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심아카데미 5기 수료식 설교 중에서
3개월 여 기간의 결코 생각처럼 쉽지 않은 온라인 교육을 무사히 마치시게 된 것을 축하를 드린다. 수료를 즈음하여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지금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점검해 보시기를 바란다.
2017년. 호스피스 제도가 본격 시행되기 시작하면서 목적에 따라서 여러 교육기관이 생겨나고 있다. 대별하면,
A. 정부 주도의 전문 인력 교육(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등 전문 인력 중심의 정보나 기술습득 차원)
B. 사회단체 주도의 일반 자원봉사자 교육:
1. 종교를 초월한 사회 계몽적 차원에서 시행하는 교육기관
2. 강력한 종교적 신념으로 ‘태도적 가치’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있다.
(사) 안양호스피스선교회가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호스피스 돌봄 궁극의 목표를 평안에 두고 있다면, 종교가 아니고서는 섣불리 죽음을 이야기 할 수 없다. 절체절명에서 두루뭉술은 곤란하다. 일정부분은 책임 져야 할런지도 모른다(마 15:14).
호스피스 성경적 모델은 ‘선한 사마리아인’이다. (* 최악의 상황에서. * 최선의 돌봄을 * 끝까지 정신으로) ‘끝까지 정신’이 가능한 것은 종교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도 생명력 없이는 끝까지 함께 하기가 어렵다.
최근 어느 목회자분의 간증을 들었다. 건강 검진을 하면서 조직검사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1주일간 겪은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목회자로써 숱한 죽음을 보았지만, 그들의 죽음은 그런대로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막상 그 입장이 되고 보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고 체면 불구하고 솔직히 고백하고 있었다.
‘나도 언제든지 죽음을 맞을 수 있다면’,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이라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 당연히 ‘빚진 자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정상이다. 이 마음이 곧 ‘생명력’이다.
바울은 받은 사명을 위해서 거의 초인적인 삶을 살았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주님을 진짜 만났기 때문이었다. 우리 가운데 주님을 만나지도 않았으면서 자기 기분에 들떠서 사역도 하는 등. 짝 사랑 신앙인은 없는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 ‘빚진 자 마음’ 때문이었다(롬1:14).
먼저 구원을 받은 바울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이들 앞에서는 늘 빚진 자 심정이 되어 있었다. 주님을 직접 만났고, 감히 핍박자에서 먼저 구원을 받은 것을 마치 특권이나 받은 것처럼 부담을 가지고 살았다. 그 부담감이 초인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였다. 정신이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진 빚을 다 갚을 때 까지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이 정상이다.
우리가 지금 이만큼이라도 누리고 있는 그럴 듯한 사회적 지위. 소유. 건강... 등도 솔직히 말해서 모두 어쩌다 보니 선점하게 된 것은 아닌가 싶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죽고 싶어서 죽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사람을 돕더라도 ‘빚진 자의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아주 낮은 자세로!
(사) 안호선은 그간 약 2800여명 교육 수료생을 배출하였다. 가운데 1~2기 수료생(25년 전 수료)들이 아직도 자원봉사자로 남아 있다는 것이 믿어지는가? 한번 새겨 진 ‘빚진 자 마음’이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수년 전. 모 기관으로부터 강사 초청을 받았다.
“제가 알기로는 지난 교육에서 훌륭한 강사들이 많이 수고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저를 또 초청하시나요?” “열심히는 하셨는데 남는 게 없었어요”하셨다.
호스피스 교육은 남는 게 있어야 한다 그것이 ‘빚진 자 마음’이고, 그것이 ‘순수 자원봉사의 생명력’이다. 기억하자! 자원봉사 교육에서 끝까지 남아야 할 것은 이론. 기술. 정보 차원이 아니라, ‘태도적 가치’ 라는 것을!
오늘 ‘예심아카데미’를 수료하는 뜻깊은 이 자리에서 자신에게 ‘빚진 자 마음’이 남아 있는가‘를 다시 한 번 긴급 점검해 보시기를 교육 책임자로써 당부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