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마 6:9).
1)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시작하시면서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을 누구로 부르라고 가르치고 계십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헬라어로 아빠(abba)입니다. 하나님을 아빠로 부르면서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빠로 부르도록 가르치신 것은 예수님의 독특한 어법입니다. 어린이가 아버지를 친근하게 부를 때 ‘아빠’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빠로 부르라고 가르치신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 친밀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아빠’ 또는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언약신학의 표현입니다. 언약이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자기 백성 삼으시고 그들에게 자신이 하나님 노릇 해주시겠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독일 신학자 요야킴 예레미야스(J. Jeremias)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후한 유대 문서 어느 곳에서도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른 예가 없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부를 때 거룩한 하나님, 전능하신(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초월적인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하나님을 친근하게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주 혁명적으로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로 부르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라는 관계로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상속자’라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을 우리가 아빠로 부르는 순간, 그분의 모든 부요함을 내가 상속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로 부르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늘의 부요함을 끌어 쓸 수 있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빠로 부를 수 있는 자격과 권한을 누가 부여했습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질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여 라는 기도 속에서 당신이 느끼는 친근한 감정은 어떤 것입니까?
②하나님은 어디에 계신 분입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늘에 계신 분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는 것은 친근감을 강조한다면, ‘하늘에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내재성과 초월성이 함께 강조되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초월하신 하나님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우리 인간을 구원하려면 초월하신 분이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초월하다는 말은 무한하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초월하시기에 우주를 만드시고 또 다스리고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초월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빠 노릇을 해 주셔야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초월성을 부인하는 신론을 범신론이라고 합니다. 힌두교나 불교가 대표적인 범신론 종교입니다. 이런 종교의 구원론은 자력 구원론입니다.
반면에 거꾸로 신의 초월성은 강조하나 신의 내재 즉 신이 우리를 구원하러 우리에게로 와야 한다는 측면을 부정하거나 약화시키는 신론이 있는데 그것을 이신론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이슬람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슬람 신학에서는 우리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신이 존재합니다. 바로 알라입니다. 그들은 기도의 첫마디에 “알라는 위대하시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 알라는 하늘 저 꼭대기에 홀로 앉아 있을 뿐이지, 결코 타락한 세상에 오지 않습니다. 결국 자력으로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메카를 순례하고, 금욕을 하고, 라마단 금식을 하며,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를 하고, 동냥을 많이 주어서, 적선을 많이 해야 한다고 하는 자력구원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하늘에 계시는 초월적인 분이지만, 우리에게 오셔서 아빠 노릇해주시는 친근한 내재적인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땅에 계신 아버지라고 하지 않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강조하며 부르셨습니다. 땅의 아버지가 없어서 고독하신 분이 있습니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바로 나의 아버지요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기뻐하십시오. 땅의 아버지가 못마땅하고 변변하지 못해서 불평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늘의 아버지가 바로 여러분 곁에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감사드리십시오. 땅에 계신 아버지가 아무리 존경스럽고 훌륭해도 나와 더불어 영원히 계시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나와 더불어 영원히 함께 거하십니다. 땅에 있는 아버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불완전하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완전하시고 완벽하시고 온전하신 아버지이심을 믿습니다.
또한, 땅에 있는 아버지는 재산, 지능, 지혜, 지식, 건강, 감정에 한계가 있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모든 것을 소유하시고 우리를 부요함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늘의 아버지를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위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분배받은 후 집을 떠나 모든 재산을 탕진한 작은 아들이 깊은 절망과 좌절 가운데서 자신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자기를 아직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께 돌아가면 자신을 받아 주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모습 그대로 아버지께로 가서 그 품에 안겼던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 비유의 작은 아들과 같습니다. 우리는 아버지께로부터 위탁받은 값진 것들을 모두 탕진하고 못쓰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생명의 질서를 파괴하였습니다. 희망이 사라지고 삶의 목적이 무너져 내린 우리들이 살 수 있는 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에게로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키고 돌아서서 기도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사는 길입니다.
③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누구의 아버지인가?
우리 아버지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합니다. 이 기도문에 중요한 단어가 또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나’만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버지입니다. “우리”라는 말에는 공동체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고, 보편성과 우주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기도를 드릴 때, 우리는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인간적인 감정들을 다 내려놓고 당신도 나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진심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한국 사람의 아버지이고 일본사람들의 아버지이고 북한 사람들의 아버지이고 열방의 모든 백성들의 아버지이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첫 번째 기도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기도문을 기쁨으로 통과하기를 바랍니다.
질문) 당신의 마음에 미움의 대상이 있는지요? 어떤 편견 때문에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가 싫은지요. 내가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나’만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버지입니다. 당신의 기도가 막히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