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에 번지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한국교회는 예배당에서 모여 드리던 기존의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처음 겪는 일이 계속 되고 있다. 대부분 인터넷으로 가정예배를 통한 주일예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그동안 당연시 드렸던 예배와 교회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런 시점에서 지금의 예배방식이 성경이 말하는 예배에 얼마나 근접하는지, 한계는 없는지, 그것을 보완할 대안은 있는지에 대한 근본의 성찰이 필요하다. 주님은 우리로 예배하게 하실 때 이미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포함되었다고 본다. 어떤 상황이 와도 예배는 멈추지 않는 하나님의 방법을 찾아 적용하는 것이 복음이다. 지금 드리는 우리의 예배방식은 성경적인 복음모델 보다는 헬레니즘 방식을 도입한 중세 로마교회가 처음 디자인한 것에 근거하고 있다. 개혁교회가 방식에서는 여전히 로마교회를 부분적으로 따르고 있다. 예배 시리즈는 우리의 예배를 다시 돌아보면서 성경적 예배를 조망해보는 시간이다. (4회 시리즈로 연재)
다양한 곳에서 예배에 대한 목회적 의견들이 개진되고 성경적, 신학적으로 예배와 교회에 대해 다시 정립하고 있다. 그 중에서 “예배란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이 가장 많다. 어떤 예배가 진정한 예배인가? 하나님은 어떤 예배를 받으실까? 지금까지 나의 예배는 바르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점검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교회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하는 일이다. 교회 속에 예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하든지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한다. 이런 영적 싸움을 이기려면 예배에 대한 성경적 원리를 잘 이해하고 그것을 각자 삶에 적용해야 한다. 원리를 제대로 이해해야 창의적인 적용이 가능하다
도구화 된 예배를 조심하라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번에 나오는 질문은 “사람의 제일 된 목적이 무엇인가?” 이다. 이것에 대한 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일이다” 이다. 이것은 십계명 1-3계명의 내용과도 그대로 이어진다. “하나님 이외는 다른 신을 두지 말고 심지어 하나님을 위하여 새긴 우상조차도 만들지 말고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이 존재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나님 자신 이외의 것이 목적이 되면 안된다. 그런데 대부분 신앙은 이 기본기에서 무너진다. 그중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예배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우리가 예배하면서 가장 위험한 것은 예배를 도구화 하는 일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헬레니즘방식이다. 예배를 전도와 교회성장의 도구라든지. 나의 마음을 위로하고 몸을 치료하는 것이라든지, 사람을 만나고 교제하는 도구로 생각하는 순간 예배자체의 힘은 사라진다. 그런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다. 이런 예배는 신령하지 못하고 진실성에서 문제가 있다. 예배를 나의 필요를 얻기 위한 도구가 되는 순간 하나님은 예배를 받지 않고 얼굴을 돌리신다. 그것은 하나님을 인간의 도구로 삼는 것으로 우상숭배 행위다. 혹시 우리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나의 만족을 채워 주는 우상으로 생각하며 예배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배는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나를 구원하신 은혜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이다. 예배하러 성전에 올라가는 것은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다(시 100편) 이런 예배는 삶을 변화시키는 동력이 된다. 수가성 여인이 우물가 예배에서 예수님을 만나자 전도자로 변화된 것처럼...
순결하지 못한 예배를 점검하라
오직 하나님 한분을 높이는 것 이외에 다른 목적이 있으면 그것은 가인의 예배가 된다. 예배는 오늘 나의 신앙을 점검하는 바로미터다. 예배하는 것만큼이나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예배하느냐이다. 우리 모두 예배 중에 정신 차려 조심해야 할 점은 예배의 목적이 하나님에서 나로 바뀌는 것이다. 예배가 하나님 자체가 아닌 수단으로서 프로그램과 전도행사가 되거나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축하하는 것으로 변질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 속에 이것을 과감히 제거하는 일이 필요하다. 예배를 자기의 목적을 이루는 집회가 되는 것은 위험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 죄를 쌓는 악한 행위가 된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로 예배당 주일예배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예배에 이런 모습이 없는지 살펴보고 예배를 부패하게 하는 바이러스를 제거해야 한다. 예배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순결하지 못한 익숙한 예배를 재점검해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 이외의 어떤 것으로도 예배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거부하신다. 어쩌면 하나님에 대한 많은 설명과 달변의 설교는 오히려 믿음에 방해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기에 많은 설명이 더해지는 순간 오히려 본질에서 떠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많다, 성경에 나오는 사도들의 설교를 보면 성경 내용을 단순하게 전했다. 그 자체가 가장 강력한 말씀이기에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신앙을 도구화 하려고 한다. 구원과 영생조차도 하나님 보다 우선될 수 없다. 영생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참 신앙이 아니다.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과 예수이름을 부른다면 그것이 위험하다. 주여! 주여! 한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큰 소리로 외친다고 하나님이 임재하는 예배가 되는 것이 아니다. 바알숭배나 아데미 신전 예배는 신의 이름을 수백 번 하나된 목소리로 반복하여 부른다. 그러다 보면 거기에 신비로운 힘을 느낀다. 웅장한 건물과 신비롭게 치장한 성당에서, 또 많은 사람들이 모일수록 거기서 느끼는 감동과 은혜가 크게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은 이 함정에 거의 빠진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에 초점이 있지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세상의 것들로 느끼게 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하나님을 초라하게 만들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이 작은 지하실 교회에서 느끼는 것과 수천 명 모이는 큰 장소에서 느끼는 시설과 사람들의 수에 따라 달라진다면 내가 믿는 그 하나님은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이 아닐 수 있다. 하나님 보다 위대한 것은 없다. 누구도 하나님을 증명할 수 없다. 하나님 자신이 가장 큰 증거다. 주변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절대적인 하나님을 우리는 세상의 크기와 결과를 도구로 하나님의 능력을 느끼거나 증명하려고 시도한다. 과학적으로 유명인이, 최고 재벌이 하나님을 믿기에 하나님이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잘못된 믿음이 될 수 있다. 예배도 이처럼 인간의 노력으로 무엇을 만들고 연출하여 기획해 보려고 하는 것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동과 은혜를 받으려고 감성과 보이는 것에 너무 집중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과 멀어지게 할 수 있다. 최고의 예배는 하나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하박국 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