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있으라: 젊은 날, 한 줄기 빛이 되어준 사람

  • 입력 2025.05.29 15:53
  • 수정 2025.05.2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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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암 속 기도의 등불: 아버지를 통해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

금주, 창세기 1장을 읽다가 내 젊은 날이 떠올랐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 1절은 아주 장엄한 선포였다. 나의 태어남도 부모에게는 큰 기쁨과 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 1장 2절에 우주라는 공간은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2절에서 느끼는 색체는 혼돈, 공허, 흑암이다. 내 젊은 날, 나의 삶의 환경과 내면과 어두운 미래와 대면해주는 것 같다. 

젊은 날, 나의 인생을 색깔로 표현한다면 칙칙한 어둠, 혼돈, 공허에 더 가까웠다. 청소년기의 정신적 방황은 감기와 같다. 그 차이만 있을뿐이다. 지독한 가난은 현실을 더욱 암담하게 구렁텅이로 밀어넣는다.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방황했고, 수많은 길 앞에서 멈춰 섰다. 마음은 텅 비어 있었고, 내면은 아무리 채워도 만족함을 알지 못했다. 삶의 어둠이 나를 짓눌렀고, 세상의 흑암은 내 영혼의 눈을 가려버렸다. 빛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희망은 사라졌고, 삶은 방향을 잃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

혼돈, 공허, 흑암이 지배하던 우주 공간에 하나님께서 선포하셨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1:3).

빛이 있으라 명령하셨다. 그리고 세상에 빛이 찾아왔다.

젊은 날 혼돈, 공허, 흑암이 삶의 자리와 마음을 짖누르는 듯한 분위기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기도원 산위 정상에 기도의 집을 짓고 평생 기도하다가 소천 하신 아버지
기도원 산위 정상에 기도의 집을 짓고 평생 기도하다가 소천 하신 아버지

그러던 내게 마음 한켠, 말없이 빛을 전해주던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의 아버지.아버지의 삶도 평탄하지 않았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고난과 불이익을 감내해야 했고, 믿음 위에 서 있다는 것이 때로는 외롭고 고된 일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늘 한결같았다.  싸우지 않되 싸우셨고, 움직이지 않되 견디셨다.세상적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기도의 자리에서 삶을 붙들었다. 어쩌면 아버지를 둘러싼 환경도 혼돈과 공허, 흑암이었을 것이다.  그 누구도 해결해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그는 묵묵히 빛을 구했고, 그 빛 안에 거했다.

그 기도의 등불은 내 젊은 날의 어둠 속에 은은한 빛이 되어 다가왔다. 완전한 환한 빛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나를 향해 비추고 있었다.

“너, 지금 이 길이 옳지 않아.”

“너는 돌아서야 해.”

그 소리는 외부의 소리가 아니라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양심의 소리였다. 억지로 무시하려 해도, 외면하려 해도, 나는 알 수 있었다. 이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언젠가는 돌아서야 한다는 것. 그 진실을 붙잡고 살기에는 아직 세상에 미련이 많았고, 반항심도 많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도는 마치 내 마음 깊은 곳, 나만의 비밀 창고에 조용히 불을 밝혀 주는 등불 같았다.

아버지는 그런 존재인가 보다. 말이 아닌 기도로, 삶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위대한 존재이다.

예배와 말씀과 기도와 행함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 모습으로 보여주는 분이 빛이다.

그 빛만 꺼지지 않고 켜있다면 항상 혼돈과 공허와 흑암은 물러나게 된다.  그 사실은 자명한 이치이다.  인생은 언제나 두 세계 사이에서 흔들리며 살아간다.  혼돈, 공허, 흑암에 갇혀 있거나, 아니면 분명한 빛 가운데 살거나, 혹은 그 사이 어슴푸레한 회색지대에서 방황하거나. 그러나 분명한 것은, 누군가에게 빛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그 주변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빛은 어둠을 단번에 몰아내기 때문이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에게 빛을 비추어 주기를, 말없이 기도하며 손잡아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모든 사람은 어둠보다 빛을 원한다.  혼란보다 질서를, 공허보다 채워짐을 갈망한다.

그렇다면 누가 그 일을 감당할 것인가? 하나님은 오늘도 묻고 계신다.

“빛이 있으라. ”

그리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제는 내가 그 빛이 되고 싶다. 지금 보다 더....

젊은 날, 아버지를 통해 받았던 그 한 줄기 빛처럼, 누군가에게 방향이 되어주고, 누군가의 비밀 창고 안에 들어가 조용히 따스한 빛이 되어주는 사람, 그런 인생을 살고 싶다.

혼돈의 세상 속에…하나님의 빛이 오늘 이 하루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 더욱 밝게 비춰지기를 소망한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더라.”(창 1:3)

최원영 목사. 본푸른교회
최원영 목사. 본푸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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