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박사】 부모님을 따라 선교의 삶을 살아간 셔우드 홀의 『조선회상』

  • 입력 2024.07.18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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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배 교수의 구약 이야기 (374)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86)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1:1).

이 시편 1편은 시편 전체 150편의 서론이자 전체의 중요 흐름을 예고해주는 토라 시편이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키 임 베토라트 아도나이 헤페쪼)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우베토라토 예헤게 요맘 와라에라)”(1:2). 이 토라 시편은 시편 1편을 필두로 시편 19, 시편 119편을 대표적으로 하여 시편의 척추(Backbone)를 형성한다. 이 시편의 세계는 율법(토라), 말씀이 중심이 된 삶을 살아가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삶을 살아가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 그 선택의 결과가 판이하게 다르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 그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가는 삶은 마치 시내가 심은 나무와 같다고 하고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한다고 한다. 이는 그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말씀이 없는 삶, 악인들의 삶과 죄인들의 삶은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에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복있는 사람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지만 악인들의 길은 망한다고 결론짓는다. 시편 1, 1편의 세계는 시편 전체의 인생의 길을 대표적으로 대별하여 말하고 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카 요데아 아도나이 데레크 짜디킴 웨데레크 레샤임 토베드)”(1:6). 여기서 인생의 두 가지 길을 말하고 있는데, 그 길은 축복의 인생길과 멸망의 인생길로 나뉜다. 이 축도(Beatitude)의 시편, 곧 이 축복의 시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경외하는 삶)으로 인생을 살 때, 행복을 약속하는 평안을 보장받을 수 있음을 말한다. 이 시편은 전체 시편의 이정표요 예고된 중심 시편(signpost)으로서 그 전체의 싸인(sign)을 보여준다.

이 시편은 지혜의 시편으로서, 지혜교사 중에 한 분이 저자가 되어 토라 시를 쓴 것으로 볼 수 있다(8:9, 18:18; 전도서 12:9이하, 잠언 8:1이하). 이 지혜시를 통해 젊은 사람에게 토라의 삶을 제시한다. 곧 생명의 지식과 부지런하고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기본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능력을 가르치고 있다. 이 시는 끝에 지혜 노래의 형태를 사용한다. 교육적인 의도를 가지고 친숙한 용어와 이미지, 권고의 형태등을 보여주며 실제적 지혜를 근거하여 이 지혜시는 공공의 예배에서 기원한 확고한 종교적 기초에 입각하고 있다. 이 시편은 처음에는 대조적인 삶의 두가지 길(1-2)을 제시하고 두 번째로 저자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사악한 사람의 성격과 가치를 보이는 언어적 이미지를 통해 표현한다(3-4). 셋째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의 선언을 선포하며 맺는다(5-6).

다시말해 인생의 두 가지 삶의 길은 복있는 삶인가, 그렇지 못한가에 따라 생명과 멸망의 길로 나뉘게 됨을 말한다. 축복의 삶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 또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삶이다(1-2). 이러한 말씀(토라, 율법)의 삶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열매를 맺으며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고 형통한 삶이 된다. 그러나 악인들의 삶은 그렇지 아니하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요동하는 삶, 방황하는 삶이다. 악인들은 심판에 견디지 못하고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한다. 결국 하나님이 인정하는 삶인가, 아니면 인생의 삶이 망하는 악인들의 길인가? 결론은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끝난다. 우리 주위에 사람들의 인생 끝을 보고 또 그 종말을 보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두려워하며 사는 삶,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지키며 살아가는 삶인가. 결국 우린는 토라의 삶, 율법을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러한 시편의 1편의 축복은 신약의 팔복을 말하는 마태복음 53절 이하와 상통한다. 시편 1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긍정적인 면(2)과 부정적인 면(1)을 든다. 결국 이러한 삶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계속하여 기도하는 삶(살전5:17)을 살아가도록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며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즐거워하며 사는 삶으로서 생명의 말씀이 샘솟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경건한 사람과 사악한 사람의 대조적인 성격과 그 두 가지 이미지를 통해 지혜의 삶을 살아갈 것을 교훈적으로 시편 기자는 1편에서 말한다. 그러한 삶이 시편 전체의 삶의 축복이 길인 것을 쉽게 말해주고 있다. 결국 우리 인생은 끝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항상 성실하고 정직하게 율법을 준수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 생명의 길, 축복의 길은 율법을 즐거워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지 않고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고 밝힌다. 따라서 율법은 복음으로 가는 그 삶의 전제와 그 가르침을 보여준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복음에 집중하며 주야로 묵상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축복의 인생을 살아간 분이 계시다. 닥터 홀(Sherwood Hall)<조선회상>에서 1) 은둔 왕국, 조선 2) 조선 여성의 지위 3) 조선인들의 미신 4) 조선 내 선교 병원을 자신의 시각에서 다룬다. 이 책에서 닥터 홀은 의료 선교사로 윌리엄 제임스 홀과 닥터 로제타 셔우드 홀 사이에 태어나서 2대에 걸쳐 조선의 의료 선교사로 활동한 이야기를 다룬다. 닥터 홀은 어떻게 조선에서 태어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설명하기 위하여 부모님이 처음 조선에 와서 어떠한 선교 활동을 했는지 말한다. 또 그 당시 조선 모습은 어떠했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먼저 어머니 닥터 로제타 셔우드가 1885년 조선에 제일 처음 방문하게 된다. 그녀는 서울에서 여자가 외출하는 것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 여의사로 의료와 교육 사업을 한다. 그 다음해에는 그녀의 약혼자이자 미래에 남편이 될 닥터 제임스 홀 또한 그녀를 따라 온다. 1892년 서울에서 그들은 결혼식을 치루고 일년 뒤 셔우드 홀이 조선 땅에서 최초로 태어안 서양인이 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1894년 청일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 때 부상자들을 치료하던 닥터 윌리엄 제임스 홀은 말라리아에 걸려 삶을 마감하게 된다. 로제타 셔우드 홀은 남편의 죽음에 낙담하지 않고 부활 신앙을 가지고 조선 의료 선교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하며 남편을 추모하기 위해 홀 기념병원을 건립한다.

