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당을 찾는 사람,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 입력 2020.05.12 10:09
  • 수정 2020.05.1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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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Th. M).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성경학박사과정(D.Litt)을 졸업했다. 예장총회교육자원부 연구원과 서울장신대 교수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그동안 성경학교와 신학교, 목회자와 교회교육 세미나와 강의등을 해오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에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평생말씀학교인 "예즈덤성경대학"을 20년째 교수하고 있으며 극동방송에서 "알기쉬운 기독교이해" "크리스천 가이드" "크리스천 습관과 인간관계" "재미있는 성경공부" "전도가 안된다구요"등 성경과 신앙생활 프로그램 담당했으며 다양한 직장 소그룹 성경공부 사역을 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현장 사역 경험(소형.중형.대형교회,개척과 담임목회)과 연구를 토대로 300여권의 저서가 있으며 "이야기대화식 성경연구"와 "30분성경교재 시리즈"와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한 저서(“유대인 밥상머리 자녀교육법” (2016년 세종도서 우수도서 ). “한국인을 위한 유대인공부법” (대만번역 출간), “유대인의 파르데스공부법“ 등 다수가 있다. 현재 꿈을주는교회 담임목사. 예즈덤성경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Th. M).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성경학박사과정(D.Litt)을 졸업했다. 예장총회교육자원부 연구원과 서울장신대 교수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그동안 성경학교와 신학교, 목회자와 교회교육 세미나와 강의등을 해오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에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평생말씀학교인 "예즈덤성경대학"을 20년째 교수하고 있으며 극동방송에서 "알기쉬운 기독교이해" "크리스천 가이드" "크리스천 습관과 인간관계" "재미있는 성경공부" "전도가 안된다구요"등 성경과 신앙생활 프로그램 담당했으며 다양한 직장 소그룹 성경공부 사역을 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현장 사역 경험(소형.중형.대형교회,개척과 담임목회)과 연구를 토대로 300여권의 저서가 있으며 "이야기대화식 성경연구"와 "30분성경교재 시리즈"와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한 저서(“유대인 밥상머리 자녀교육법” (2016년 세종도서 우수도서 ). “한국인을 위한 유대인공부법” (대만번역 출간), “유대인의 파르데스공부법“ 등 다수가 있다. 현재 꿈을주는교회 담임목사. 예즈덤성경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구약의 성전 중심의 예배 패턴

잠잠했던 코로나가 다시 모이는 예배를 흔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오직 우리들의 기도 제목은 코로나가 사라지는데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답일까? 그동안 방식의 예배로 코로나를 이길 수 없다면 지금 우리의 예배는 무엇인가? 만약 코로나가 사라지지 않고 이대로 계속 된다면 지금 우리의 예배는 어떻게 될까? 지금처럼 예배당에 모이는 예배방식으로 이겨 나갈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예배가 과연 성경적일까? 란 본질적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우리의 예배방식이 주님이 원하셨던 예배방식과 거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 성경적인 진솔한 검토가 필요하다. 성경적이기 보다는 오랜 예배 전통에 의한 것은 아닌지? 혹시 초대교회의 방식을 이어가기 보다는 헬레니즘 영향을 받은 초대교부가 세팅한 것을 로마 카톨릭 교회가 천년동안 자리매김한 것은 아닌지? 그것을 설교 중심으로 종교개혁자들이 그대로 이어서 다시 세팅한 것을 지금 우리가 그대로 따르고 있지 아닌지 곱씹어 보아야 한다.

예수님이 제시한 예배는 무엇일까?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신약성경은 예배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않다. 암시하는 내용은 나오지만 예배가 이렇게 드려야 한다고 제시한 본문은 없다. 직접적인 예배에 대한 신약성경의 본문은 극히 적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수가성 여인에게 하신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본문이 유일하다. 그리고 바울이 제시하는 롬 12장 1-2절에 나오는 영적예배에 대한 언급 정도다. 많은 서신서에서도 예배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에 대해서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거의 예배에 목숨을 걸 정도로 우리에게 예배는 소중하다. 신앙생활이 예배로 유지할 정도로 한국교회 신앙생활에서 예배는 절대적이다. 그것에 비해 성경은 예배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 우리 예배 방식은 구약의 성전 예배방식을 여전히 따르고 있다. 우리는 신약의 복음을 받았지만 예배는 여전히 구약의 성전중심의 예배 패턴을 적용하고 있다.

