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목사]하나님은 침묵으로 말하신다

  • 입력 2025.08.07 15:44
  • 수정 2025.08.0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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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길속에 감춰진 믿음의 보석(눅8:22-025)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한다. “주님과 함께 있으면 내 인생은 순탄할 것이다.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혹자는 “주님과 함께 있으면 풍랑도 비켜가야 하지 않나?” 많은 신앙인이 한 번쯤 던져보는 질문이다. 하지만 성경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누가복음 8장 22~25절의 사건은 우리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한다. “주님과 함께 있어도 풍랑은 온다.”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탄 제자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제자들이 거센 풍랑을 만났다. 주님과 함께 있음에도 풍랑을 만나고, 위기를 겪는 모습은 오늘을 사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큰 메시지를 던져준다.


1. 주님과 함께 있어도 풍랑은 온다 (눅8:22-23)


22절을 말씀을 보면,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제자들은 순종하여 배를 탔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광풍이 몰아치고, 배에는 물이 가득 찼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

(1)예수님이 계신 그 배에도 풍랑은 닥쳤다.

(2)순종의 삶에도 불구하고 삶의 폭풍이 올 수 있음을 말해준다.

(3)신앙의 길은 면제의 길이 아니라, 동행의 길이다.

(4)고난이 없는 삶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주님과 함께하는 믿음의 삶이 진짜다.

33살에 신대원에 입학했다. 졸업 후 2000년 응답받고 구리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응답받았으면 교회가 계속성장하고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데 현실을 그렇 못했다. 늘 시험거리는 공동체에 공존했다. 늘 풍랑은 공동체의 삶의 한 과정이었다.

야~~~주님 뜻대로 살았는데, 최선을 다했는데, 왜 현장은 그리도 힘겨울까? 주님이 허락하신사명 따라 이 길을 들어섰는데 고속도로가 쭉 열리면 좋겠는데 현실은 늘 해결해야할 청구서처럼 쌓인 문제들의 연속이었다. 이것을 해결하면 저것이 터지고 바람 잘 날 없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었다. 사명의 길은 말 타고 화려하게 가는 것이 아니라 낙타타고 초라하게 가는 것이라는 것으로 위로를 받으며 스스로 나를 위로하며 사역을 해왔다.

고속도로와 같지 않은 비포장도로와 같은 사역의 길이지만 뒤돌아보니 그 길 속에서 삶의 믿음의 이야기들을 참 많이 주셨다. 그것이 기쁨이고 선물이라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다.

신앙의 길은 면제가 아니라 동행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았다. 신앙의 길은 고난의 길과 함께 걷는 것이다. 고난의 길에서 주님과 함께 걷다보면 그 기쁨과 은혜를 경험한다. 그것이 삶을 별처럼 빛나게 한다.

신앙의 길은 또한 침묵의 시간에서 영글어진다. 하나님이 일하실 땐 종종 조용하다. 침묵은 준비의 시간이며, 신뢰는 그 시간을 견디는 능력이다. “보이지 않아도 백그라운드에서 돌아가는 시스템처럼, 하나님의 섭리는 조용히 진행 중이다.” 건축가는 기초를 놓을 때 소문내지 않는다.

신앙의 길에서 느낀 점이 있다.  ‘정체된 삶’, ‘막힌 기도’, ‘고요한 현실’이라는 현대인의 실존적 답답함에 정확히 반응하신다. 침묵은 실패가 아니라 성숙의 복도라는 관점으로 보라. 인생의 기다림과 하나님의 섭리를 연결짓는 위로의 메시지에서 그 답이 있다.

너무 쉬운 길만 찾지 마라. 쉬운 길에는 인생에 깊은 의미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 땀을 흘리고 헤쳐나가는 그 믿음의 길에 보석이 있다.


2. 위기를 푸는 열쇠는 ‘주님을 찾는 것’이다 (눅8:24)


제자들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풍랑 앞에서, 예수님을 깨웠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이 외침은 절박함의 표현이지만, 동시에 주님께 향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에게도 인생의 풍랑이 닥칠 때, 진짜 해야 할 일은 주님을 찾는 것이다.

기도가 바로 그 행위이다. 주님을 깨우는 자리에는 항상 기도가 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의 부르짖음(왕하 19장; 사 37장)

 

히스기야 왕은 앗시리아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조롱하며 항복을 요구할 때, 성전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다. 그는 편지를 들고 여호와 앞에 펴놓고 통곡하며 기도했다. “여호와여, 주는 홀로 모든 나라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절체절명의 순간에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응답하시고, 하룻밤 사이 18만 5천의 앗시리아 군대를 치심으로 완전한 승리를 주셨다.

치약 브랜드 ‘콜게이트’의 창립자 윌리엄 콜게이트(William Colgate)는 사업의 위기 속에서 “이 기업은 하나님의 것”이라 고백하며 무릎 꿇고 기도했다.

