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목사】 풍랑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라 마 8:23-27

  • 입력 2022.09.14 09:41
  • 수정 2022.09.1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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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사람들은 풍랑을 당하지만 멸망하지는 않습니다."

김영수 목사│명지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Div), 호서대학교 일반대학원 목회상담학 수료,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목회신학 졸업 (Th.D), 나사렛대학교 음악목회학과 외래교수, 프레이즈 예술신학교 음악치료과 주임교수, 평택대학교 평생교육원 음악치료 외래교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상담대학원 외래교수로 그의 저서로는 [심방성구찬송집 (침신대 출판부)], [세메이온 기적강해 3권(갈릴리출판사)], [하늘나라 찬양강해 2권 (갈릴리 출판사)], [아가쏘스 늘찬양강해 전집 10권(기쁜날 출판사)], [성경말씀에 따른 관련 찬송 (기쁜날 출판사)], [찬양과 예배의 실제(기쁜날 출판사)], [야곱의 12아들과 그 지파(기쁜날 출판사)], [21세기 찬송가 해설강해 6권(기쁜날 출판사)], [52주 찬양예배핸드북(기쁜날 출판사)], [52주 찬송가큐티 (도서출판 누가)], [21세기 새찬송가 해설집(기쁜날 출판사)], [여성인물강해(기쁜날 출판사)], [목회종합자료백과 21세기 찬송가큐티3권(기쁜날출판사)], [월간교회성장 설교뱅크에 찬송설교 2년 6개월 정기 연재], [찬송가 강해 630편 완성]가 있다.
김영수 목사│명지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Div), 호서대학교 일반대학원 목회상담학 수료,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목회신학 졸업 (Th.D), 나사렛대학교 음악목회학과 외래교수, 프레이즈 예술신학교 음악치료과 주임교수, 평택대학교 평생교육원 음악치료 외래교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상담대학원 외래교수로 그의 저서로는 [심방성구찬송집 (침신대 출판부)], [세메이온 기적강해 3권(갈릴리출판사)], [하늘나라 찬양강해 2권 (갈릴리 출판사)], [아가쏘스 늘찬양강해 전집 10권(기쁜날 출판사)], [성경말씀에 따른 관련 찬송 (기쁜날 출판사)], [찬양과 예배의 실제(기쁜날 출판사)], [야곱의 12아들과 그 지파(기쁜날 출판사)], [21세기 찬송가 해설강해 6권(기쁜날 출판사)], [52주 찬양예배핸드북(기쁜날 출판사)], [52주 찬송가큐티 (도서출판 누가)], [21세기 새찬송가 해설집(기쁜날 출판사)], [여성인물강해(기쁜날 출판사)], [목회종합자료백과 21세기 찬송가큐티3권(기쁜날출판사)], [월간교회성장 설교뱅크에 찬송설교 2년 6개월 정기 연재], [찬송가 강해 630편 완성]가 있다.

라면과 김밥 한 줄에 9,000원 하는 고물가 고환율 위기에 계속되는 코로나와 각종 환경재해로 인한 두려움과 불안은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 재앙으로까지 치닫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갖가지 두려움과 어려움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업이 잘 안 되어도 두렵고,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지는 않을까? 두렵고, 무엇보다 질병에 걸려 어려움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들의 형편과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며 질책하듯 꾸중하고 있습니다. 저희인들 평안함을 어찌 싫어하겠습니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두려움과 걱정 없이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편안하고 좋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순간순간 고난의 풍랑에 휩싸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 예수님이 함께하심에도

본문 24절에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시는지라.”이 말씀의 핵심은 예수님이 함께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풍랑이 일어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제자들만 배에 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함께 배를 타고 가는 중인데 어떻게 풍랑과 고난을 겪을 수가 있느냐? 의심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입니까?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고 각종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신 능력의 하나님이신데 그런 분이 배에 타고 계시는데 어떻게 거센 풍랑이 일어날 수가 있느냐? 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거센 풍랑과도 같이 불어 닥친 코로나19’로 인해 세상 사람들만 코로나에 걸려서 어려움을 당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나 교회는 멀쩡해야 하는데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가장 먼저 연약한 수많은 개척교회가 문을 닫았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의아해하며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반문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의구심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도 풍랑이 일어날 수 있는가?”하는 문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하는 질문이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오늘 이것을 한 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도 풍랑이 일어난 것은 그 풍랑으로 인해 잠시 고통은 당한다 할지라도 믿음의 사람들은 절대로 망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91-3절 말씀을 보면 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 때문입니까? 그 부모 때문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앞을 보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풍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비난과 놀림의 대상인 소경에게 주님은 그가 소경이 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고자 함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제 며느리도 어느 날 사고로 인하여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1급 지체장애인이 되었는데 그 며느리에게 네가 이렇게 된 이유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 하심이다.”라고 말할 때 믿음이 연약한 내 며느리가 이를 얼마나 아멘으로 받아드릴 수 있을까요? 아마도 더 많은 인생 여정의 풍랑이 지나고 난 후에야 날마다 나와 함께하시며 돌보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제가 한 말을 아멘으로 받아드리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는 인생 여정에서 당하는 풍랑 또한 이처럼 거룩한 숨은 뜻이 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면 어떤 풍랑과 어려움이 다가와도 우리는 족히 이겨낼 수 있고 그 이김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는 축복이 되어 은혜의 하모니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믿음이 모든 것은 이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풍랑으로 인해 넘어지지 않고 더욱 굳건하게 견뎌내며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신자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날마다 나와 함께하시며

돌보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

 

. 풍랑을 주시는 목적

첫째는 연단, 혹은 성숙의 목적입니다.

