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것(샤웨)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샤다이)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욥35:13).
우리는 왜 욥기에 주목하는가? 이 시대가 흉흉하고 어렵기 때문인가? 이 코로나 19 전염병으로 점점 점입가경(漸入佳境)의 상태로 들어서는 것 같다. 요소수 문제로 교통 대란과 물류 대란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질 것 같았다. 중국의 석탄 수입 문제(호주)로 인해 생산의 문제가 생기자 수출 제한 상태가 되면서 한국 경제에 심각한 요소수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때에 ‘위드 코로나’ 정책으로 대면 문화가 확대되고 있고 면역력이 약한 노년층 인구가 감소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우리는 전염병의 감염의 노출에 좀 더 다가간 상태가 되었다. 사회 경제적으로 다가오는 고난의 강도가 좀 더 강화되는 상태에서 경제적인 문제보다도 이제 신체적인 문제의 고난이 다가오는 상태가 되었다.
욥은 욥기 35장에서 젊은 엘리후를 통해서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생기게 되었다. 우리는 영적인 어두움 속에서 헤매는 욥의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그대는 이것을 합당하게(레미쉬파트) 여기느냐 그대는 그대의 의(치드키)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말이냐...그대가 의로운(차다크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미야드카)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35:2, 7). 욥은 엘리후의 세 번째 변론에서 두가지 질문과 대답을 이끈다. 첫째,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의로운 행실의 유익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요. 둘째, ‘기도에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욥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엘리후는 초월적 존재로서 인간사에 무관심한 분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선악에는 영향을 받지 않지만은 인간사의 선악을 판단하신다. 또 욥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욥의 교만과 회개치 않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아직도 욥의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대의 악은 그대와 같은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요 그대의 공의는 어떤 인생에게도 있느니라”(8). “사람은 학대(아슈킴)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군주들의 힘에(미즈로아 라빔) 눌려 소리치나”(9). 사람들과 사회의 상황은 매번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바뀌고 변화되고 교체된다. 인간은 자신의 유한한 한계를 거부하고 무한의 권력을 추구하려 하고 또 자기 세계의 아성을 쌓으려다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오늘의 상황도 이와 같이 전개되는 모습이며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을 봐야 할지, 무엇을 고대하게 될지 살펴야 할 것이다. “하물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뵈울 수 없고 일의 판단하심은 그 앞에 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 말하는 그대일까보냐 그러나 지금은 그가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악행을 끝까지 살피지 아니하셨으므로”(14-15). 아직도 하나님은 이 재난과 재앙의 시대에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시지 않고 있고, 우리의 악행을 끝까지 살피지 않고 계시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표본으로 삼고 따라갈 삶의 모델이 있다. 우리나라 초기 선교사로서 126년 내륙지방 최초의 선교부를 개설한 베어드(W.M. Baird, 1862-1931, 배위량)선교사이시다. 그는 부산에 처음 도착해서 선교 거점을 마련하고 경상도 다른 지역 선교를 위해 선교 탐방 여행을 하였다. 대구를 주의 깊게 보고 대구제일교회를 세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며 2차 탐방을 4년 후에 하며 경상도 북부지방, 울산, 동래, 경주, 대구, 안동, 상주 등을 둘러보고 1893년 선교일지를 쓴다. 그것이 윌리암 베어드(배위량)의 선교일기(이상규)로 남게 된다. 그가 선교여행을 통해 보여준 교회 개척의 열기와 독립운동의 기여는 후대의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다. 또한 그는 믿음으로 호랑이굴로 뛰어든 모험적 선교사로서 한국 선교의 지형을 바꾸어 놓은 인물이 되었다. 그로 인해 “대구는 남한의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1897년에 평양에 이주한 그는 숭실학당을 개설하고, 1906년 한국 최초의 근대 대학으로 발전시킨다. 1931년 숭실전문학교와 숭실중학교를 시작하고 한 달 후에 장티푸스로 별세하게 된다. 그는 사랑방 전도를 최초로 시행하여 한국 복음화에 크게 기여하였고 한국이 개화하는데 큰 역할을 하며 조만식 장로 등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는 부인 안애리 선교사와 함께 선교의 영향력을 크게 미치고 한국 땅에 뼈를 묻는다. 그들은 우리가 통일의 날을 기다리며 준비하도록 북쪽에 묻혀 그 묘지가 있는지 모른다. 우리도 한 나라와 한 민족을 품고 기도하는 배위량 선교사와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하리라 다짐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