 

윌리엄 콜게이트는 어릴 때부터 십일조와 기도를 철저히 실천한 신앙인이었다.

 

1806년 뉴욕 맨하튼에 ‘William Colgate & Company’ 설립했고, 비누, 양초, 전분, 바디워시, 반려동물 식품 등을 개발 판매했다. 1873년 세계 최초로 치약을 병에 담아 판매했는데. 이것이 최초의 ‘콜게이트 치약’이다. 1896년 세계 최초로 튜브형 치약 출시했다.

 

비누 사업 초기에 큰 빚과 위기 속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며 “이 기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라고 고백했다. 이후 사업이 번창하자 그는 십일조를 넘어 수입의 20%, 30%, 마지막엔 90%까지 하나님께 드렸다.

 

2025년 Colgate-Palmolive "팜(palm) + 어리브(olive)는 현재 기준 매출 24조 정도이다.

그의 기업은 지금도 전 세계 200여 개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위기의 열쇠는 ‘문제 자체’가 아니라, ‘믿음으로 주님을 찾는 것’에 있다. "주님을 부를 때, 위기의 바람도, 기업의 파도도, 하나님의 권능으로 잠잠케 될 줄 믿는다."


3. 예수님은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셨다 (눅8:24, 하)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셨고, 곧바로 잔잔해졌다. 자연의 주권자이신 예수님, 창조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현실을 다스리신 것이다. 예수님은 단지 위로자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다. 그분의 말씀 한 마디에, 우리 삶의 풍랑도 가라앉을 수 있다.


4. 예수님의 질문: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눅8:25)


풍랑은 잠잠해졌지만, 예수님의 질문은 묵직하게 울려 퍼진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1)예수님은 단지 제자들이 무서워한 것 자체를 책망하신 것이 아니다. 믿음보다 두려움이 앞선 반응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있었음에도, 제자들은 상황에 사로잡혔고, 주님의 능력을 잊었다.

(2)제자들이 잊은 것이 있다. 배에는 주님도 함께 탔다. 예수님과 공동운명체인 것을 몰랐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이다. 가지의 운명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생존하고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과 우리는 생명으로 연결된 공동운명체이다.

(3)제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했다. 이유는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생명보다 사명에 집중하면 무너지지 않는다. 사명은 두려움도 더 이상 나를 굴복하지 못하게 한다.

 

사역은 사람과의 만남이다. 사람과의 만남을 어떻게 규정지을 것인가?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이다. 나름대로 기준점을 지키려고 무던히 노력한다. 사람을 이용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사람을 볼 때 나의 사역에 도움이 되고, 이익이 되고, 이용할 가치로 평가하지 않는다.

내가 도울 사람, 나의 작은 힘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작은 것을 나누겠다는 마음으로 한다.

먼저 나에게 이것을 해주면 나는 당신에게 이런 도움을 주겠다. 조건부로 계약하지 않는다.이것은 세상의 논리이다. 하나님의 논리는 다르다. 이것을 깨달아야 복음의 문이 열린다.


성경 지침_거꾸로 살라


●마태복음 16장 24~25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이를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개역개정)

핵심 요지: 자기 생명을 주를 위해 먼저 내어놓는 자가 참 생명을 얻는다.

요한복음 12장 24~25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핵심 요지: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죽는 자(자기를 버리는 자)가 열매 맺고 영생을 얻는다.

사도행전 20장 35절,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하니라.”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별 인사를 하며 한 말씀이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통해 노동하며 돕는 삶, 주는 삶의 모범을 보였다고 말하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인용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복이 되는가?

그리스도인들의 관계 방식은 거꾸로 사는 사람들이다. 세상은 교환의 논리로 움직인다. "내가 이만큼 줬으니, 너도 그만큼 돌려줘." 관계도, 사랑도, 선행도 조건과 대가를 따진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은 거꾸로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예수님은 값없이, 거저 주셨다. 은혜는 거래가 아닌 선물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관계 방식은 "거져주는 방식"이다. 사랑도, 용서도, 섬김도, 물질도, 조건 없이 먼저 주는 것, 계산 없이 기꺼이 내어주는 것,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다. 우리는 세상과 반대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이다. 거꾸로 사는 자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복음이 드러난다.

누가복음 8장 25절 이하는 단지 “기적”을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말씀은 고난 속에서 우리가 어디를 바라보아야 하는지,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 그리고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믿음은 고난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붙드는 능력이다. 우리의 삶에도 풍랑은 온다.

주님과 함께 있어도, 순종하고 있어도, 광풍은 불어온다. 그러나 그 속에 감춰진 보석이 있다. 고난의 깊이만큼, 주님과의 동행도 깊어진다. 그리고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물으신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그 질문에 담대하게 답하는 이들, 기도로 주님을 깨우고, 고난 중에도 믿음의 길을 걷는 이들, 그들의 삶은 결국 별처럼 빛날 것이다.

최원영 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TBMC 대표,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박사 등
최원영 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TBMC 대표,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박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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