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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인 목사, 평화교회담임, 성결대, 중앙대석사, 서울신대박사, 미국 United Thological Seminary 선교학 박사, 공군군목, 성결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교수 |
노인이 전체 인구의 7%를 차지하면 고령화사회라고 한다. 그리고 노인이 전체인구의 14%를 넘으면 고령사회라 한다. 한국은 지금 고령사회를 바로 눈앞에 두고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도 고령화사회를 지나 고령사회를 걱정하고 대비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이미 농어촌교회는 고령사회가 된지 오래전 일이고, 도시교회는 그래도 젊은이들의 유입으로 인해 어느 정도 고령사회의 직전에 있다. 그래서 고령시대는 한국교회의 코앞에 놓인 과제이다. 한동안 유럽교회들이 노인들만 모여 있고 젊은이들은 떠났다고 하면서 희망이 없다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우리들 교회의 모습이 그렇게 닮아가고 있어 씁쓸하기 짝이 없다.
한국교회는 어떤 점에서 고령화되고 있는가? 당연히 교회당 건물이 낡았다고 고령화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회중이 노년층만 모인다고 고령화인가? 그것도 바른 지적이 아니다. 많은 어른들이 모이는 교회이지만 여전히 활발하게 사역을 감당하는 교회는 고령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라 해도 현실에 안주하며 외부로 향한 사역은 전혀 하지 못하는 교회, 교사가 없다고 주일학교도 없고 성경학교도 열지 못하는 교회, 성도가 모이지 않는다고 일 년에 한 번도 부흥회를 열지 못하는 교회, 언제 뜨거운 기도를 드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교회라면 틀림없이 고령화된 교회이다.
고령화된 교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설교가 굳어진다. 어떤 설교를 해도 반응이 없거나 무조건 아멘하며 반응하는 교회의 설교자는 나이나 경륜과는 상관없이 설교가 노화된다. 설교의 폭이나 주제의 뚜렷한 변화를 볼 수 없다. 교회는 목사의 설교와 함께 성숙해지고 발전한다. 또한 교회의 성숙함은 설교자의 인격과 영성도 깊어지게 한다. 설교는 설교자의 성경관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있느냐에 따라 설교의 내용이 달라진다. 설교는 반드시 본문의 의미를 바르게 파악해야 하고 그 파악된 본문의 내용과 의미에 따라 적용해야 한다. 적용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주석적으로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다. 그러나 주석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고 쉽게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문제이다. 아예 이런 문제에 관심도 없어 보인다. 고령화된 교회는 설교가 굳어져 버려서 이런 수고를 하려들지 않는다.
예배가 굳어진다. 많은 교회들이 새로운 예배를 기획하고 시도해 보지만, 고령화된 교회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주보에 토씨하나 틀렸다고 행정실로 찾아와서 지적하는 성도들이 있다. 자기 이름이 헌금자 명단에서 한참 뒤에 있다고 흥분하는 성도들이 있다. 젊은 찬양사역자들이 새로운 찬양이라도 부르려면 무조건 어렵다고 항의하는 성도들이 있다. 개인기도 때나 할법한 기도를 예배 중 기도를 맡아 한없이 늘어지는 기도를 하는 대표기도자들이 있다. 이런 교회는 이미 고령화된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주일예배만큼은 경건하게 드려야 하기에 표현을 절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땅히 주일예배 경건히 드려야 한다. 그러나 주일예배의 경건은 조용히 예배하는 것인가? 진정한 경건은 진리의 말씀 안에 있는 것이다.
감정이 굳어진다. 진정한 기쁨이나 환호가 교회안에서 들리지 않는다. 침묵하거나 고성을 지르거나 분노의 소리만 높아지는 교회는 고령화된 교회이다. 법궤가 되돌아올 때 다윗은 기뻐 춤추며 하나님을 찬양했다(삼하 6:14). 이때 미갈은 다윗의 깊은 신앙과 뜨거운 감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히 왕의 체면을 구기고 품위를 잃었다고 다윗을 비난했다(삼하 6:20). 오늘날도 고령화된 교회는 미갈처럼 다윗과 같은 기쁨과 감격의 예배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하면서 바꾸라고 한다. 이러다보니 교회 안에서 감정이 마르고, 열정이 식으며, 마음들이 굳어지는 것이다.
새로 부임한 목사가 교회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예배의 변화를 시도해 보지만 금방 당회나 제직들이 “전례에 없다ㆍ경박하다ㆍ너무 변화가 빨라 따라갈 수 없다”고 지적하고, 문제를 제기한다면 누가 교회를 새롭게 해보려 할까? 결국 기존 성도들의 세에 눌려서 새로운 사역은 시도해 보려고 노력조차 못하고 포기하게 된다면 바로 고령화된 교회라고 본다. 지금도 시골이나 도시 한복판의 교회들 가운데는 경직된 교회들이 많이 있다.
수십 년 전통을 자랑하면서 회중 의자나 강단 위치조차 마음 놓고 바꿀 수 없는 철저히 고령화되어버린 교회들이 바로 그렇다. 인구의 고령화 못지않게 걱정하는 것은 생각이나 의식들, 구성원들의 생각이 고령화되는 것이다. 주님 보시기에 젊고 바른 교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