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富者의 조건條件’은 실제實際로 있는가?
그 부자의 조건이란 것은 ‘실재實在하는’ 인간 ‘계界’에서의 ‘실존實存’이자 ‘실존계實存界’요 ‘실체實體’이자 ‘실제체實體墆’라 하여 물의가 없다 할 일이다. 그래서 인생은 아스라하고도 으스름한 그 ‘부富’를 향하여 오늘도 열심히 달음질 하는 모양새로 현존現存하지 않는가? 그것이 부정된다면 오늘 인생의 내달음은 얼마나 허무虛無하고 허망虛妄한 일인가!
‘허망虛妄을 떠난 열반의 깨달음 또는 진여眞如의 이체理體’를 ‘실제’라 하거니와 이러한 ‘사물의 본질적 존재’를 ‘관렴론에서 일컬어 부사적 용법으로써’ 실제라고 하기도 한다. ‘사실의 경우나 형편’이라는 것이다.
여기 ‘理體라는 면에서의 부자는, 철학적 용례로는 ‘이성(理性)으로 파악되는 사유의 대상’이라는 면에서 ‘부자’란 결국 하나의 관념적이기도 하고 실체적이기도 한, ‘보통의 인생이라면 누구나 추구할 바에 다름 없는 꿈 곧 누구나 바라는 바에 다름 없는 말’이라 하겠다. 이를 부정한다면 그 뉘도 부자 되는 일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리라.
여기 ‘애시당초’라는 말도 우리네 국어학에서 가볍게 평하여 ‘애당초’로 굳이 ‘표현 축소’함은, 그 자체로 오만함에 다름 없는 노릇이라 할 것이니, ‘소부재근거부재천’이라 함이 이에 유의미하다 할 일이다. 어학적인 면에서의 표현 축소에도 불구하고 내시는 ‘하나님의 부하게 하심이 국가 단위로 현대 사회에서 인구에 회자됨이 우리 한국의 현상학적 논리’라면, ‘헬조선을 논하는 자들의 경건하지 못함이 변하여 감사와 찬송으로 화하는 신령한 역사가 통일 한국에서는 현실화 되어야 할 일’이다.
허면, ‘거짓이나 상상이 아니고 현실적으로’ 라는 의미를 포함한 이 ‘실제’로 ‘실재’하는 부자라는 존재는 그 조건이 있는가?
부자富者란, 재물이 많아 ‘살림이 넉넉한 사람’이다. 부자란, ‘재물이 많은 사람’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는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도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세계’라 묘사 되어 있는 우리 시대 우리네 이야기로의 실존하는 ‘계界’에 다름 없다. .
현재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부국富國이 되었고, 불가피 하게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지향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서 분단국가의 아픔과 설움을 극복해야 할 당위當爲로써의 이 富를 잘 관리해야 할 현실에 직면하였고, 그런 이유로 하루가 달리 국가 지도자에의 갈망으로 점철된 사회 현상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 현존하는 실제 중이리라.
이러한 때에, 현역 목사로서 이 부와 부자에도 조건이 있음을 제시하고 “얻으려면 주어야 한다”는 역설力說로서 졸부猝富가 아니라 炪富 즉 빛이신 하나님 안에서의 온전한 부의식富意識을 함양涵養하는 교육적敎育的 논서論書가 나왔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 11:1)
“이것은 모든 성공한 사람들이 바로 배우는 사업 원칙입니다. 투자 없이는 수익이 없고, 위험 없이는 보상이 없습니다. 이는 학생이나 결혼 생활의 파트너뿐만 아니라 사업가로 성공하고 싶다면 기억해야 할 사실입니다. 시간, 노력, 자기 훈련, 그리고 일반적으로 자신을 바치지 않고는 이러한 사업이나 다른 사업에서 성공할 기회는 없습니다. 실패하는 사람들은 대개 변명과 비난, 원망과 분노를 품습니다. 반면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무언가를 기꺼이 포기했기 때문에 성공했습니다. “먼저 주면 나중에 얻는다”라는 말씀은 솔로몬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들어맞는 사실입니다.”
평화성결교회(담임: 최종인 목사, Th.D)에서, 묵묵히 ‘세간世間 향해 던지는 생명의 떡’이, 추석 명절로 분주한 시기에 앞서 ‘방앗간에서의 떡보다 찰지게’ 나왔다.
pdf 형식이고, commission@naver.com 으로 문의시 응답 가능하다. 현재 <회색코뿔소 앞에 선 다윗>, <Church@메타버스>, <간병의 축복>, <시편과 정신건강> 등이 지인들 사이에서는 인기 중에 읽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