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들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 (이하 생략)
어릴 때 즐겨 부르던 캐럴송이다. 매년 이맘때쯤 이면 항상 생각나는 캐럴송이기도 하다. 그냥 무심코 듣고 불렀던 내용이라 그리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가사 내용이 그냥 가볍게 생각할 만한 내용이 아니다.
어린아이가 선물을 받고 싶어서 울고 싶은 마음을 참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우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학습되었다. 그리고 울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것 또한 나쁜 것이라고 듣고 자라오기도 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스스로 참는 것을 가리켜서 ‘억압’이라고 말한다.
선물을 받기 위해서 겉으로 착하게 행동하는 것을 가리켜 대상관계이론 학자인 도널드 위니 컷은 ‘거짓자기’라고 말한다.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억압하는 힘이 강할수록 자기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인지 자기가치감을 잊어버리고 살게 된다. 심지어는 겉으로는 착해 보이고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지만 정작 가족들에게는 폭력을 행하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은 보통 무서운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들이 감정을 억압하게 되고 감정조절 능력이 상실된다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무심코 했던 말 한마디가 아이 입장에선 억압이 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칭찬’이 그렇다.
“우리 승연이는 참 착해”
“우리 승연이는 참 양보를 잘해”
“우리 승연이는 엄마 말을 참 잘 들어”...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어머니는 칭찬을 자주 해주셨지만, 어릴 때 기억하고 있는 어머니는 근심과 걱정이 많으셨다. 자신의 결혼생활이 불행하다고 말씀하셨고 어린 내가 보기에도 행복하게 느낄만한 집안 조건이 없어 보이긴 했었다.
우리 형제들을 위해서 아버지와 살고는 있으셨지만, 언젠가는 집을 나가실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마음이 언제나 불안했다. 밖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어도 어머니가 왠지 집을 나갔을까 봐 놀이에 집중이 되지 못했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집에 와서 엄마가 계시는지 확인하고 안심된 마음으로 다시 나가곤 했었다. 그때의 난 어머니가 행복하면 집을 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 생각 끝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착하게 되는 것이었다. 어머니 말을 잘 듣고 울고 싶어도 최선을 다해 짜증 내지 않고 동생에게 양보 잘하는 형이 되면 어머니가 행복해하실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면 정말 어머니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착하게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누군가를 위한 삶을 대신 살려는 노력은 했었지만,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더 나아가 내가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인지 오랫동안 잊어버린 채로 살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대인관계에서도 그리고 가정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영역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당시에는 몰랐었다.
알고 보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기 가치감을 잃어버린 채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상담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 이상한 사람들이 상담을 하는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상담공부를 할수록 우리 모두에게 상담이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어린 시절 미해결 된 감정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종교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부족한 욕구를 채우려고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격적인 우리 아버지다. 그래서 울고 있는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신다.
울고 싶지만 참고 견디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 한 사람을 하나님이 따뜻하게 마음속에서 울고 있는 나를 안아주신다. 예수님은 우리의 어둡게 느껴지는 내면의 영역을 함께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사 43:4)
하나님은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하신다. 그리고 주님은 내 곁을 떠나지 않으신다.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진짜 소중한 나의 가치를 주님 안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