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택  한국교회독서문회연구회 대표, 바울의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목사.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자녀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하기를, 그가 “소싯적에 새해를 맞을 때마다 꼭 일 년 동안 공부할 과정을 미리 계획해 보았다”고 했다. 예를 들면, 무슨 책을 읽고 어떤 글을 뽑아 적어야겠다는 식으로 작정을 해놓고 꼭 그렇게 실천하곤 했다. 다산은 독서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실천했다. 그는 자녀에게 중요한 글은 발췌하여 따로 기록해두라고 가르치기도 했다.

우리의 선조들은 평생학습자로서 책을 가까이했다. 그들은 독서를 인간 정신이 수행해야 할 가장 소중한 노력이라고 여겼고, 독서와 공부는 일상생활 속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죽을 때까지 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이것은 인문학적 교양을 쌓기 위한 노력이었다.

아날로그 문화에서 디지털 문화로 바뀌면서 청소년들은 인쇄매체보다는 영상매체의 영향 아래 있다. 종이책을 통해 인문학적 교양을 쌓아가는 일은 이제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변화된 환경만을 탓하며 손을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사람됨을 갖추어가는 데 인문학의 역할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퇴계 이황은 맏아들 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교훈하였다. “준에게, 독서에 어찌 장소를 택해서 하랴. 향리에 있거나 서울에 있거나, 오직 뜻을 세움이 어떠한가에 있을 따름이다. 마땅히 십분 스스로 채찍질하고 힘써야 할 것이며, 날을 다투어 부지런히 공부하고 한가하게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될 것이다.”(1540년 8월)

또한 조선 정조와 순조시대의 학자인 최옥은 부모의 역할에 관하여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여덟 살부터 열다섯 살 사이에 인생이 결정된다. 아이를 학교에 보냈으면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부모의 몫이다. 

선비와 학생은 역할 바꾸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공부를 시작했으면 농사일을 하지 않게 해야 학생과 농부가 구분이 된다. 지금 아들이 학교에 입학을 하여도 그로 하여금 말과 소를 먹여 기르게 하고, 때로는 들로 보내 물을 대게 하여 그 뜻을 독서에 전념케 하지 못하게 한다. 이런 경우 어찌 훌륭한 인재로의 성장을 바라겠는가.”

그럼, 우리의 선조들이 자녀를 양육할 때 책읽기를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옛 사람들은 성공을 위한 독서를 그리 높이 쳐주지 않았다. 이들이 독서의 진정한 목표로 삼은 것은 정약용이 말한 ‘성인(聖人)이 되는 길’이었다. 세속적인 성공의 길은 독서의 한 부분에 불과했다. 이들은 독서를 하지 않으면 사람이 짐승처럼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늘날 강조하는 인문학적 교양은 청소년기부터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배움이다. 이 배움은 정보와 지식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인문학을 가까이할 때 그는 삶을 폭넓게 그리고 깊이 있게 이해하는 통찰력을 갖게 된다.

세상에 영향을 끼친 사람들에게는 시련을 겪었다는 것 말고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모두 하나같이 책을 즐겨 읽은 사람들이란 것이다. 그들은 책 속에 파묻혀 다른 세상을 발견해 냈다. 생존조차 힘겨웠던 시대도 있었으나 그들은 책을 읽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이 읽은 양서들은 문학, 역사, 철학, 그리고 예술을 포함하는 인문학 분야의 명저들이었다. 예를 들면 책벌레 링컨은 『천로역정』을 읽으며 처음으로 철저하게 자기반성을 했다. 그는 『이솝우화』,『로빈슨 크루소』, 『워싱턴의 생애』그리고 『프랭클린 전기』와 독립전쟁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읽었다.

미국의 제 66대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목사인 아버지를 닮아 강인한 성격과 신앙심으로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많이 했다. 다섯 살이 되던 해부터 글을 읽으며, 한시도 책을 놓지 않았다. 

당시 데이비스 초등학교의 교사였던 줄리 에마는 그녀가 아주 빠른 속독을 하였다고 전했다. 이미 초등학교 나이에 문학작품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열 살이 되던 해 학교의 한가한 시간에도 각 학년의 필독서로 선정된 도서목록에 따라 문학 작품을 모두 읽었다. 그녀의 부모는 독서클럽이라면 어디든 가입시키는 열정을 지녔었다. 그녀는 ‘최연소, 첫 여성, 첫 흑인’이라는 진기록을 세우며 스탠퍼드 대학 부총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이러한 리더십 배후에는 전문적 학식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교양이 있었다.

시대는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점점 증가하는 세계의 복잡성은 상황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미래학자 다니엘 번즈는 “미래는 끊임없이 재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향상될 수 있지만 그것은 투자를 필요로 한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속도에 따라가기 위해서는 평생 배우고 익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청소년기에 그 습관을 만드느냐 못 만드느냐에 따라 삶의 질과 방향이 결정된다.

무엇보다도 인문학적 독서는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정신적 자립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싱크빅』(Think Big)의 저자 벤 카슨은, “책은 지성을 훈련시키고, 분별력을 키우며, 상상력을 펴서 창조적인 사람이 되게 한다”라고 했다.

청소년은 다음 세대의 지도자가 될 사람들이다. 지도자와 멘토로서의 역할을 하려면 인류의 문화적 유산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 세대에도 여전히 소중한 정신적 가치들은 바로 도서관 책장에 가득한 책 속에 있다. 어떤 작가는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도서관을 절반 이상을 뒤진다고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진지한 노력이다. 인문학적 교양의 보고인 도서관을 탐색해 보라. 도서관은 반드시 기대 이상의 보답을 해 줄 것이다.

인문학 중심의 독서는 우리에게 세 가지 유익을 준다.

첫째, 인문학 중심의 독서는 나를 설명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나는 누구인가? 철학과 교육학 그리고 심리학은 인간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쉽지 않다. 그러나 다양한 양서를 통해 청소년은 각자의 내적 성향과 기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둘째, 인문학 중심의 독서는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살다보면 막다른 골목 같은 어려움에 처하기도 한다. 불의의 어려움을 당하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을 맛보기도 한다. 그러한 때에 그 상황 앞에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 누가 그러한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평소에 좋은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정신적 저력을 가지되 될 뿐만 아니라 그 상황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셋째, 인문학 중심의 독서는 설득의 힘을 길러준다. 또한 좋은 책을 많이 읽으면 소통의 능력이 향상된다. 뿐만 아니라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청중을 설득할 수도 있다. 모든 지도자에게는 설득의 힘이 있어야 한다. 청소년기는 양서를 통해 이러한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시기이다.

청소년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이여, 이제 책장을 살펴보라. 그들의 삶을 바꿀만한 인문학 양서가 눈에 띄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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