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행적이 나옵니다. 고난 주간 월요일 아침 일찍 성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시장하셨습니다. 길가에 있던 무화과 나무에서 열매를 구하지 못하고 잎사귀만 무성한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무화과 나무를 향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19절) 말씀하자마자 무화과나무가 즉시 말랐습니다.
무화과 나무 저주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고자 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모든 행동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 자체는 농담으로 한 것도 없고 보여주기식 쇼를 한 것도 없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안에서 진행되었다. 무화과 사건을 통해서 가르쳐주고자 하는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인가? 마가복음을 보면, 계절로 보면 아직 “무화과나무 열매를 맺을 때”가 아니라고 했다. 예수님은 열매를 기대할 수 없는 시기에 무화과 나무를 보고 열매를 찾았고, 열매를 얻지 못하고 저주한 것이다. 자연의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셨다. 왜 그랬을까?
제자들에게 기도의 능력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이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찌하여 무화과나무가 즉시 말랐습니까?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
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21.22절).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단어가 있다면 믿음의 언어이다. 믿음의 언어는 산을 들어 바다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과장된 언어이다. 그러나 주님은 믿음의 조건에서 언어가 찾이 하는 영역이 매우 클 뿐 아니라 전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믿음의 언어를 사용하면 놀라운 일을 경험한다.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강력하게 제자들에게 권면하고 있다.
믿음과 기도는 신앙생활에서 늘 붙어 다니는 한 몸이다. 믿음으로 기도할 때, 주님은 일하신다. 그러나 불신앙의 언어는 현실을 개척할만한 에너지를 얻지 못한다. 불신앙의 믿음으로 인생을 창조적으로 열어간 분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불신앙은 자신과 가족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언어이다. 예수님은 고난주간 아침 첫 시간에 언어와 기도에 관해서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생활을 승리하는 비결이기 때문에 친히 가르쳐주고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구하라고 가르친 메시지가 참으로 많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3,24).
믿고 구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기본 중에 기본이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인들에게 주신 하늘의 축복의 문이다. 구하지 않고는 주시지 않는다. 믿고 구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우리들의 몫이다. 시편기자는 말했다.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얼마나 활기차고 생동감 있는 표현인가?
나의 왕이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 분이 곧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며 곧 본체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만왕의 왕되신 주님께 구하는 것은 당연한 자녀들의 권리이다.
사순절을 통해 늘 알던 말씀을 함께 나누고 있다. 어쩌면 믿고 기도하라는 것은 평생 듣는 설교의 말씀이다. 믿음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 그 자체는 주님과 함께 하기에 그 시간은 기쁨으로 충만하게 채워지는 시간이다.
믿고 기도하는 것은 불필요한 시간의 낭비가 아니라 거룩한 시간 낭비인 것이다. 그러기에 행복하다. 거룩한 시간 낭비를 즐기는 제자들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삶의 질서가 세워지고, 삶의 고난을 뚫고 나갈 영적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우리의 언어에 큰 기쁨이 넘친다. 한 샘에서 쓴물과 단물이 동시에 나오지 않는 것처럼, 기도의 시간이 깊어지면, 하나님이 주신 창조적인 입으로 저주와 찬송을 내지 않는다. 오직 찬송과 축복의 언어를 쏟아 낸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원수를 오히려 저주하지 않고 축복한다. 오히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그러나 믿음안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나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들을 향해서 직접 내가 재판관이 되어 배로 값아 주어야 속이 시원한데, 믿음의 기도가 깊어지면 모든 원한들이 눈 녹듯이 녹아지게 된다. 내 안에 상처에 새살이 스스로 돋아난다. 저주의 죄악에 갇혀있지 않고,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나오게 된다. 그것이 축복이다.
코로나 이후를 걱정하는 분들이 더 많다. 걱정과 염려와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스스로 묻고 묻는 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고민이 깊어지면 염려의 늪에 빠지게 된다. 염려란 두 마음을 품는 것이다. 두 마음으로 고난의 계절을 이길 수 없다. 우리가 해야할 가장 소중한 선택은 지킬 것이 그래도 있을 때, 믿음의 기도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셨다. 구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구하지 않으면 깊은 갈등과 염려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구하라 그리하면 구할 것이고,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고,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17세기 영국에서는 찰스2세가 왕이 되면서 국교회를 제외한 모든 종교 활동이 금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낮에는 냄비를 수선하고 밤에는 설교를 하며 복음을 전하다가 결국 1660년에 허가 없이 설교를 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12년 동안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 앞을 보지 못하는 그의 아내는 거지처럼 구걸을 하다고 죽게 되었고, 그의 세 자녀는 스스로 생존할 수밖에 없는 고아가 되었습니다.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습니까? 만약 제가 해야 할 일을 알 수 있다면, 결코 절망하지 않겠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마음속에 감동을 주셨습니다. "너는 글을 써라, 내가 너에게 글을 쓰는 달란트를 주었노라." 엎드려서 간절히 기도하던 그에게 환상이 보였고, 그 환상을 책으로 기록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존 번연이고, 그 책은 역사상 성경다음으로 많이 인쇄된 "천로역정" 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나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때에,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다”(페북, 오휘분).
지금은 믿음으로 기도할 시간입니다. 기도의 시간을 드리십시오. 그러면 고통의 시간 뒤에 찾아오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