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오순절 날이 이르매(1절)
(1)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이다. 누가는 역사가이며 의사였고 바울의 선교동역자였다. 사도행전2장1절에서 초대교회에 일어났던 성령의 역사를 역사가의 눈으로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2)오순절이란 이름은 헬라어로 50일을 의미한다. 유월절 이후 50일이 되는 날을 오순절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지상에서 마지막 보완 사역을 하신 후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셨다.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에 자신을 헌신했다. 오순절에 성령이 그들 가운데 임했다.
(3)오순절 날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이다. 하나님의 사역의 때는 아주 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성령이 임했다.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의 시간을 이해할 수 있고, 기다릴 수 있다. 그래서 포기할 때를 알고, 기다릴 때를 아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그때를 알지 못한다. 영원히 살 것 같은 기분과 교만으로 허우적거린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기도하면서도 조급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때를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조급해하지도 말고, 게으르지도 말라. 열심히 성실하고 정직하게 나에게 허락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제자가 되라. 하나님은 정확한 때에 일하신다.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정하신 때에 복주시고 역사하신다. 오순절 날 ‘때가 이미 이르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하신 것이다. 바로 그날에 성령이 임하셨다.
2. 오순절의 상징적인 의미
(1)구약시대에 유대인들은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림으로써 오순절을 지켰다. 유월절은 보리 농사가 끝나는 때이고, 오순절은 밀 농사가 끝나는 때이다. 이 두 절기 사이의 기간이 50일이다. 오순절을 칠칠절 혹은 초실절이라고 부른다.
(2)놀라운 사실은 유월절 지키는 부활절이 주일이다. 또한 오순절도 주일이다. 놀랍게도 주님이 부활하신 그날도 주일이고, 성령이 임한 그날도 주일이다. 세례요한이 밧모섬에서 성령의 계시를 받은 때도 주일이다(계1:10).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해서 오십일이 지난 후에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다. 그날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이다. 오순절은 이런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3.성령강림의 증거
1)청각적인 증거이다(2절)
(1) 오순절날 성령은 ‘청각적인 현상’을 일으키며 임했다. 성령께서 임하실 때 ‘홀현히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난’것이다. 바람은_헬라어 성경을 보면 프뉴마, 곧 spirit(영)을 의미한다. 바람은 입김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영과 바람과 입김은 동사 프레오라는 단어에서 왔는데 불다, 호흡하다라는 뜻이다.
(2)그것은 바람 소리가 아니다. 바람 같은 소리라고 했다. 이것은 영적인 소리이다. 하늘에서 온 소리이다. 들어본 자만이 아는 것이다. 이 소리는 한사람만이 들은 것이 아니라, 120명이 동시에 들은 것이다. 이 소리는 하늘의 바람 소리였고, 하나님의 호흡이었던 것이다.
(3)에스겔 37장에 보면, ‘생기’라는 표현을 썼다. “생기야 저 뼈 속에 들어가라 해골들 속에 들어가라” 하니 하나님의 생기가 뼈 속에 들어갔다. 그리고 군대처럼 해골이 움직였다.
(3)창2:7절에 보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위대한 장면이 나온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빚었다. 흙으로 빚은 사람의 코에다가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었다. 흙에 불과했던 사람이 하나님의 입김이 들어오자마자 살아있는 영이 된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다.
(4)성령은 하나님의 생명이고, 하나님의 호흡이고, 하나님의 바람이고, 하나님의 숨결이다. 이것을 체험해야 한다. 이 성령이 다락방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임한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할때는 공기와 분위기와 느낌이 다르다. 하나님의 영이 움직이기만 하면 하나님의 충만한 역사가 일어난다. 하나님의 영이 움직이면,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난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전되고 말씀에서 비전을 발견하고 새롭게 살고자 다짐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헌신하고 섬김의 삶을 살게 된다. 다락방에 성령의 사건은 청각적이고 그 공간을 지배하는 사건이었다. 성령이 공간을 다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2)시각적인 증거(3절)
(1)‘불의 혀’처럼은 다락방에 성령님이 오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묘사하는 것이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은 자신을 불 가운데서 드러냈다.
(2)출애굽기 3장은 모세가 호렙산에서 소명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모세에게 나타난 성령의 불은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지만 꺼지지 않는 불, 타지 않는 불이었다. 성령님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불이요, 타지 않는 불이다. 성령님은 정결하게 하는 불이요, 능력을 주는 불이요,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불이다. 이 불이 사람들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 불이 120명 모두에게 임했다. 이 불을 체험하지 않고서는 사역할 힘이 없다. 사랑하고 싶으나 사랑할 힘이 없다. 용서하고 싶으나 용서할 힘이 없다. 병들었을 때 낫고 싶으나 나을 힘이 없다.
이 불이 성령 하나님이다. 성령의 불이 다시 뜨겁게 임하는 교회를 원하며, 삶의 자리마다 임하기를 원한다.
