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가 온전하여(테미메 다레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하호레킴 베토라트 아도나이) 복이 있음이여(아쉐레)”(시119:1).
세계가 너무 뜨겁다. 가을의 문턱을 훨씬 넘었는데도 폭염의 더위는 대낮의 활동을 어렵게 하고 있다. 어떻게 지구가 태양처럼 뜨거워져가는지 모를 일이다. 세상도 전쟁의 소식이 끊임없고 사막에 폭우가 쏟아져서 홍수가 났다는 소식도 들린다. 점점 종말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얻고자 한다. 시편 119편은 시편 전체의 말씀 중에 가장 중요한 말씀으로 토라 시편(지혜시편)의 핵심 말씀이며 하나님 말씀의 패러다임과 전체 우주적 말씀의 세계를 알파벳 22자(알렢부터 타우까지)순서로 각각 8구절을 통해 표현한다. 하나님의 율법(여호와의 증거, 주의 도, 주의 법도, 주의 율례, 주의 모든 계명, 주의 의로운 판단, 주의 율례들)을 8가지 다른 평행한 단어로 표현하면서 말씀의 세계를 알려주고 있다. 마치 ‘동서남북, 동서남북’(짝, 하브루타)의 4개 단어와 구, 그 구절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온 세계에 가득차야 함을 강조하고 있으며 어디서나 항상 토라인,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보쉬) 아니하리이다(아즈 로 에보쉬 베하비티 엘 콜 미쯔오테이카)”(시119:6). 하나님의 길을 가며 성직의 생활을 사는 것은 이 세상에서 바로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에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때로는 인간이기에 실수하고 넘어질 때에도 말씀을 다시 붙잡고 일어나면 재기(再起)에 성공할 수 있음을 말한다. “내가 주의 율례들을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에트 후케이카 에쉬모르 알 타아제베니 아드 메오드)”(시119:8).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베리비 짜파네티 임메라테카 레마안 로 에헤타 라크)”(시119:11). 죄와 죄악의 문제가 인생을 넘어뜨리는 요인임을 알고 시편 기자는 이를 강조하며 마음을 다시 바로 잡으라고 있다.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베데레크 에도테이카 사세티 케알 콜 혼)”(시119:14).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베후코테이카 에쉬타아샤 로 에쉬카흐 데바레카)”(시119:16). “내가 주의 교훈을 지켰사오니 비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갈 메아라이 헤레파 와부즈 키 에도테이카 나짜레티)”(시119:22). “내 영혼이 진토에 불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다베카 레아파르 나흐쉬 하예니 키드바레카)”(119:25). “나의 영혼이 눌림으로 말미암아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달레파 나흐쉬 미투가 카예베니 키데바레카)”(119:28). “내가 주의 증거들에 매달렸사오니 여호와여 내가 수치를 당하지 말게 하소서(다바크티 베에도테이카 아도나이 알 테비쉐니)”(119:31).
이처럼 시편 기자는 알파벳(알렢부터 달렛, A-D) 순으로 각각 8구절에서 토라의 세계를 말하며 복받는 삶, 청년의 행실과 즐거운 인생, 주의 율법(토라)의 놀라운 것, 영혼과 마음의 형통 등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다. 이는 학습하기에 용이한 방법으로 암송하는 시편으로서 시편 19, 119편을 알파벳 시로 구성하였다. 토라, 율법에 대한 찬양은 여호와의 찬양에 있어서 모든 능력으로 충만하며 구원받기에 충분한 자질과 성격을 보여준다. 시편 19편은 바로 저자가 고대 찬양곡에서 태양에 대한 찬송에 영향을 받아 여호와의 율법이 창조 사역의 뛰어난 작업을 가능하게 하고, 의로움의 결과와, 참된 삶으로 인도하는 빛비춤이 있고 생명을 주는 태양과 같은 사람이 되게 한다. 이러한 삶은 바로 기도하는 삶이라는 것을 시에서 보여주며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그의 보호하심을 확신함으로 마귀의 유혹과 궤계를 이길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시편 119편은 토라(율법)를 사랑하는 것이 기도의 크고, 많은 찬양의 동기를 보여준다. 율법(토라)의 가치는 무지를 밝혀주고 날카롭고 지속되는 고통과 질곡의 삶에서 그 탄식의 삶을 극복하며 해결하는 것이 토라(율법)의 열정에서 찾을 수 있으며 따라서 시편 기자는 그것이 바로 기도의 제목이 되어야 함을 가르친다. 그래서 계명을 지키기 위해 보다 밝은 토라의 추구를 강조한다. 이것이 바로 시편 119편에서 이것이 확실히 보이는 점이다. 하지만 시편에서 율법 종교의 영향은 아주 분간하기 힘들다(모빙켈). 제의 시편, 성전 예배의 공식적 예배에서 토라가 사용된 것은 바로 학습된 토라 시편의 기능상 그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시편 119편의 혼합된 형태와 의식적 구성은 제의에서 시편 기자나 기도자가 탄식과 찬양의 동기와 그 모티브를 통해 알파벳 시의 각운과 각연의 시작을 통해 연속적인 사고를 보인다. 이는 그 연속과 느슨한 구성을 통해 모호하고 산만한 시편의 구성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말씀(토라)의 산책을 하게 한다(알파벳 시편 9-10편; 25; 34; 37; 111; 112; 119; 145편). 이처럼 우리는 시편의 문체의 산만함을 보게 되지만 이는 시편 후기의 기록에서 특히 솔로몬의 시편에서 두드러진다. 하지만 이러한 시편의 세계는 하나님 말씀의 세계가 우주적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편 119편이 중요한 산길을 가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시편 119편은 시편의 전통주의와 그 특성을 보여주며 시편 37편과 77편에서처럼 학습하기 쉬운, 지혜 시의 성격을 보여준다. 지혜시 문체처럼, 그 스타일로 제의에서 해방을 가지게 하는 새로운 시적 형태이다. 이 제의적 상황에서 바로 암송한 토라 시편을 통해 예배자가 기도하게 한다. 이 시편 119편의 예술적 시구성은 바로 듣는 자의 예배 동기와 토라의 사랑, 기도의 도움, 탄식의 시편과 율법(토라)의 찬양을 목적으로 저술된 시이다. 따라서 이 시편은 교훈적(didactic)인 암송을 통한 시낭송인데, 이는 문제를 푸는 시편으로서 본질적으로 학습용 시편으로서 기능과 그 역할을 한다. 제의적 삶에서 이 토라 시편이 제의와 연관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삶에서 시편의 삶의 자리가 제의를 넘어선 실제의 삶에서 실패하지 않을 삶, 곧 성공의 삶을 추구하는 교훈적 시편이 되었던 것이다. 교훈시는 용어상의 모순(contradictio in adjecto, 형용사의 모순, 용어상의 모순)이 있지만 우리는 이 모순된 시의 삶에서 성공으로 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서 시편 119편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시편 전체의 핵심, 척추 시편으로서의 역할을 살필 수 있다.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면 내가 주의 계명들의 길로 달려가리이다(데레크 미쯔오테이카 아루쯔 키 타레히브 리비)”(시119:32). 이러한 토라의 삶, 율법과 말씀의 삶은 바로 우리를 성공으로 이끄는 마음, 넓은 마음을 가지게 한다.