우리는 교회당을 예배당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지난 1500여 년 동안 익숙한 모습이다. 그렇게 중요한 예배당이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성전이 멸망하는 진원지가 되었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곳을 성전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라고 외쳤다. 예수님 시대에는 성전이 강도의 굴혈이 되었고 예수님은 성전을 헐어 버린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교훈을 토대로 초대교회는 사람이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었고 그런 교회를 통하여 부흥했고 성장했다. 하지만 중세에서는 다시 예배당이 복원되어 그곳이 신앙의 부패를 가져온 타락의 본거지가 되었다. 종교개혁을 외치고 새롭게 태어난 개신교 역시 예배당 예배만큼은 그대로 고수했다. 그 결과 지금은 유럽의 종교개혁교회들 역시 한결같이 신앙을 잃어버린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런 연장선에 한국교회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오랜 역사의 반복된 교훈을 뻔히 알고서도 지금 이대로 갈 것인가의 고민 보다는 여전히 성전 중심의 예배와 예배당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것이 예배의 본질인가?

‘어디서 예배’와 ‘어떻게 예배’의 경계선

지금 끝나지 않고 다시 고개를 드는 코로나를 통하여 우리 교회는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신앙을 유지하고 코로나를 넘어 앞으로 나갈 수 있을까? 우리는 산이 흔들려 요동하고 물이 넘쳐 예배당을 덮는다 해도 하나님만 예배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어떤 예배와 예배방식을 가져야 할까? 예수님이라면 지금 코로나 사태속에서 무엇이라 답하실까? 수가성 여인이 예수님에게 “어디서 예배를 드려야 할까요? 예루살렘을 갈수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이 질문은 지금 코로나 속에서 어떤 예배자로 살아야 할까? 와도 같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요한이 강조한 예배는 당시 흩어져 있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어떤 예배를 의미하는 것일까? 핍박과 황제숭배의 강요속에서 그들은 어떻게 예배를 드렸으며 어떤 예배자로 살았을까? 요한은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떤 예배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

위기속에서 이기는 자로 끝까지 믿음을 지키기 위한 예배를 지금 우리의 예배 방식에 적용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말씀을 통해 깊은 묵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데 우리는 새 술을 옛 부대에 담고 고민하면서 새 술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예배에 대한 깊은 본질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 필자의 이런 문제제기는 단순히 예배의 장소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어디서나 가능하다. 문제는 어떻게 예배해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있느냐 하는 예배의 본질적인 질문이다, 이것은 어떤 상황이 와도 예배를 포기하지 않고 신령과 진정으로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를 드릴수 있느냐 하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답을 찾는 질문이기도 하다.

 

예배의 형식보다 중요한 예배의 본질 회복

성경은 이것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고 우리에게 각자 적용하는데 맡겨두고 있다. 이것은 다시 성경을 깊게 전체적으로 보아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행하고 있는 예배 방식이 정말 성경이 말하는 방식인지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다운 예배를 드리고 천상을 사모하는 예배자로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까? 어떤 환란과 고난이 닥치고 예배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예배하며 영광을 돌리는 예배자의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런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고 지금 우리교회와 예배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코로나는 우리에게 반복하여 묻고 있다. 예배의 장소와 방법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예배의 본질을 찾는 것이다. 그래야 어떤 상황에서도 적용이 가능하다. 예배당 예배가 옳은가? 가정예배가 옳은가? 어느 정도 모여야 교회가 되며 공예배로 인정 되는가? 설교시간은 얼마나 필요하며 설교이외에 다른 순서가 포함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이런 방법론적인 것은 정답이 없다.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어야 한다, 다만 예배의 본질을 얼마나 드러내느냐에 핵심이 있다. 양으로 드리느냐? 곡식으로 드리느냐 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그럴 때 최초의 예배였던 하나님이 받으시는 아벨의 제사가 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성경은 처음 예배와 (중간에 레위기는 구체적인 제사 방법을 제시하지만) 지금 우리 예배의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고전10:23)

복음은 모든 상황을 이기는 능력이며 누구에게나 구원이 되는 차별이 없는 선물이다. 그래서 기쁜 소식이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복음과 만나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누구도 예배를 막을 수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가 중지 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의 모든 곳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 됨을 선포해야 한다,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예배해야 한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혀도 그곳에서 찬송과 기도와 말씀이 선포되는 순간 옥문이 열리고 간수가 구원받고 온 가족이 세례를 받고 간수교회가 세워진 것처럼 우리의 예배가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되어야 한다. 코로나 시대속에서 어떤 예배가 합당한지는 각자에게 주어진 일이다. 어떤 방법이 가장 신령과 진실함을 담을 수 있느냐는 예배자의 몫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런 예배자를 찾으시고 그 예배를 받으신다. 가장 최고의 하나님에게 드리는 가장 합당한 예배가 무엇인지 어떤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실까를 분별한다면 지금 우리의 예배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위기가 온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 드려지는 예배자를 통하여 예배를 받으시고 주님만 높여 질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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