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오직 하나님만이 높이고 그만이 즐거워하는 예배에 초점을 두라
선택받은 이스라엘이 멸망한 가장 큰 이유는 예배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출애굽의 목적은 하나님께만 예배드리기 위함이었다. 가나안에 들어간 이유도 우상이 가득한 곳에서 하나님만이 최고의 분임을 선포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것을 망각하고 하나님 보다 자신과 우상숭배에 빠져 결국 심판을 받았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만이 찬양하며 예배하기 위해서다.
예배의 변질은 교회를 무너지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우리는 흔히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예배는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최고의 일이다.” 고 말한다. 그런데 막상 “예배가 무엇일까?” “어떻게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일까?” 하고 질문하면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한다. 예배가 나를 위해 존재하거나, 나를 만족시키는 예배가 되는 순간 예배의 힘은 사라진다. 예배가 교회 성장이나 전도의 도구가 되는 순간 교회는 위기가 온다. 예배가 교회를 유지하는 방편이 된다면 그 순간 예배의 가치는 상실된다. 자칫 예배를 종교의식에 머물면 영적예배가 되지 못한다. 얼마나 예배를 통해서 오직 하나님만이 높이고 즐겁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둘째, 성도가 하나 된 마음과 몸으로 드리는 리사이틀 예배를 드려라
예배는 몇 명의 예배인도자가 진행하는 예배 의식을 보는 시간이 아니다. 예배자는 온 성도다. 몸 된 교회가 함께 드리는 산제사가 진정한 예배다. 이것을 이해하는 좋은 메타포가 있다. 그것은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는 리사이틀이다. 예배는 마치 배우와 연극 단원들이 준비를 하여 관객들을 위하여 무대 위에서 공연을 올리는 것과 같다. 모든 배우들이 준비하여 관객을 위하여 공연을 하면 마친 후에 감동받은 관객이 기립박수를 한다. 모든 배우는 오직 관객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친다. 관객이 즐거워하는 것으로 인하여 배우는 기쁨을 얻는다. 뜨겁게 앵콜 박수를 하는 관객의 열광을 바라보면서 공연을 준비하고 열심을 다한다. 이것을 위해 단원이 모두 한 팀이 되어 한 작품을 만든다. 감독과 스텝과 배우와 연출과 작가와 엑스트라 등 모두가 합력하여 완전한 작품을 만든다. 한사람만이 잘해서는 안 되고 모두가 자기 역할을 충실하여 한 팀과 한 몸이 될 때 관객들을 감동하게 한다. 여기에는 누구도 제외되지 않는다. 이런 퍼펙트 공연을 보고 관객은 탄성을 지르고 뜨거운 박수를 한다. 예배는 온 성도들이 함께 한 몸으로 드리는 산제사를 주님께 예배를 올려드리는 것이다.
예배는 온성도가 한 주간동안에 받은 은혜와 회개를 담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과 고백과 헌신과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한 주간 동안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앞에서 말씀이신 하나님을 재현하는 하나님께 드리는 “갓리사이틀”와 “갓콘서트”와 같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드려지는 하나님을 감동하게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준비한 리사이틀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이 예배를 위해 부름을 받은 예배자인가? 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나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온성도가 드리는 예배에서 각자에게 맡겨진 역할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가장 가치 있는 분에게 드려지는 최고의 예배는 관객석에 만왕의 왕으로 앉아 있는 주님에게 드려지는 것이다. 주님이 박수를 칠 때 우리는 그분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행복해 한다.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우리는 기쁨과 힘을 얻는다. 이것이 예배를 통해 받는 은혜요 능력이다.
셋째, 한 주간 속에서 행하신 하나님이 행하는 일을 재현하며 선포하라
성도가 모여 주님이 한 주간 행하신 일과 성경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신 복음의 사건을 오늘 속에 선포하고 재현하는 것이 예배다. 주님이 행하신 그 은혜를 시와 찬양과 노래와 음악과 헌금과 기도와 말씀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시간이 예배하는 일이다. 예배는 신앙을 재현하는 매주일 복음 사건이다. 예배는 신앙을 재현하는 것이다. 십자가 사랑이 오늘 다시 자현될 때 오늘 나를 새롭게 변화 시킨다. 성경은 인간의 지혜의 말로 설득하거나 변증하기보다 말씀을 그 자체를 재현하며 선포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스펄전은 “성경은 마치 동물의 왕 사자와 같다. 누가 사자를 변호하고 보호해준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사자는 풀어놓으면 스스로 자신을 능히 지킨다. 성경 말씀도 이와 같다.”고 말했다. 말씀을 재현하려면 성경자체의 힘을 살리는 방향으로 설교가 행해져야 한다. 인위적으로 감성적으로 설득하고 결단을 촉구하는 방식은 말씀자체가 가진 고유한 생명력을 희석시킬 수 있다. 유기농과 같은 순수한 성경자체의 힘을 살리자. 지금 우리 교회는 설교자나 청중들 모두가 본문 말씀에 집중하게 하는 말씀으로 교회가 살아나는 방향으로 나가야 예배가 살 수 있다.
넷째, 하나님의 품인 말씀 자체 속으로 푹 빠져 드는 천국 잔치 시간을 드려라
“오직 성경“을 말로 외치면 개념에 머물지만 성경자체와 성경전체 속에 들어가면 그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며 그것은 곧 삶과 연결하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과 교회와 만남이고 성도와 성도 만남이다. 역사와 언약과 연결이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합하시는 시간이다. 그 속에서 힘과 위로를 얻고 소망을 갖는 천국잔치에 참여하는 시간이다. 나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으려면 마음속에 그림을 그려라. 사람들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생각의 화랑에 걸려 있는 이야기들이 그려낸 그림들을 보며 영향을 받는다. 한 번에 쉽지 않지만 예배 속에서 천상의 하나님과 지상의 교회가 만난다면 그 속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는 그림을 그리는 설교와 예배를 소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예배는 시내산에 내려오신 말씀을 받고 그 말씀 속으로 푹 빠져드는 시간이다. 이런 점에서 예배는 천상을 경험하는 시간이며 그리스도안에서 갖는 거룩한 만남이다. 아울러 예배를 통하여 주님을 찬양과 경배하게 된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않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계7:10)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계7:12) 이런 천상의 찬양을 오늘 예배당에서 드려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예배의 현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