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박사】 삼대를 넘게 이어진 언더우드 가문의 한국 사랑

  • 입력 2022.01.06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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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245)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57)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KC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KC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17).

요즈음 기준이 없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고, 법이 없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다. 코로나가 많은 세상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또 우리는 자연 재해와 재앙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나가서 그에게 지혜를 얻고 그가 이끄시는 삶의 길을 선택하여 살아가자. 오늘은 욥기 4장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얻고자 한다. 욥기 4장은 욥기의 초반부의 사단의 시험과 모든 것을 잃는 극심한 고난과 불행한 소식들로 인해서 탄식하는 상황이 나타난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는다. 그 신비함과 그 비결은 욥의 믿음에 있었다.

욥기 4장은 욥의 친구 엘리바스의 1차 변론에 해당하는 장면이다. 이 본문은 엘리바스가 최연장자로서 권위적이며 전통적인 인과응보의 사상에 근거하여 관념적으로 욥의 고난을 해석한다. “생각하여 보라(제카르) 죄없이 망한 자(아바드)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아웬) 밭 갈고 독(아말)을 뿌리는 자는 그래도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의 콧김에 사라지느니라(이케루)”(7-9). 다 죄악을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이 악해지고 판단력의 기준이 우상과 세상 가치가 되어 간다. 더욱이 더 종말적인 상황이 되어가도 욥기에 의하면 그것은 바로 인과응보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연일 보도되는 뉴스는 재앙의 사건들이 연속되고 비참한 사실 앞에 믿을 수 없는 재앙의 사건 앞에 넋을 놓고 한탄하며 울먹이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다. 허리케인이 가옥과 재산을 부셔지게 하고 불이 모든 것을 태워가는 현실 앞에서 불행을 당한 사람들은 자지러지지 않을 수 없다. “아침과 저녁 사이에 부스러져(유카투) 가루가 되며 영원히 사라지되(요베두) 기억하는 자(메심)가 없으리라”(20). 인생이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점점 상황이 어려워지고 코로나 3년째를 맞이하면서 이제는 자포자기(自暴自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욥을 예를 들어 설명하며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장막 줄(이트람, 특출남, 풍부함)이 그들에게서 뽑히지 아니하겠느냐(하로-니사) 그들은 지혜(베호크마)가 없이 죽느니라”(21).

이러한 환난의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보면서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께 기도하며 살아갈 것이라. 선교사들은 주님의 도우심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며 하나님의 선교를 하는 분이다.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Jr, 원일한 1917-2004)는 한국명 원일한으로서 연세대 설립자인 할아버지와 이름이 동일하다. 삼 대의 원일한은 아버지 원한경(horace Horton Underwood)의 뒤를 이었다. 아버지는 연세대에서 교육과 선교에 힘쓰며 한국을 재건하는 데에 힘을 썼는데, 원일한은 삼 대 선교사로서 연세대학교 복구 사업을 하였다. 또 그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국제 연합국 수석 통역관으로 일을 하며 정전 협정을 이끄는 데 한 몫을 하였다. 그 후에 연세대 영문학 교수, 재단이사, 한미 협회 부회장, 대한 성공회 이사 등을 지낸다.

그는 뉴욕 해밀턴 대학교에서 학사, 1955년에는 뉴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1962년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연희전문학교에 들어와서 학생을 가르치다가 1942년 일제의 기독교 탄압 때에 강제 추방을 당한다.

원일한 선교사와 연세대 언더우드관
원일한 선교사와 연세대 언더우드관

1947년 다시 자원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와 백낙준 박사와 더불어 연세대의 복구사업을 하였다.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영문학 교수로 23년간 활동을 하고 경신 중고교 이사와 연세대학교 총장 서리, 부산 일신병원 이사, 한미교육위원단 운영위원, 한미협회 부회장, 대천 수양관 이사장, 광주 기독병원 이사, 광주기독 전문학교 이사 등을 폭넓게 활동하였다. 그는 잠시 미국 생활을 제외하고 평생 한국에서 보낸 교육자로서 한국을 사랑하였다. 저서로서 <한국 전쟁, 혁명 그리고 평화>가 있다. 3대에 걸친 언더우드가(), 그 선교 역사가 언더우드 기념관에서 살필 수 있다. 그들의 삼대 역사, 아니 그 이상을 거쳐서 선교한 손길은 한국의 민주화와 자유 운동의 산실을 만들어준다. 한 가문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는 희망을 가진다. 이 어려운 시대에 아름다운 가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 소망을 가져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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