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세창 목사의 신약이야기】 난해성구 연구 (1)

 

최세창 목사 / 1977년 감리교목사안수, 한국성서신학교 출강, 인천여신 출강, 협성대 출강, 훼이스신학대학원객원교수, *논문* “바울의 인간이해” “야고보서의 저자에 관한연구”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문제” “고용주와 고용인의 도리” “부부간의 도리” “부자간의 도리” “기도에 관한 성서적 개요” “서원기도에 관한 연구” “칭의에 관한 연구” “바울의 성 이해” “주석과 설교에 관한 소고” “히브리서의 저자 연구” 외 교계 잡지 연재 및 세미나 인도 다수
최세창 목사 / 1977년 감리교목사안수, 한국성서신학교 출강, 인천여신 출강, 협성대 출강, 훼이스신학대학원객원교수, *논문* “바울의 인간이해” “야고보서의 저자에 관한연구”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문제” “고용주와 고용인의 도리” “부부간의 도리” “부자간의 도리” “기도에 관한 성서적 개요” “서원기도에 관한 연구” “칭의에 관한 연구” “바울의 성 이해” “주석과 설교에 관한 소고” “히브리서의 저자 연구” 외 교계 잡지 연재 및 세미나 인도 다수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엡4:11)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충만케 하시기 위해 주신 다양한 은혜에 대해서 【엡 4:11】[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열거된 직분은 교회에서의 고하(高下)의 순서를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참조: 고전 12:28).

[사도] (아포스톨루스, ἀποστόλους)는 글자 그대로 ‘임무 또는 사명을 띠고 파송되는 사람’ 곧 전권 대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신약의 사도들이란 ⑴ 지상의 예수께로부터 직접 사명을 받은 자(마 10:5, 28:29. 비교: 갈 1:1), ⑵ 부활하신 주를 목격하고 이 사실을 증거한 자(행 1:21, 22), ⑶ 성령의 특별한 영감을 받은 자(요 14:26, 16:13, 고전 2:10), ⑷ 그러므로 그들의 권세는 지상에 있고(마 18:18, 20, 요 22:22-23), ⑸ 표적을 행하는 권능을 받았으며(행 2:43, 5:15), ⑹ 그들의 복음 전파의 범위는 우주적이었고 무제한이었다(고후 11:28).

[사도]란 칭호를 들은 이들은 12제자 외에도 바울과 바나바(행 14:4, 14), 실루아노와 디모데(살전 2:6) 등이 있다. 또, {70제자들(눅 10:1)도 사도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이레니우스, 터틀리안).

사도직은 초대 교회에서 가장 높은 직위이었다(엡 4:11, 고전 12:28). 본질적으로 사도의 직분은 그를 보내신 분의 위엄을 떠나서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다(Ellicott)}(살전 2:6의 주석).

[선지자] (프로페테스, προφήτας: 복수)에 대해 {헨드릭슨(W. Hendriksen)은 “πρό(‘앞으로’, ‘밖으로’)와 φημί(말하기)가 결합된 말이다.······그리고 선지자(예언자)가 앞을 향해, 또는 밖을 향해 말하거나 공공연히 선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마음이다. 그는 선포자이지, 반드시 예고자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예언을 멸시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살전 5:20의 주석).

여기에 언급된 선지자는 구약 시대의 선지자가 아니라, 신약 시대의 선지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렌스키(R. C. H. Lenski)는 2:20의 주석에서 “예언과 예언자는 이미 계시된 구원의 진리를 가장 적절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예언자는 교사이기도 하며, 전도자요, 목회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아가보와 빌립의 딸들(행 21:9-10)과 같은 예언자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장차 오는 사건에 관한 여러 가지 계시를 전달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구약성경의 예언자는 물론, 신약성경의 사도들보다 하위에 위치한다. 그들의 기능은 부수적이며, 그들의 계시는 어쩌다 있었으며, 또한 그 수에 있어서도 소수에 불과하였다.”라고 설명하였다.

신약 시대나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은 단순히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기계적 존재가 아니라, 계시의 본질적 사명과 깊은 연관이 있는 인격적 존재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전할 예언자들을 일시적이며 기계적인 도구로 취급하시지 않고, 먼저 그들을 불러 인격적 만남을 통해 사명자로 세우시고, 그들의 개성과 재능과 행동으로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바클레이(W. Barclay)는 그들의 특성과 운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박해 시대에 제일 먼저 고난을 당한 사람들이 바로 선지자들이었으며, 심지어 순교의 제물이 되기도 하였다.

