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과거를 돌아보고 기독교 철학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하다
그리스도인은 철학을 친구로 보아야 하는가 적으로 보아야 하는가? 기독교철학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위해 철학은 왜 중요한가? 그리스도인이 삶에 철학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리스도인을 위한 서양 철학 이야기』은 이 모든 질문에 명쾌하고 성실하게 답하는 최고의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근래 들어 기독교 철학은 특히 미국에서 놀라운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저자는 먼저 이 이야기를 하고, 현대 가톨릭 철학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어서 기독교 철학 중흥에 크게 기여한 개혁주의 기독교 철학자 앨빈 플랜탱가(Alvin Plantinga)와 니콜라스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의 작업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20세기에는 보통 ‘개혁주의 철학’(Reformational philosophy)이라고 불리는 ‘개혁주의 기독교 철학’(Reformed Christian philosophy)이 네덜란드의 철학자 헤르만 도이어베르트(Herman Dooyeweerd)의 작업에 기초하여 발전했다. 두 저자는 이 전통에 가장 가깝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 철학의 윤곽을 살펴보았다. 이 책 『그리스도인을 위한 서양 철학 이야기』의 중요성과 특징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명확하다. 독자는 명쾌한 논리와 군더더기 없는 설명에 감탄할 것이다. 흡입력 있는 문체는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쉽게 만날 수 없는 걸작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철학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이 전문 철학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전문 신학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기독교 교리에 관한 기본 지식이 꼭 필요한 것처럼 기독교 철학에 관한 기본적 이해에는 엄청난 실제적 가치가 있다. 우리 사회는 특정 철학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영역에 종사하건 철학에 관한 이해는 도움이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께로 회심하여 그분을 위해 살기 시작하면 이내 주변 사람들이 우리의 믿음에 대해 질문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일은 늘 있어 있다... 이미 초기 교회도 그러했다. 숫자와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적대하는 비난과 질문이 쏟아졌다. 초기 교회는 이에 답하기 위해 그리스도인이 아닌 이웃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믿음을 설명하고 변호할 필요가 있었다. 초기 기독교 사상가들이 자신의 신앙을 탄탄하고 명료하게 설명하고자 당시 철학에서 개념들을 차용하려 손을 뻗는 일은 불가피했다.(22-23쪽)
저자에 의하면, 오늘날 서구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그들을 적대하는 문화 속에서 소수가 되는 일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의 신앙을 따라 살 뿐만 아니라 신앙을 설명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과 회심 내러티브가 갖는 강력한 능력을 견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우리 믿음의 신빙성은 여전히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변증가요 작가인 C.S. 루이스는 자신의 회심에 대해 쓴 『예기치 못한 기쁨』 (Surprised by Joy, 홍성사)에서 어떻게 그가 옥스퍼드에서 버스에 오를 때는 불신자였으나 신자가 되어 내리게 되었는지를 감동적으로 들려준다. 그의 실제 회심은 논리적인 것 훨씬 이상이었다. 하지만 회심에 앞서 엄청난 양의 성찰과 그리스도인 친구들과 했던 토론이 있었다. 루이스는 당연히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기독교 변증가 중 하나가 되는 길로 들어섰다. 루이스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철학으로 1등을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23쪽) 루이스는 자신의 변증학을 발전시키는 데 철학을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철학자로 부름받지는 않았으며, 철학자로 부름받은 이들이라도 소수만이 플랜팅가 같은 탁월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 철학에 관한 이해는 이웃의 질문에 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고 플랜팅가처럼 기독교 철학자로 부름받은 이들은 최고의 학문적 수준으로 기독교의 신빙성을 증명하는 사례를 만듦으로써 중대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둘째, 이 책은 놀라운 통찰력이 있는 책이다. 독자는 무릎을 ‘탁’치고 싶을 것이다. 지적인 자극으로 흥분하고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책은 천천히 생각하고 음미하며, 그리고 밑줄을 그으며 읽어야 할 ‘모던 클래식’이다.
저자는 ‘이야기’(내러티브)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강조한다. “근래에 학자들은 이야기가 인간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인간은 아주 깊은 차원에서 기초적이며 근본적인 이야기의 맥락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점차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를 전문 용어로 메타내러티브(metanarrative)라 한다. 메타내러티브란 세상에 대한 진실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거대한 이야기다. 개인과 사회는 그들이 몸담고 사는 이야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이야기는 항상 개인이나 공동체가 살아가는 어떤 특정의 거대한 이야기다.”(37쪽)
북미 성공회의 주류가 어긋난 방향으로 나아간 것을 이해하려면 서구 문화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또한 지난 수 세기 동안 서구 문화를 형성해 왔고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는 철학을 알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를 통해서만 우리는 지금 문화가 어느 시점에 와 있는지와 동성애나 여타 문제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는 세력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그처럼 깊은 이해를 통해서만 우리는 영을 분별하고 또 그것과 선교적으로 씨름할 수 있게 된다.”(26쪽)
저자에 따르면 대학은 문화의 발전에 발맞추어 철저히 세속화되었다. 전형적인 서구 대학에서 종교학과에는 신앙을 위한 자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학문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고 씨름하려는 것은 대체로 말도 안 되는 일로 간주된다.
