로 율법 준수에 철저했고 자기 관리에도 엄격한 사람이었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그는 엘리트 계급에 속해 있었다.

이 사울 앞에서 초대교회의 전도자들이 전하는 복음은 거치는 반석이요 눈에 가시였다. 십자가에 달린 메시아, 육신으로 임하신 하나님은 율법의 수호자인 사울의 분노를 촉발시키기에 충분했다. 열혈아(熱血兒) 사울의 율법과 열정적인 사도들의 복음은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한분 여호와를 섬기던 그에게 있어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가르침은 신성 모독이요 명백한 이단이었다. 사울은 대제사장들에게서 사법 집행권을 위임받아 다메섹으로 향했다. 살기등등한 사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였다. 마치 피에 굶주린 야수 같았다. 그가 나타나면 성도들의 고난과 비탄이 그 뒤를 따랐다.

바울, 유대교의 배교자에서 하나님나라의 귀순자로

주님은 가시채로 뒷발길질을 해대는 미련한 사울을 만나주셨다. 그를 불러 이방의 사도로 삼으셨다. 하나님은 사울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가 모친의 태에 있을 때부터 미리 택정하셨고 때가 되자 그를 은혜 가운데서 부르셨다. 바울이란 새 이름을 갖게 된 그는 열성적으로 도(道)의 전파자가 되었다. 그는 유사 이래로 가장 위대한 전도자로 추앙된다. 파괴자에서 수호자로! 이 급격한 변화의 어간에는 바울의 영적 여정이 영글어 있다. 바울의 회심은 대반전이었다. 유대주의의 입장에서는 배교였으나 하나님 나라 편에서는 영광의 귀순이었다. 그의 회심은 마치 급류에 휘말려 떠내려가던 사람이 무서운 기세로 물살을 거슬려 역류하는 모습에 비할 만했다.

광야에 엎드린 바울 앞에 최근의 사건부터 지난날의 특기할 만한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아나니아의 기도, 다메섹의 체험, 그가 잡아 죽이고 체포했던 많은 그리스도인들, 특히 스데반의 사자후와 순교의 장면이 그를 압도했다. 스데반의 죽음에 앞장설 뿐 아니라 찬성투표까지 했던 일이야말로 두고두고 잊지 못할 악행이요 고통이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교회 박멸 운동에 앞장섰던 일, 다소에서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수학하던 일, 유아시절, 그리고 태아였을 적부터 자신을 미리 아시고 택하셔서 미리 예비하신 하나님의 예정에까지 미쳤다.

아라비아 광야에서 삼년을 다져진 기도의 무릎

바울은 깨달았다. 옛적부터 계신 이가 자신의 삶을 지금까지 이끄셨음을 부인할 길이 없었다. 종교적 계율에 철저함으로 하나님 섬김의 최고봉에 오르려 했던 그를 하나님은 오히려 학대 받던 나사렛 이단의 선봉에 세우셨다. ‘큰 자’였던 사울이 ‘작은 자’인 바울로 개명했듯이 그의 존재 변환은 천지가 뒤집힐 만큼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하나님의 전격적인 개입으로 인해 바울은 변화되었고 단숨에 그리고 서서히 기도의 사람이 되어갔다. 회심하는 첫 순간부터 기도로 자신의 새 삶을 시작했다. 바울은 기도로 그의 새로운 삶을 열어 기도로 그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했다. 히브리적 정신세계와 헬라적 사고 구조로 배합된 그의 영혼은 기도 속에서 조화를 이루어 바울 특유의 복음을 움트게 했다.

그렇다! 바울은 기도로 그의 사역을 시작했다. 대제사장의 사주를 받아 성도들을 박해하며 잔해하던 그에게 핍박을 받으시던 주님이 몸을 돌이키셨다.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에 바울의 삶은 극적으로 뒤바뀌었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고 먼지와 바람, 이글거리는 태양과 밤의 추위가 도사린 광야로 나아갔다(갈 1:17). 고적한 사막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대체 무엇이 있었겠는가! 기도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었으리라. 자신이 잘못 알았던 율법, 새롭게 다가온 복음의 밝은 빛 속에서 율법을 재해석하며 깊은 묵상에 잠겼다. 말씀 묵상이 아니면 자신을 더 늦기 전에 멸망의 질주에서 돌이키게 하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감격에 겨워 흐느꼈다. 아라비아 광야에서 삼일도, 석 달도 아닌 삼년을 그렇게 무릎 꿇었다.

