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보다 앞선 가치는 절대적으로 없다

오늘 본문은 교회를 다니는 분들은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말씀이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질문을 하였다. 율법사란 성경을 연구하며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요 성경박사이다. 율법선생이 예수님께 질문하기를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은 무엇인가? 다른 말로하면 성경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같은 것이다.

가치는 자신이 믿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평범한 삶과 탁월한 삶의 경계선은 가치로 결정된다. 가치는 내면의 세계이다. 내면의 세계가 삶의 질을 좌우한다. 가치는 인생에서 가장 성공했을 때,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중에 있을 때 빛을 발휘한다. 그때 하는 행동이 그 사람의 내면의 세계이며 가치이다.

가치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삶의 주어를 누구로 세울 것인가?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정리했다.

사진, 페북

(1)하나님 사랑

내 인생의 첫 번째 자리에 누구를 놓을 것인가?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36,37).

항아리에 큰 돌, 자갈, 모래, 물을 어떤 순서로 넣어야 모두 다 넣을 수 있을까? 분명한 사실 한 가지를 알 수 있다. 큰 돌을 먼저 넣지 않고는 다시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 내 인생의 큰 돌은 누구인가? 이것은 우선순위의 문제이며, 가치관의 문제이다.

우리가 분명히 고백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할 절대적인 것이 있다. “하나님보다 앞선 절대적인 가치는 없다.” “개인의 가치는 공동체의 가치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자리에 하나님을 반드시 놓아라. 내 인생의 첫 번째 큰 돌은 하나님이다. 그래야 인생이 무너지지 않는다.

내 삶의 주어는 물질, 학위, 건강, 가족, 사업장이 아니다. 우리는 날마다 고백해야 한다. 나의 큰돌은 오직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나의 삶의 중심에 놓으라. 첫 번째 자리에 놓으라, 주님을 왕으로 모셔라.

예수님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라고 하시는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셨다.

사촌누님이 40대 초반에 권사가 되었다. 120년 된 전통적인 교회이다.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이다. 가정이 가난했고, 어린나이에 결혼도 했다. 결혼 후 생선좌판가게로 생계유지를 유지하며 교회에 충성했다. 그녀는 교회에서 성경을 배웠고, 교회가 자기 몸이었고, 예수님이 자신의 전부였다. 주일학교 교사부터 시작해서 여전도회 회장까지 기쁨으로 감당했다.

이제 경제적인 여유와 삶의 자리가 안정될 나이가 된 40대 후반에 유방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성경을 필사하며 주어진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이 다가오자 자녀들 축복하며 이 땅을 떠났다.

운명의 시간에 그녀는 아름다운 말을 남기고 떠났다. “하늘문이 열리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네요. 천국에서 만나요.” 이것이 그녀가 이땅에 남긴 마지막 말이다.

그녀는 이 땅을 떠나면서 가족들에게, 교회 공동체에게 천국이 있음을 알리고 떠났다. 이 땅이 전부가 아님을 알려주었다. 그녀의 마지막 고백이 많은 성도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고, 남은 자들을 영적으로 강하게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능력이며, 지혜이며, 명철이며, 지식이다. 하늘의 지혜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신다.

고넬료는 이방인 최초로 성령세례를 받았다.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고넬료가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이다. 경외란 독실하다는 것, 신실하다는 것이다. 또한 기도와 구제를 많이 했다. 그 결과 고넬료는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이 된 사람이었다.

(2)이웃사랑

주님께서 율법사에게 말씀하시기를 둘째도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39).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리더이다. 지도자가 되고 싶은가? 먼저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며 섬기라. 봉사와 섬김의 기본 자세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리더의 자질은 사랑이다.

