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8), 베드로의 논증_권능, 기사, 표적(행2:22)

  • 입력 2025.05.08 22:10
  • 수정 2025.05.09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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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오순절 설교를 통해 증명하고자 하는 결론, 핵심은 무엇인가? 그 핵심은 행2:36절 말씀이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베드로는 유대인 청중에게 이 결론을 이끌어가기 위해 긴 논증을 시작한다. 이것이 오순절 설교이다(행2:14-36).

첫째 논증, 예수님의 사역과 표적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행2:22).

(1)베드로는 유대인 청중들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이 문장은 선지자들이 말할때 흔히 쓰던 경고적 어투이다. 즉 하나님께서 지금 중요한 선언을 하신다는 것을 전제하는 문장이다.

'이스라엘'은  단순한 민족적 정체성이 아닌, 하나님과의 언약 안에 있는 백성이라는 영적 정체성을 상기시키는 호칭이다.  이 말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답게 진심을 담아 경청하라는 요청이다. 

(2)베드로는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께서 권능과 기사와 표적으로 증명하셨다고 말한다. 유대인들 앞에서 분명히 행하신 일로 하나님이 예수를 인정하셨다는 것이다.

권능, 기사, 표적은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행위들을 총칭할 때 항상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그 의미나 강조점은 단어별로 차이가 있다.

권능(Power, 헬라어: Δυνάμεις, dynamis)은 “능력, 힘”으로 번역하며,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드러날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권능은 신적인 힘을 강조할 때 사용된다. 병자를 고치는 일, 귀신을 쫓아내는 일, 중풍병자를 일으키신 사건 (막 2:1–12)은 주님의 능력에서 나왔다.

기사(Wonders, 헬라어: Τέρατα, terata)은 “놀라움, 경이로움”을 의미한다. 보는 이에게 충격과 경외감을 주는 사건을 경험할 때 기사라는 용어를 쓴다. 기사의 강조점은 사람의 반응(놀람, 두려움, 경외)이다. 성경에 보면 자연을 제어하시는 사건, 즉 말로 풍랑을 잔잔하게(막 4:39), 물위를 걸으신(마 14:25–27) 예수님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큰 놀라움을 주었다. 

표적(Signs, 헬라어: Σημεῖα, sēmeia)은 “의미가 담긴 행위, 메시지를 전달하는 징표”를 알려주는 것을 표적이라 부른다. 표적의 강조점은 영적 메시지와 상징성 (무엇을 가리키는가)이다. 예수님의 사역 중에 오병이어(요 6:1–14)의 기적은 단지 배를 채우는 사건이 아니라 예수가 생명의 떡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요 2:1–11)로 변화시킨 사건이 일어났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사건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이 창조주시며, 새 시대의 주인이며, 기쁨과 구원의 원천이심을 상징하는 “첫 표적” 사건이다.

예수님의 신적 권능(능력)과 기사(놀라운 일)와 표적(상징적 기적)을 보면서 우리는 이것이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의 본질과 방향에 깊은 영향을 준다.

예수님의 권능은 신앙인이 하나님의 능력을 현재적이고 실제적인 것으로 믿게 한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신다는 확신,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면, 삶의 자리가 힘겹다하더라도 견딜뿐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현실을 뛰어 넘는다. 주님의 권능은 과거나 지금이나 더 필요하다. 하나님의 능력의 오른손으로 도와야 인생이 세워진다. 하나님은 지금도 능력으로 역사한다. 절망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믿음과 힘을 준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놀라운 기적은 상식이 된다.

예수님의 “기사”는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해진 것이다. 인간의 자연법칙 아래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이런 경험을 보고 사람들은 놀란다, 불가능한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고 회개하게 만든다. 그런데 현대교회는 주님의 일하심에 놀램도 경외감도 다 사라지고 있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경홀히 여길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존중할 대상이다. 우리가 겸손함과 경외감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라.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가장 필요한 산소와 물이다. 산소가 공기중에서 사라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것인가? 평균 성인이 약30초-2분 정도이다. 산소 공급이 끊기면 뇌는 매우 빠르게 손상되기 시작한다. 4분 이상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뇌 손상이 시작된다. 10분이상 산소가 공급되지 아니하면 생존하더라도 심각한 영구적 뇌손상을 입는다. 15분이상 산소가 공급되지 아니하면 대부분 사망 또는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진다.

지구에서 땅을 밟고 살아가는데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이 산소이다. 하나님이 지구에 산소를 공급하지 않는다면 생존자는 아무도 없다. 하나님이 산소를 공급해주신 것이 기사다. 경이로움이다. 오늘 이 아침에 시원한 산소를 마음껏 마시며 이것이 감사가 된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인간 지능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이 있다. 하나님은 경외의 대상이다. 오늘날 귀한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풍토가 만연하다. 익숙함에 무뎌진 신앙을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 산소 얼마나 귀한가. 우리의 생명과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 그분은 경외대상이다.

표적은 단순한 기적을 넘어서 하나님의 뜻과 메시야 되심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하나님이 나의 인생 가운데 놀라운 믿음의 증표를 보여주셨다면, 그것은 우리가 누구를 믿고, 따라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표적은 목적이 아니다. 예수님 자신이 목적이다. 표적을 주셨다면 하나님의 의도와 메시지를 바르게 해석하고 순종하는 삶의 자세를 갖는 것이 바른신앙관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표적을 보여주셨다. 표적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이다. 이 표적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증표이며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증표가 된다. 삶의 자리에서 표적을 체험했다면 표적에만 관심 갖지 말고 표적 그 자체인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른 신앙의 모습이다.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를 통해서 예수님은 누구인가를 논증하고 있다. 예수님은 표적과 기사와 능력으로 보여주신 메시야임을 선포했다.

이 아침에 성경책을 펴고 주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자, 다시 우리의 초점을 말씀에 집중하자. 계시 그 자체이신 말씀안에서 성령의 조명을 받는다면 오늘 이 하루도 감동으로 채워질것이다. 예수님을 잃어버리지 말자. '잊다'와 '잃다'는 동의어이다. 주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능력이고 은혜이다.

최원영 목사, 본푸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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