이러한 토라의 삶을 살아간 선교사가 있다. 제임스 게일(G. S. Gale, 기일(奇一), 1863-1937)은 75세의 인생을 살면서, 그는 선교사로서 학자로서, 번역가로서 활동하며 한국 문화에 가장 정통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토론토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와서 1889년 황해도 해주와 경상도 부산을 중심으로 전도 여행을 다녔다. 기일 선교사는 1890년부터 서울의 예수교 학당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이 학당은 후일에 경신학교로 바뀌었는데 여기서 그는 교장이 되었다. 그는 1891년 서상륜의 소개로 존 로스 선교사를 만났고 성서 번역과 출판에 관심을 가졌지만 토론토 YMCA의 자금 부족으로 미국 북장로회 선교회로 선교 단체를 옮겨야 했다. 그는 1892년 영국 성서공회 한국 지부소속으로 마태복음, 에베소서를 번역하였다. 다음 해에 <천로역정>, <춘양전>, <구운몽> 등의 한국 문학과 기독교 중요 서적을 번역한다. 특히 하나님의 칭호를 발견하고 이를 사용한 것은 게일의 공로였다. 또 <한양지>, <한국 결혼고>, <금강산지> 등을 영어로 번역하여 해외 선교사를 지망하는 사람이나 한국 문화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길을 제공한다.
선교 편지에서 “우리 선교회와 감리교인들은 대부분 하나님이라는 순수한 조선 토착민들의 말을 사용하기 원합니다”(선교 편지, 1894. 5.19일). “조선에는 기독교의 ‘GOD’에 상응하는 위대하고 절대적인 존재를 의미하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코리아 미션 필드, 1912. 5월호). 이처럼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기독교의 신(GOD)과 동의어가 되게 하였다. 그는 한영 사적을 제작하고, 한국시와 문학 작품을 번역하여, 외국에 소개한 번역가이자 한국학자였다. 제임스 게일은 연동교회를 개척하면서 서상륜과 이길함(그래함 리) 선교사와 더불어 초기 신자를 전도하여 예배를 드리게 하였다. 연동교회 초기 신자들은 천민에 속한 갖바치들 즉, 가죽신을 만드는 노동자들이었다. 점차 신도가 증가되면서 이듬해는 연동 소학교를 세워 여자들을 교육하는 정신여자 고등학교를 설립하게 된다. 기일 선교사는 그 교회의 초대 담임 목사에 취임하면서 한국인 교육을 장려하기 위해 연동교회 신자인 이원긍과 유성준, 김정식을 통해 한국 교육 기관의 효시인 ‘교육협회’를 창립하기도 하였다.
제임스 게일이 황해도 해주를 방문했을 때 일화이다. 그는 해주 목사가 그를 접대하는데 처음 만난 서양인이 귀신인지 몰라서 의아해 하는데 그가 해주 목사와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서양인도 조선인과 같은 인간임을 느끼게 하였다고 한다. 경상도 대구에서도 같은 일화가 있다. 당시 조선인들은 그를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낯설어했지만, 마침 다음 날이 새해 첫날이어서 부모님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말하자 ‘부모가 있고 공경할 줄 안다니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라는 공감대가 생겨서 서양인의 나쁜 분위기가 누그러졌다고 한다.
한국 근대화와 기독교 국가를 만드는데는 큰 역할을 한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전도한 분이 제임스 게일 선교사이다. 그는 우남 이승만이 회심하도록 돕고, YMCA에서 학감으로 있으면서 총무인 우남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계속 특별한 후견인(멘토) 역할을 하였다. 그는 다른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우남의 비범함을 한 눈에 알아보고 돕게 된다. 제임스 게일은 평생의 조사 이창직을 1889년 3월 황해도 소래에서 만나 한글, 한문, 풍습을 공부하고 1900년에는 서울에 상경하게 된다. 제임스 게일 선교사는 39년간 한국 선교를 하고 영국의 베스(Bath)에서 10년간 아내와 더불어 여생을 보내며 오르몬드 로지(Ormond Lodge)라는 곳에서 소천하게 된다. 한 선교사의 삶이 바로 한 나라의 빛을 여는 천국의 열쇠와 같은 중요한 생애가 됨을 우리는 알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