3)전인격적인 성령임재(4절)
(1)성령충만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를 말했다. 자신의 말이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말을 한 것이다. 성령충만이란 지성속에, 지적인 모든 사고 속에 성령이 임하는 것이다. 성령이 나의 언어와 생각을 지배한다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삶에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축복의 문이 열린다.
(2)성령충만이란 무엇인가? 성령이 내 몸속에, 내 인격 속에, 내 신앙 속에 빈틈도 없이, 숨겨져 있는 공간도 없이, 모든 공간에 성령으로 채워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초대교회에 임한 성령의 모습이다. 완전히 충만하게 임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하나님이 나를 통치하고 지배한다는 뜻이다. 그분이 나의 사고가 되시고, 나의 판단이 되시고, 나의 선택이 되시고, 나의 말이 되시고, 나의 모든 것을 하신다는 뜻이다.
성령충만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성령님이 시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성령을 받은 사람인지 아니면, 사단의 영을 받은 사람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말과 행동을 보면 알게 된다.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이 성령충만한 결과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다.
(3)성령충만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 증거는 무엇인가? 하나님만 생각하면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그분이 나를 만져주시고 안아주시고 인도하신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성령충만한 삶을 사는 분이다. 그러나 예배시간에도 마음이 복잡해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며, 예배를 드리면서 찬송은 부르되 의미없이 따라 부르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혼자 생각속에 잠겨 있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고 열심도 없고 생각도 없다. 이런 분들은 성령충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4)예수님의 사역은 성령충만한 결과이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소경이 눈을 뜨고, 문둥병이 낫고, 죽은자가 살아나고, 귀신이 떠나가고, 바다가 잔잔해지는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났다. 창녀와 세리가 변화되고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자가 구원을 받았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당당하게 부활하셨다. 모두 성령충만한 결과이다.
4.”세상과 동행하지 말고 성령과 동행하라“[성령님을 경험하는 삶 참조_앤드류 머레이)
(1)양다리를 걸치지 말라. 한 발은 세상에 한 발은 하나님께 이런 신앙생활은 양다리이다. 우리가 성령님과 동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내가 세상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을 포기하고 성령님과 동행하라 그러면 모든 것을 얻는다.
(2)사교적 신앙으로는 안된다.성령님과 동행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진 신앙이 영적신앙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도 저것도 다 좋다는 마음은 성령님과 동행할 준비가 되지 않는 사람이다.
(3)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위하여
첫째, 성령님은 살아계신 인격체이다. 성령님은 성삼위 중에 삼위다. 성령님은 하나님이다. 성령님은 인격체이다. 인격체이기에 깊이 교제할 수 있고, 더 가까이 다가가 그분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성령님을 더 가까이하면 점점 그분이 더 좋아지게 된다.
둘째, 예수님께 점점 더 몰두하라. 예수님을 높이라. 예수님이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때 성령님이 오셨다. 성령님은 결코 예수님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임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라. 그리고 온전히 순종하라. 예수그리스도께 모든 영광을 돌리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높일 때 성령님은 우리 가운데 더 깊이 다가오신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다. 마음과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높이라. 이것이 성령님과 동행하는 길이다.
셋째, 의 가운데 행하라.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라. 선하게 살지 않으면서 신령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더러운 길, 잘못된 길, 불의한 길을 걸으면서도 성령님과 동행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지 말라.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다. 내가 거룩하지 못한 길을 걷는다면 어떻게 성령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겠는가?
넷째, 당신의 생각을 ‘깨끗한 성소’로 만들라. 당신의 영혼의 푸른 풀밭에 온갖 더러운 짐승들이 배회하거나 더러운 날짐승들이 날아다니도록 방치하지 말라. 그것들을 허락하는 날에 당신 영혼의 풀밭은 황무지로 변할 것이다.
다섯째, 성경이 성령님을 무엇이라고 가르치는지 연구하라. 우리가 성령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은 바로 말씀이다. 성경 말씀 속에서 성령님을 만나라. 성경은 성령님이 저자이다. 성경은 성령님의 계시로 쓰여진 책이다. 성경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성령님을 드러낼 것이다. 성경을 묵상하라. 한 달만이라도 실험해보라, 그리고 그 결과를 지켜보라.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 기도하라. 그러면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께서 가르치기 시작할 것이다.
어디서든지 성령님의 임재를 느끼는 훈련을 하라. 성령님과 가까이 하는 훈련을 하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카톡 문자를 읽는 것보다 뉴스를 읽는 것보다 유튜브를 보는 것보다 성령님을 찾으라.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실 때도 성령님을 찾으라.
능력 있는 제자로 살 것인가? 아니면 회색지대처럼 살 것인가? 그 구분점은 성령님이다. 성령충만하면 예수님으로 충만하면 비전의 인물로 거룩하게 세워진다.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오늘이란 이 현실의 파도를 견디지 못한다. 현실을 넉넉히 이기고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을 받들어 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위대한 생애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님과 동행하라. 세상과 동행하는 것을 거절하라. 주님과 더 깊이 사귐의 시간을 가지라. 말씀의 저자인 성령님으로부터 직접 힘을 공급받으라. 그러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