본푸른교회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를 주신 것은 늘 감사의 제목이 되고 있다. 내 인생 36살에 처음 가본 지하교회였다. 보면대와 일인용 나무의자와 낡은 피아노가 전부였다. 내가 상상했던 교회의 모습은 아니였다. 목회자는 떠난지 오래되었고, 젊은이들이 교회를 지키고 있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교회를 운영하면서 카드빚을 지고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그 시절은 혹독한 IMF 계절이었다. 아내에게 마이너스 통장에 있는 돈을 인출해서 가져오라고 했다. 청년들의 빚과 교회 임대료 밀린 것과 전화비용과 전기료 밀린 것을 갚아주었다. 당시 청년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돈이 있어 갚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 목회자와 교회로 인해서 어려움을 당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릴까봐 드리는 것입니다. 나에게 갚을 필요 없습니다. 예수 잘 믿으세요.” 이것이 조건이었다. 지금도 적은 돈이 아니다. 내 수중에는 아직도 그만한 돈이 없다. 하나님앞에 감사하는 것은 돈 액수가 보이지 않고 힘들어하는 불쌍한 영혼이 보였고, 긍휼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내에게 우리가 교회를 하지 않아도 된다. 청년들 카드빚과 교회 임대료 밀린 것은 갚아주자고 했는데, 아내는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고 남편 말에 따라주어 오늘날 그 믿음의 추억을 간직하게 해주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축복이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섬기는 것이 목회이다. 목회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목회는 건물이 아니다. 이런 의미를 알게 해주셨다. 늘 주님께 감사한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해럴드대표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해럴드대표

율법과 복음의 차이점이 있다. 우리는 두 안경을 쓰고 신앙생활을 한다. 율법의 안경과 복음의 안경이다.

율법이란 무엇인가? 말씀에 사랑이 빠지면, 권면에 사랑이 빠지면, 용서에 사랑이 빠지고 조건이 붙으면 율법이 된다. 율법의 결과는 항상 정죄, 비판, 사람을 죽인다. 율법은 죽음의 역사가 이어져간다. 희망이 없다.

그러면 복음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말씀에 사랑이 있으면, 권면과 용서에 사랑이 있으면 복음이 된다. 복음의 결과는 사람을 살린다. 희망과 열정과 화해와 용서가 살아난다. 모든 것을 수용한다. 생명의 역사가 이어져간다.

복음의 관점으로 사람을 바라보라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예수님의 관점을 살펴보면 사람을 살리는데 두었다. 복음의 시각으로 보라. 십자가의 관점으로 보라. 복음과 십자가의 렌즈로 보면 모두 불쌍한 사람이며, 용서해야 할 사람이며, 사랑할 수박에 없는 존재들로 보인다.

유대인들이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시험을 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현행범은 율법에 돌로 쳐 죽이라고 했다. 돌을 들고 죽이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예수님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예수님은 사망의 골짜기에서 여자를 살렸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복음이다.

이 땅에 살면서 믿음의 사람들은 율법과 비판의 안경을 버리고 생명을 살리는 소망의 안경, 복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이 주님의 관점이며, 성경의 관점, 복음의 관점이다.

나의 첫 번째 이웃은 누구인가?

가족사랑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첫 번째 비전은 가족이다. 가족은 나의 첫 번째 선교지이다. 가족을 사랑하는 길은 믿음의 대를 이어가는 것이다. 힘을 다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믿음의 대를 이어가야 한다.

가족을 사랑하는 길은 오직 용서하며 사는 것이다. 그런데 가족간에 십자가의 기능이 잘 작동되지 못한다. 가족간의 작은 상처들이 문제가 되어, 내면서 곪고 골아 문드러져간다. 상처와 분노를 해소시켜주는 기능이 아주 약한 것이 우리 사회의 특징이다. 작은 말에 큰 상처을 받는다.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에는 참으로 약하다. 이것이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십자가의 복음이 잘 작동되지 않는다.

성경은 말세의 징조를 말하기를 사랑이 식고, 시험에 빠지는 일이 많다고 했다. 나 상처받았어, 나 시험 들었어, 이런 언어들을 쉽게 듣는다.  가족간에 점점 사랑이 식어가고 깨지는 가정이 많아지고 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가족은 우리가 사랑으로 세워야할 첫번째 선교지이다.

교회를 사랑하는 일은 귀한 것이다. 교회를 사랑하는 길은 큰 소명(Calling)에 집중하는 것이다. 큰 소명이란 무엇인가? 우리를 제자로 사역자로 부르신 이유는 선교와 전도. 영혼사랑을 위해서이다.

왜 예수님은 베드로를 불렀는가? 사람을 취하리라(사로잡으라)이다. 교회를 사랑하는 길은 오직 전도와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다. 교회를 사랑하는 방법이 얼마나 많은가? 식당, 성가대, 교사, 청소, 운전, 주보, 방송실 등 다양한 모습으로 봉사한다. 그러나 이것위에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웃 사랑은 가족, 교회, 일터, 나라와 민족, 열방으로 사랑의 점점 넓어지고 깊어지고 퍼져가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이웃 사랑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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