자신의 기도와 성도들의 중보기도로 무장된 바울

바울의 생애는 아라비아에서의 삶에서부터 조명되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쓰러뜨려 무릎을 꿇은 기도의 역사다. 바울의 사역은 기도 없이 이해할 수 없다. 불같은 기도가 바울의 일생을 이끌었다. 그가 이룩한 위대한 사역의 전후좌우에는 기도가 포진되어 있었다. 그 자신의 기도와 더불어 성도들의 중보기도가 사역의 밑바탕이 되었다. 자신을 위한 성도들의 기도가 무시로 이루어지기를 간청했던 만큼 바울은 아시아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무시로 기도했다. 그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면서 전도자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었던 비결은 오직 말씀과 기도였다. 자신을 붙들어준 말씀을 강하고 붙들고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 기도한 삶이 바울 사역의 모든 것이었다. 때를 얻거나 못 얻거나 언제 어디서든 복음 전하기를 원했던 바울은 자나 깨나 기도에 올인했다.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전적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위한 기도였다. 그가 흘린 눈물, 구로한 시간들, 처절한 몸부림과 안타까움은 그를 능히 기도의 화신으로 세워주었다.

교회와 성도들 까닭에, 복음을 위해 당해야 했던 엄청난 고생 외에도 바울에게는 매일같이 바위처럼 내리누르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모든 교회를 위한 염려’였다. 물론 염려란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그런 류의 염려가 아니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기도로 표현된 거룩한 염려다. 바울 자신의 고백을 들어보라!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어느 교회도 예외가 없었다. 어느 누구도 바울의 기도 영역에서 제외되지 않았다. 모두를 위하고 모두를 생각하는 중보 정신이 바울의 기도 세계에서 듬직한 울타리가 되었다. 바울은 중보기도의 화신이었다. 그는 자신의 친족과 동족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영혼까지 허비하려 했다. 그것도 타인의 영혼을 얻고자 자신의 영혼을 포기하려는 놀라운 신앙 의지였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바울도 모세처럼 자신의 영혼을 내걸 만큼 뜨거운 민족 사랑을 보여주었다.

사선(死線)을 오가는 중보기도자 바울

참으로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기도의 자세다. 바울의 영혼을 겹겹이 싸고 있는 것은 사랑이었다. 하나님이 부어주신 영원한 사랑이었다. 그렇다. 사랑이 동기가 되지 않은 모든 무릎 꿇음은 무의미하다. 그의 위대한 사랑이 다른 사람들을 위한 중보의 무릎 꿇기에 능하게 만들었다. 실로 그가 놀라운 중보기도자가 아니었다면 불세출의 대서사시인 <사랑 장>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믿음으로 중보기도를 드렸다. 영원한 중보자이신 성령님과 주님의 틈새에 엎드려 끈질긴 믿음으로 중보 사역을 감당했다. 사랑으로 중보기도를 드렸다. 사람의 영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구속 의지를 따라 영혼 얻는 기도에 열정적으로 임했다. 그의 중보기도는 놀라운 열매로 나타났다. 사람을 변화시켰다. 교회를 안정시켰다. 세계를 격동시켰다. 마귀를 긴장시켰다.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했다. 기도 속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로 바울은 기도로 그의 삶을 온전히 드렸다. 바울의 3차에 걸친 전도 여행은 기도의 산물이었고 마지막 죽음에의 여정도 기도 속에서 마련되었다. 주님의 신실한 종 바울은 역시 중보자의 기도로 그 굴곡진 삶을 마감했다.

물론 바울의 고백이 화려미를 더한 것은 아니다. 당시의 바울로서 민족구원 문제는 구약의 언약 신학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였다. 유대인의 버림과 이방인의 구원을 통해 다시 유대인을 구원의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바울은 믿고 있었다. 자신도 모세처럼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고 싶었다. 이것이 중보의 정수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죽음의 자리에 내주지 않고서는 중보의 외로운 길을 걸어갈 수 없다. 오늘날 영적 현상과 결부시켜 선지자 노릇하려는 시도와 사뭇 다르다. 중보는 사선(死線)을 오가는 기도다.

바울은 외골수의 성격처럼 중보기도에서도 주님을 제외하고는 신약을 통틀어 독보적인 존재다. 구약의 바울이 모세라면 신약의 모세는 바울이다. 그만큼 중보기도에 있어 영혼을 담보로 할 만큼 그들은 대범했고 특출했다. 그런 바울이 신약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저술을 남기고 기도에 관한 교훈들을 외쳤음은 다행이다. 그의 기도교훈은 경험적이고 실제적이어서 우리에게 올바른 방향과 지침을 제공한다. 자신이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지 않고 교회를 향해 그런 기도생활을 권했을 리 만무다. “무시로”의 기도는 모든 상황과 경우에 따른 온갖 종류의 기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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