절망에 빠지지 않고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조선 사회 내에 소외된 맹인을 위한 맹인학교를 시작하고, 여성만을 위한 평안 광혜여원 설립을 한다. 1928년 조선 최초 여자 의학교인 경성 여자의학전문학교를 설립하여 조선 내에서 선교 활동 뿐 아니라 고통을 받는 사람을 치료해주고 희망을 주는 복지 사업을 한다. 한편 그들의 아들인 셔우드 홀은 98세의 나이에 아버지 제임스 홀, 어머니 로제타 홀, 여동생이 모두 묻혀 있는 양화진에 묻히게 된다. 셔우드 홀의 <조선 회상>은 은둔의 나라를 이렇게 묘사한다. “조선은 한반도로 이루어진 불행한 지리적 위치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외국이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사건으로 점철된 역사이다. 조선 사람들이 외국의 지배와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한 정치적인 결과가 조선을 폐쇄된 은둔 왕국으로 알려지게 만들었다.” 쇄국 정책이 조선을 지키려는 정책이지만 문호를 개방하지 못해서 침략을 받게 된 까닭을 셔우드 홀은 말해주고 있다. 흥선 대원군의 쇄국 정책을 쓴 것에 대한 이해와 타당성도 설명해준다. “대외적으로 국제 관계에서 진정한 우방은 없고, 대내적으로는 수년간의 세도 정치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태가 되었다. 그렇기에 이러한 조선의 내정과 쇠약한 국력으로는 거대한 청나라도 패배시킬 만큼의 강력한 국력을 가진 서양과 대등한 위치로 외교 관계를 수립하지 못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외교관계를 수립했을지라도 서양과의 힘 차이로 개화보다는 조선 내 이권만 내어주는 결과가 초래됐을 것이다. 실제로 개화 이후 청, 일본, 러시아, 프랑스, 미국, 영국이 벌 떼처럼 조선에 달려들어 이권 쟁탈을 벌인 것과 같이 조선이 여러 가지 불평등 조약을 맺는 것을 미루어 볼 때 대원군의 쇄국 정책이 옳았다고 보는 바이다”(조선회상).

『닥터홀의 조선회상』, 원저 명 『WITH STETHOSCOPE IN ASIA:KOREA』, 셔우드 홀
『닥터홀의 조선회상』, 원저 명 『WITH STETHOSCOPE IN ASIA:KOREA』, 셔우드 홀

조선의 여성의 부자유한 생활과 남의 눈에 띄지 않게 격리하는 관습이 조선의 문제인 것을 지적하며 조선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나쁜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여성을 대중 앞에 나타나지 못하게 했다. 여섯 살이나 일곱 살이 되면 집안에서만 지내게 했다. 여자는 결혼 한 후에는 또한 남편의 집에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여성이 어느 정도 존중받던 고려 왕조와는 달리 조선의 여성의 입장이 현격히 다른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이 여자는 은둔의 나라라는 말처럼 은둔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여성의 문제와 같이, 미신의 문제가 조선인들에게 큰 문제인 것을 기록한다. 서낭당의 악귀, 조상 숭배의 관습 등은 인도의 갠지스 강에서 목욕과 물을 마심으로 피부병에 걸리는 것과 유사함을 지적한다. 선교사는 온돌방 문화에 대하여 좋은 점을 언급하며 침대보다도 청결하게 소독할 수 있다고 말하며 장점으로 들고 있다. 닥터 홀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조선의 문화에 다가가면서 사랑과 존중의 마음으로 조선인을 대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며 생활의 불편함과 위험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을 실천했던 슈바이처 박사와 같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랑의 이야기가 이 <조선회상>에서 살필 수 있다.

닥터 셔우드 홀의 16년 세월을 보낸 자서전에서는 이차 세계 대전 이전의 일을 이야기 한다. 결핵 환자를 위해 크리스마스 씰을 만들고, 결핵 요양 병원을 만들었다. 그는 한국 사람보다 더욱 한국을 사랑한 사람이다. 병원 문 앞에 게시판에 이렇게 쓰여있다. “공포를 버리세요! 희망의 옷을 입으세요.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또 셔우드 홀의 아버지는 그 선교의 문을 열고자 한국에 들어와서 장티푸스, 말라리아에 걸러 일찍 소천했지만 만일 하나님이 한 사람을 희생시켜서 이 도시의 문을 여실 생각이라면 나는 그 희생자가 되기를 피하지 않겠다”(윌리암 제임스 홀).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2대를 거쳐서 뜨겁게 사랑하였고 그 사랑의 추억은 <조선회상>에서 깊은 이야기를 남기고 오늘도 평양, 화진포, 대한결핵협회, 양화진에 그 사랑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이처럼 닥터 홀의 가정 전체를 한국에 바치게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축복의 삶이 바로 시편 1편과 같은 의인의 삶이요, 복 있는 사람의 길인 것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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