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德)의 이전 글자는 덕(悳)이 었는데, 파자하면 “直+心”이 되는데 이를 그대로 해석하면 “바른 마음”이다. 悳은 '바른 마음'으로, 德은 '바른 마음을 행하는 것'이란 뜻으로 구분해서 쓰였으나 이후 이러한 구분이 점차 모호해져 悳과 德이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이다가 나중에 德이 더 많이 쓰이게 되면서 본자인 悳은 고자(古字)가 되었다.

덕(德)은 virtue로 대칭시켜 번역한다. virtue, “a good moral quality in a person, or the general quality of being morally good:”(Cambridge Dic). “Virtue (Latin: virtus, Ancient Greek: ἀρετή "arete") is moral excellence”(위키페디아). 영어권에서 virtue는 선한 인격, 인간의 탁월함으로 이해했고, 그것은 양(量, quantity)이 아닌 질(質, quality)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 지혜, 용기, 절제” 4 가지를 주덕으로 정의했다. “정의(Justice)”를 규정하는 것은 지금까지 논의하고 있다. 절제는 신에게 자기 생을 헌신함, 용기는 신을 위해 모든 것을 감당함, 정의는 신에 대한 헌신, 지혜는 신을 지향하는 분별력이다. 어거스틴과 아퀴나스는 7주덕(主德), 기독교의 신망애(信望愛)을 첨가한, 믿음, 소망, 사랑, 지혜, 절제, 정의, 용기를 제시했다. “prudence, justice, temperance, and courage (or fortitude) with the three theological virtues of faith, hope, and charity.”(위키페디아). 아퀴나스는 『신학대전』 2-1부 물음 90에서 108에서 영원법(lex aeterna; eternal law), 자연법(lex naturalis; natural law), 인정법(lex humana; human law), 그리고 신법(lex divina; divine law)으로 구분했다. 아퀴나스는 신법(lex divina)을 구약(98-105문)과 신약(106-108문)에서 제시했고, 구약에서 도덕법, 제의법, 사회법으로 분류했다. 신법을 영원한 법(lex aeterna)으로 규정했다.

신약성서의 저자들도 그리스도인의 덕(德)을 강조하고 있다(빌 4:8, 벧전 2:9, 벧후 1:3, 1:5, 롬 14:19, 고전 8:1, 10:23, 14:3-5). 철학적 덕(德)과 기독교적 덕(德)은 유사하지만 같지는 않다. 그 중 하나는 덕을 증진하는 방법과 목적이 다르다. 철학에서 덕은 수행으로 증진하려고 한다. 그래서 수덕(修德)으로 하고, 수덕(修德) 종교(宗敎)도 철학적 종교로 분류할 수 있다. 철학적 덕의 목표는 인간성 함양, 자기 덕에 있다. 기독교적 덕은 수행에 의한 덕 증진이 아니라, 믿음의 주를 고백하며 합당한 수행(修行)을 준행하는 것이다. 목표는 자기 덕이 아닌 하나님과 이웃 사랑이다.

도덕(道德, morality)은 덕을 수행하는 방법(규범)이다. 덕(德)을 규범화한 것이다. “a set of personal or social standards for good or bad behaviour and character:”(Cambridge Dic). 덕(德)과 도덕(道德)의 개념(槪念, concept)은 동양과 서양이 동일하다. 그러나 덕을 성취하는 방법도 수덕(修德)으로 동일하지만, 기독교는 철학적 수덕과 같지 않다. 도덕(道德)은 개념은 같지만, 규범은 같지 않다.

“도덕”은 지역, 세대, 직업마다 규범이 같지 않다. 이런 다양한 도덕이 만나면서 사회적 소통이 가능하도록 조율(調律)이나 조정(調整)하는 것이 “소통(疏通)”, “경륜(經綸)”이다. 윤리(倫理)는 일본이 ethic을 번역할 때 만든 조어(造語)이다. ethic을 윤리로 번역한 것은 일본이다(이혜경, “근대 중국 ‘倫理’ 개념의 번역과 변용”, 2007). 리학(理學)은 사이언스(science)이기 때문에, ethic은 윤(倫)을 첨가한 윤리학(倫理學)으로 번역되었다.

량치차오(梁啓超, 1873-1929)는 윤리와 도덕을 구별했다. “도덕과 윤리는 다르다. 도덕은 윤리를 포괄할 수 있지만 윤리로는 도덕까지 포괄할 수 없다. 윤리는 시세에 따라 조금씩 해석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도덕은 사해에 적용해도 들어맞고 백세 뒤를 기다려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임금에게 압력을 넣는 것은 죄라거나 처를 많이 두는 것은 부덕이 아니라는 그런 윤리는 오늘날에는 적절하지 않다. 한편 충성의 덕이나 사랑의 덕은 고금과 동서를 관통하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중국의 윤리에 결점이 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중국의 도덕에 결점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이혜령의 글에서 재인용).

교회의 목표 중 하나는 건덕(建德, edification, οἰκοδομὴν)이다(고전 14:3). 덕(德, virtue)과 법(法, lex)은 깊은 연관 관계가 있다. 교회의 건덕(建德)은 edification이다. “edification”은 “the improvement of the mind and understanding, especially by learning:”(Cambridge Dic)이다. “edification”은 “건덕”으로 번역했지만, 사전적 의미는 “교화 혹은 의식고양”이다. “edification”은 교육이나 훈련을 통해서 마음과 이해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columna et firmamentum veritatis, 딤전 3:15). 덕(德, virtue)은 아레테(ἀρετή)이고, 건덕(健德)은 오이코도메(οἰκοδομὴν)이다. 철학은 이데아(idea)를 추구하는 구도(求道)와 수덕(修德)을 통해서 덕을 증진하지만, 기독교는 진리를 믿어 덕을 건덕한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요 8:32). 찾으려는 길에서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라, 확정된 길(행 4:12)에서 자유를 누린다(갈 5장).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조직신학)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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