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새로운 교회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30여 년 전, 한국 선교사의 헌신으로 세워진 이 현지교회는 지금은 30여 명의 성도만이 남아 조용히 예배를 이어가는 작은 공동체입니다.
오랜 시간, 여러 번의 목회자가 바뀐 탓에, 그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고, 물이 세는 천장처럼, 페인트가 벗겨져버린 외벽처럼, 오랜 역사와 깊은 상처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자리에 앉아 교회를 둘러보는데, 어느새 제 눈은 여기저기 고쳐야 할 부분들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이건 바꾸어야겠다, 저건 새로 교체 해야겠다’, 이런 생각과 함께, 자연스레 이런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성도님들이 왜 조금 더 헌신하지 않으실까?’
제 안에 속상한 마음이 스쳤고, 그 마음을 따라 작은 판단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건 내 경험이 만든 시선이구나.’
이전의 사역들을 통해, 저는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배움을 얻었습니다. 열정적인 동역자들, 기도와 눈물로 일군 사역들, 그리고 사랑으로 변화된 공동체 등, 그 모든 것들은 제게 참 귀하고 값진 자산입니다. 하지만 그 소중한 경험들이 때론 하나님의 시간보다, 하나님의 마음보다 먼저 앞서 가려고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이 교회를 보며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경험이 기도보다 앞서지 않도록, 안다는 마음이 하나님의 뜻보다 먼저 판단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는 생각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가로막지 않도록, 저는 다시금 기도의 자리에 머물기로 결단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보다 앞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속도가 아니라 ‘깊이’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이 작은 교회 속에서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일하고 계십니다.
저는 이제 한 걸음 물러나 그분을 기다리려 합니다. 경험이 아니라 은혜로,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내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타이밍으로 이 교회를 바라보려 합니다.
혹시 당신도 지금 ‘무엇인가 보이기 시작하는’ 자리에 계신가요? 그 보임이 때론 마음을 급하게 만들고, 속상하게 만들며, 판단하게 만들지는 않으시나요?
그렇다면 오늘, 잠시 한 걸음 물러서 보시길 바랍니다. 기도로 그 시선을 씻어내고, 말씀으로 그 마음을 정돈하며, 하나님이 이끄실 새로운 하루를 기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가장 깊은 사랑은, 가장 천천히 피어나는 법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