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잔치비유

주님은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셨다. 주님의 비유를 묵상하다보면 비유의 구성이 짜임새가 있고, 아름답다. 문학적으로 손색이 없는 뛰어난 구성을 하고 있다. 주님은 비유의 대가이시다.

(1)오늘 말씀은 혼인잔치비유이다. 혼인잔치라는 것은 신랑이 있고, 주체하는 신랑집 주인이 있다. 그런데 혼인잔치인데 천국의 혼인잔치라고 한다. 자기 아들을 위해서 한 임금이 천국의 혼인잔치를 베풀고 있다. 한 임금은 하나님을 상징한다. 자기 아들은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2)임금은 종들을 보내서 청한 사람들을 혼인잔치에 오라고 했지만, 모두 다 오기를 싫어했다. 임금의 초대을 모두 거절했다(3).이 초대는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요, 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이 초대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이다. 임금이 거룩한 잔치에 초대를 했지만, 그들은 모두 거절 했다.

(3)4절을 보면, 임금의 간절함과 사랑과 인애가 나타난다. 다시 임금은 다른 종을 보내서 청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했고, 살진 짐승과 소를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오라고 하였다.

혼인 잔치집에는 먹을 것이 풍성하니, 와서 같이 기쁨의 교제를 나누자고 초청을 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을 것이 많다.하나님의 나라는 풍성하다.하나님의 나라는 풍성하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과 육이 복을 받고 건강해진다.

하나님이 우리를 주의 나라로 초대한 것은 우리에게 가난과 질병과 아픔과 상처와 절망감과 비참함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우리를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엄청난 뜻이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하나님이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다. 양의 문으로 들어가며 나가면서 주님이 주시는 꼴을 먹게 된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목적은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죄악의 현장에서 부르셨는가? 하나님이 왜 실패와 절망의 현장속에서 나를 부르셨는가? 하나님이 왜 고민과 상처와 아픔의 쓰라림의 현장속에서 나를 부르셨는가? 하나님이 왜 가난과 질병의 늪의 현장에서 나를 부르셨는가?

이유가 있다.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욱 풍성히 얻게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

(4)청함을 받았지만 임금의 초대을 거절했다.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5절).

14장에 같은 비유가 나온다. 그들의 거절 이유를 보면, 밭을 샀기 때문에 갈 수 없다. 소를 샀기 때문에, 장가를 들었기 때문에 초청을 거절했다.

주님의 초청을 거절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세상적인 근심과 걱정들, 세상적인 사업들 때문에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된다. 작은 경제적인 이득만 있으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으로 가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가? 작은 이익앞에서 이 교회로 저 교회로 몰려 다니는 이 땅의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가? 부를 사랑하고, 세상의 쾌락과 명예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한가? 강하면 강할 수 록 하나님과 멀어진다.

인간이 물질적인 만족이나 쾌락을 절제하지 않고 추구하면, 그것이 나를 지배하게된다. 결국에는 세상의 가치가 영혼과 마음을 파멸로 이끌게 된다.

신앙의 원칙이 필요하다. 결단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된다. 천국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우리의 신앙이 반듯할 때, 나에게 허락한 하나님의 시간들을 통해서 주님이 영광이 들어나게 된다.

(5)임금으로부터 청함을 받은 자들이 거절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임금의 종들을 능욕하고 죽였다. 임금이 분노하여 살인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살랐다(6,7).

(6)임금이 종들에게 말하기를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8). 길거리에 가서 만나는 대로 사람을 데리고 오라고 명령했다. 초대범위가 넓어졌다. 적극적인 초대를 하고 있다.

종들이 악한자나 선한자나 관계하지 않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오니, 잔치집에 사람들이 가득찼다. 종들은 자기의 임무를 위해서 열심히 밖에 나가 최선을 다했다.그 결과 사람들이 가득찼다.

교회는 천국이다. 교회는 사람들로 가득차야 한다. 이것이 임금의 마음이다.그 일을 위해서 우리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주인이 종에게 말하기를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내 집을 채워라”(14:23). 이것이 종의 역할이요 사명이다. 사람들을 만나는 대로 주의 전으로 초대해야 한다.잔치집은 풍성하고 넉넉해야 한다.

(7)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왔는데,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다(11). 당시에 손님으로 초대를 받으면 예복을 입고 가야한다. 그런데 한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집에 갔다.

예복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혼인 예복은 의 의 옷이며, 거룩한 옷이다. 마태복음의 저자는 의의 예복을 입을 것을 설교하고 있다. 천국의 혼인잔치에 들어온 사람들은 의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마태의 관점이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사랑의 종교에 사랑이 빠지면 그것이 위선이다. 사랑의 기반위에 모든 것이 행해지면 예복을 입는 것이다.

(8)임금이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에 들어왔느냐”(12)라고 친구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말도하지 못했다. 우리가 의의 의복을 입지 않으면, 다시 말해서 하나님 말씀에 행함이 없다면 하나님 앞에 설때에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집에 온 친구처럼 아무 말도 못하게 된다.

(9)잔치집 주인이 그 친구를 내 쫒았다(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주여 주여 라고 외치는데, 만약 의의 예복을 입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두운 곳으로 결박하여 내던지움을 받을 것이다. 그때 울어도 소용이 없다. 그때 회개해도 소용이 없다. 때는 지나간 것이다.

(10)14절은 비유의 결론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오늘날 청함을 받은자는 많지만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는 이 교훈에 우리 모두 충격과 도전을 받는다. 우리 모두 의의 예복을 준비해야 한다. 말씀대로 살아내야 한다. 우리 모두 택함을 받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한다.

최원영,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대신학박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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