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12), 오순절날_큰 소동이 일어나다(행2:5-7)

  • 입력 2025.04.02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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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큰 소동"(6절)이 일어났다
둘째, "다 놀랐다"(7절)
셋째, "신기하게 여겼다"(7절)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이 한마음 한뜻으로 모여 기도할 때 성령께서 강하고 뜨겁게 임했다. 성령은 강한 바람 같은 소리로 임하였고, 불의 혀같이 갈라져 나타났으며,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기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 사건은 오순절 날에 발생했다. 경건한 유대인들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 각 나라에서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었다(행 2:5).

120명의 제자들이 각기 다른 말로 말하니 각 나라에서 온 유대인들이 듣고 크게 놀랐다. 성령의 역사를 목격한 사람들의 반응은 각기 달랐다. 이들의 반응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행 2:6-7).

첫째, "큰 소동"(6절)이 일어났다.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이는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는 의미이다.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그 현장에서 일어나자 사람들은 당황했다.

 

둘째, "다 놀랐다"(7절).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7절).

이 상황을 누구도 해석할 수 없었기에 모두 놀랐다. 그들이 보고 들은 일은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기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셋째, "신기하게 여겼다"(7절).

영어로는 ‘marvel’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성령의 역사를 옆에서 본 그 신비로움에 경탄했다.

각국에서 온 경건한 유대인들은 놀랐고, 신기하게 여겼다. 왜냐하면 각국 언어로 방언을 하는 사람들을 보니, 유학을 경험한 사람들도 아니고, 외국에 나가서 사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한결같이 다 갈릴리 사람이었다. 외국어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배움이 짧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입에서 각 나라 방언이 쏟아져 나왔다. 성령의 사건은 인간의 언어로 묘사할 수 없다. 성령의 능력은 인간을 상상력을 초월한다.

방언을 처음 받을 때를 기억하는가? 스스로 얼마나 놀랐는가? 기도하는데 혀가 꼬부라지고 이상한 말이 나왔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혀가 움직였다. 기도를 해도 지치지 않았다. 자신도 놀라고 주변 사람들도 놀랐다.

 

[아버지의 이야기]

내 아버지는 40대 초반에 예수님을 믿었다. 철저한 불교 집안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것이다.

아버지는 기도원에서 금식하며 기도하던 중 성령 충만함을 받았고, 방언과 신유의 은사를 강하게 체험했다. 원래 술을 말술로 드셨지만 성령의 은혜를 받고 나서는 술을 완전히 끊었다. 억지로 끊으려 한 것이 아니라, 입에서 술이 받지 않게 된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또한 아버지가 병자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면 병이 낫고 귀신이 떠나가는 일이 벌어졌다. 초등교육도 받지 못한 분이다. 할 수 있는 일이 산간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평범한 분이었지만 성령 충만을 받고 난 후 인생에 기적이 일어났다. 배움이 없는 분, 농사꾼, 술꾼, 온갖 잡신을 믿었던 삶에서 기도원을 운영하는 삶으로 바뀌었고, 한글을 몰라 테이프를 매일 들으며 성경을 암기 했던 분, 술에 취했던 삶을 버리고 성령에 취해 살았다.

예수를 믿으면 기적과 능력이 일어난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사망 권세를 물리치시고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소망이며, 능력이자 비전이다. 다른 데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소망은 주님이다.

성령을 체험하면 자신도 놀라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충격을 준다. 진짜 믿음은 강한 영향력을 준다.

초대교회와 중세교회에는 차이가 있었다. 중세교회에서는 신학이 발전했고, 예배의 형식이 짜임새 있었으며, 웅장한 건물과 풍족한 재정, 아름다운 찬양이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가 점점 약화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렇게 말했다. “초대교회에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 3:6)라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중세교회에는 은과 금은 많아졌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잃어버렸다.”

오늘날 교회와 초대교회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오늘날 교회에는 웃음도 있고, 아름다운 건물도 있으며, 봉사와 세미나도 많고,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무엇인가 목마름이 있다. 복음의 능력과 생명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다. 사람들은 교회를 쇼핑하듯이 다닌다. 생명의 주님을 모시고 살면서도 변화가 없다. 이것이 진정한 교회의 모습은 아니다.

나는 한국교회가 사도행전적인 교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가정과 일터, 교회와 민족이 사는 길이다.

나는 초대교회 성도처럼 생명이 있고 능력이 있는 성도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경험했던 성령의 능력을 잃어버렸다면 회개하고 기도하며 회복해야 한다.

내가 성령의 능력으로 폭발하면 세상 사람들이 놀란다. 세상에 살지만 구별된 모습이 기독인들의 정체성이다. 그 정체성을 보여주는 길은 다른 것에 있지 않다. 성령충만이 답이다.

최원영 목사. 본푸른교회. 열두광주리비즈니스미션대표, 서울신대신학박사, 본해럴드 대표
최원영 목사. 본푸른교회. 열두광주리비즈니스미션대표, 서울신대신학박사, 본해럴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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