“그러니 수년 전 역사가 조지 마즈던(George Marsden)이 『기독교적 학문 연구@현대 학문 세계』(The Outrageous Idea of Christian Scholarship, IVP)라는 제목의 도발적인 책을 쓴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물론 마즈던이 기독교 학문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학자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뿐이다. 만일 우리가 선교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리스도인 학생들이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부르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훈련을 받는다는 사실에 진정으로 관심이 있다면, 기독교 학문을 위한 전망을 회복해야 할 필요를 긴박하게 느껴야 한다. 가장 잘나고 총명한 젊은 그리스도인을 이 시대 최고의 세속 학자들의 발아래서 공부하도록 보내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28쪽)
저자는 모든 학과에 일류 기독교 학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적어도 세속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어 학생들이 자신이 다루는 과목에서 작동하는 큰 질문들을 발굴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을 버리면서 자신이 택한 분야에 관한 기독교적 이해를 개발한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해야 한다. 기독교 철학만으로는 이런 일을 할 수 없지만, 기독교 철학은 문화와 그러한 싸움을 하기 위한 전법의 기초 요소다.”
셋째, 이 책은 실제적이다. 저자는 ‘철학과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철학이 실제적이지 않다고 한다. 이 말보다 진실에서 먼 이야기는 없다.”고 말한다.
“기독교 교리에 관한 기본 지식이 꼭 필요한 것처럼 기독교 철학에 관한 기본적 이해에는 엄청난 실제적 가치가 있다. 우리 사회는 특정 철학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영역에 종사하건 철학에 관한 이해는 도움이 된다.”(29쪽)
저자는 스포츠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우상의 무대가 되었다고 고발한다. “많은 젊은이가 스포츠를 위한 삶에 내물리고 있고 승리는 모든 것이 되었다. 스포츠 철학은 스포츠의 가치와 한계에 대하여 건강한 방향을 제공해 주고, 우리 세상의 종종 왜곡되는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이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끌 것이다.”
저자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과 목회현장을 언급하면서 ‘철학’과 ‘기독교철학’의 의의를 설명하고 독자를 설득한다. 그 설득력은 압도적이다.
넷째, 이 책은 성경(성경신학), 세계관, 기독교철학, 조직신학, 그리고 기타 학문과의 관계를 설명한다. “우리에게는 기독교 신학자와 철학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건강한 상호 작용이 시급히 필요하며, 그러면서도 둘 다 일관되게 성경의 권위를 존중할 책임이 있다는 점이 잊혀서는 안 된다.”
끝으로, 이 책은 철학이 결코 중립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고 거듭 단언한다. 저자는 “넓게 말해서 아브라함 카이퍼와 그를 따르는 이들의 아우구스티누스 전통 위에서 작업한다. 이 전통의 핵심은 구속이 피조물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회복하는 것을 수반한다고 보며. 철학을 포함해 삶의 어떤 영역도 중립적이지 않으며 종교적 전제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본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자율적 인간 이성의 기초 위에서 철학을 하려는 것은 심각한 잘못이다. 오히려, 기독교 철학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모든 자원-계시와 이성-을 활용해야 한다.”(54쪽)
저자는 서술하는 동안 검토할 여러 철학을 먼저 그 철학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힘껏 노력했다. 커티스 챙(Curtis Chang)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City of God, 분도출판사)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대이교도대전』(Siumma Contra Gentiles)을 다룬 그의 뛰어난 책에서 이런 전략을 “도전자의 이야기로 들어가기”라고 묘사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도전에 응답했다. 마찬가지로 저자는 비판하기 전에 그들이 살펴볼 철학을 바르게 이해하고 공정하게 다루고자 그들의 방식에 따라 검토하였다. 독자들은 특히 각주에서 현재 학계의 참고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의 배려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서양 철학 전반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이 책을 모든 그리스도인의 필독서로 강력히 추천한다. 이제는 ‘온실 안 신자’가 아니라 세속문화와 철학의 폭풍우에도 쓰러지지 않는 ‘거목’같은 거룩한 무리를 세워야 할 때다. 이 책은 우리 모두를 이 벅찬 과제에로 초청한다.
“적극 추천!” “강력 추천!”이라는 말로도 이 책의 중요성을 표현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