아브라함은 고난을 통해서 믿음이 커졌습니다. 요셉과 다니엘은 고난을 통해서 젊은 나이에 한 나라를 통치할 수 있는 성숙한 안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고난을 통해서 형제 우애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야곱 자신도 연단을 통해서 경건한 신자로 성숙하였습니다.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만일 어린 시절을 평탄하고 풍요롭게 자랐다면 지금의 일하는 목회자가 될 수 있었을까? 더욱이 예수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 목회자가 되기까지 또 목회자가 되고 나서도 교회를 크게 건축하고 또 대학교 외래교수로 활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일하는 목회자가 되어 일과 목회를 병행하며 그것도 부족하여 65세의 나이에 대학교 공부와 자격증 준비에 이르기까지 몸을 내던져야 하는 힘든 삶을 살아가는 저 신을 바라보며 .... 불쌍한 인생이라고 탓할까요? 편하게 대충대충 살지 뭐 그렇게 힘들게 살아!...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그런 유혹들을 물리치고 일어선 저를 많은 목회자가 부러워합니다.

 

일하는 목회자의 삶을 사는  김영수 목사 저서
일하는 목회자의 삶을 사는 김영수 목사 저서

 

둘째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깊이 아는 기회가 됩니다.

영적인 눈을 뜨는 계기가 됩니다. 욥은 중년에 엄청난 시련을 겪었습니다. 수천 마리의 가축이 다 죽었습니다. 열 명의 자식이 한 날에 죽었습니다. 살이 썩는 고약한 병이 들었습니다. 어느 하나 감당하기 힘든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련 속에서 욥이 얻은 최대의 소득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42:5)

성경은 풍랑에 대해서 이런 말씀을 합니다. “선척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영업하는 자는, 여호와의 행사와 그 기사를 바다에서 보나니, 여호와께서 명하신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저희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니 그 위험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도다. 저희가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107:23-30)

어찌 되었든지 문제가 되는 것은 풍랑 자체가 아닙니다. 환란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환란과 풍랑을 대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소원의 항구까지 안전하게 인도하시고자 나를 단련하시는 것뿐입니다.

 

. 풍랑을 이기는 방법

첫째,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일입니다.

풍랑을 해결하는 첫 번째 열쇠는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일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기도입니다. 제자들은 위기를 당하자 급히 주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25)

사람들 대부분이 처음부터 주님을 찾지 않습니다. 어려운 시련을 만나고 풍랑 속에 갇히게 될 때 그제야 주님을 찾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한배를 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주님을 의식한 것은 풍랑 때문입니다. 적어도 풍랑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주님이 곁에 계시다는 사실을 별로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어느 시점에서 주님을 깨웠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아마 분위기로 봐서, 한참 애를 쓰다가 배에 가득히 물이 차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되니까 주님을 깨운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하든지 가장 먼저 할 일은 주님을 찾는 일입니다. 주님을 찾는 일보다 다른 수단을 마련한다면 결코 풍랑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병들어 병원을 찾기 전에 먼저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세요.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직장을 구하기 전에, 시험을 보기 전에, 승진을 힘쓰기 전에 먼저 주님께 요청하세요. 사람과 다투기 전에, 논쟁하기 전에 먼저 주님을 찾으세요. 먼저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세요. 주님을 찾는 일이 최우선입니다.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둘째, 믿음을 크게 키우는 일입니다.

풍랑에 대처하기 위해 두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제자들이 두려움 때문에 소동을 벌일 때에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26) 믿음이 적은 것이 문제입니다.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의 정탐꾼은 우리는 그곳의 사람들에 비하면 메뚜기와 같다는 보고를 하면서 우리는 저 땅을 차지할 수 없다며 부정적으로 보고했지만, 단지 두 명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고 고백하며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14:7-9)고 보고했습니다.

믿음과 두려움은 반비례합니다. 믿음이 크면 두려움이 줄어듭니다. 믿음이 줄어들면 모든 것이 다 두려워집니다. 예수님은 평안히 주무시는데 제자들은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믿음의 차이입니다. 세상만 바라보면 믿음은 약해집니다. 믿음이 약해지면 세상일이 너무 크게 보입니다. 제자들의 눈에 풍랑은 크게 보이고, 자신들은 너무 작게 보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믿음을 크게 할 수 있을까요? 유일하고 첫째 되는 방법은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시야를 바꾸세요. 세상을 보지 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세요. 주님을 바라보면 인생이 제대로 보입니다. 우리 인생이 얼마나 크고 소중합니까? 세상 문제에 가로막혀서 중단될 만큼 값없는 인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모든 피조물의 지배자로 지으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뿐인 독생자 예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우리의 모습입니다.

 

믿음과 두려움은 반비례

 

셋째, 주님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믿음을 크게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시야를 바꾸는 것입니다. 산악훈련 때 줄타기를 하는데 밑을 바라보면 두려워서 앞으로 한 발도 못 내딛습니다. 하지만 건너편 나무를 바라보면 두려움이 감소하듯 힘들고 어려울 때 세상을 보지 않고 주님만을 힘써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문제가 문제로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그냥 계신 것이 아니라, 나를 도와주시기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41:10)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1:9)며 우리가 도와주시기 위해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큰 실수가 예수님을 내 수준에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움 요청을 하지 않거나 늦추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27) 예수님은 풍랑을 통해서 더욱더 확실하게 자신이 누구임을 알리셨습니다. 기적의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 생명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주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을 단순히 인간으로 알고 믿는다면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입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심한 파도와 고난을 겪고 계십니까? 이는 여러분을 더욱 성장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훈련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연단의 과정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풍랑을 당하지만 멸망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를 통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내는 주의 백성들이 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주님을 바라봄으로써 모든 것에 건짐을 받고 승리를 얻는 2022년 한 해의 모습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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