(2) 선지자들이 문젯거리가 되었다.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서 지역적인 조직이 발달되었다. 모든 교회가 개 교회만을 위한 담임 목회자를 가질 수 있으며, 그리고 그 지역만을 위한 행정 체제를 가질 수 있을 만큼 조직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얼마 가지 않아서 담임 목회자들은 자신의 교회를 혼란하게 하는 순회 선지자들의 개입에 대해 분개하기 시작하였다.

담임 목회자들은 언제나 순회 선지자들을 좋지 않게 생각하게 마련인 것이다. 당연한 결과로 점차 선지자들은 없어지고 담임 목회자가 우세하게 되었다.

(3) 선지자의 직분은 쉽사리 남용되기 쉬운 것이었다. 순회 선지자들은 굉장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자신의 직분을 남용하여 그들이 방문하는 교회의 비용을 가지고 매우 안락한 생활을 하였다.

바울의 시대에는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참된 메시지를 각 교회에 전하였었다. 그러나 이런 순회 선지자가 시대 착오적인 존재로 떨어지게 되는 시대가 오게 되었다. 더욱이 그들 중에는 그들의 직책을 여지없이 추락시킨 경우도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존재는 점차 사라져 버렸다.

[복음 전하는 자] (유앙겔리스타스, εὐαγγελιστάς)는 직책을 가리키는 칭호가 아니라, 초대 교회의 순회 전도자(선교사)와 복음 설교자들을 가리키는 칭호이었다.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인 빌립이 전도자로 일컬어졌고(행 21:8), 디모데도 바울에게서 전도인의 일을 하라는 권면을 받았다(딤후 4:5).

“초기에는 의심할 것 없이 사도들의 활동이 복음 전하는 자들의 활동과 엄격하게 구별되지 않았다(cf. 갈 1:8, I Clem. 42, Barn. 8:3). 후기에는 복음 전하는 자들을 사도들의 제자 또는 그들의 본을 따르는 자들로 생각하였다(Euseb. Hist. Ⅱ. 3:1. Ⅲ. 37:2 그리고 Ⅴ. 10, 2-3. 여기서는 2세기의 알렌산드리아 교리 문답 학교의 설립자인 판테이누스(Pantaenus)가 복음 전하는 자로 간주되어 있다)”(Shepherd).① 위의 세 부류의 사람들이 넓은 의미의 교회에 적용되는 데 비해, [목사와 교사](ποιμένας καί διδασκάλους)는 특히 개체 교회에 적용되고 있다. 목사와 교사에 대해 전혀 다른 직책이라는 설②과 같은 직책의 두 가지 역할이라는 설③이 있다. 두 낱말이 한 관사에 의해 수식된다는 점과 목사(문자대로의 뜻은 목자)의 기능이 교회 회중(양 무리)을 통치하고 보호하며 가르치고 인도하는 것(참조: 요 10:1-18, 히 13:20, 벧전 2:25, 5:2, 4)이라는 점을 보아 후설을 취해야 할 것이다.

[목사] 또는 [교사] 는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 또는 사상 등을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에 관한 영적 지식을 가르치는 자이며, 창조주 하나님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주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는 자이다. 동시에 기독교인으로 하여금 인간을 포함하여 우주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도록 교훈하는 자이다.

러셀(Russell, p. 35)은 “기독교 교육이란 인간들의 참된 인간성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도록 부르시는 그리스도의 초대에 참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교사란 기독교 교육의 시작과 진행과 목적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마 28:16-20).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의 교사에게 필수적인 것은 대 교사인 그리스도의 도구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교사는 다만 자신의 입과 행위를 통해서 피교육자를 양육하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활의 주께서 위에 열거한 여러 가지 직책을 주신 목적에 대해, 바울은 【12】[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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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1) M. H. Shepherd, Jr., in. IDB., Vol. 2, p. 181.

2) “Theophylact, Theodoret, Ambrose, Beza, Grotius, De Wette, Stier”(in 이상근), G. H. P. Thompson.

3) “Augustine, Chrysostom”(in T. K. Abott), J. A. Bengel, “Jerome, Oecumenius,, Harless, Eadie, Davidson, H. A. W. Meyer”(in 이상근), T. K. Abott, W. G. Blaikie, R. P. Martin, F. Foulkes, A. S. Wood, A. Martin, F. F. Bruce, W. Hendriksen.

ㅡ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년 2판 2쇄), pp. 410-413.ㅡ

<저자의 부연 설명>

유의할 점:
1) 신약성경에 언급된 직분의 명칭과 현재 다양한 기독교 교파의 직분의 명칭이 똑같다고 해서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장로교회에는 감리교회의 감독이라는 직분이 없고, 총회장이 있으나 성경에는 그 직분이 없습니다. 또, 감리교회의 현 감독의 직분과 성경의 감독의 직분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감독회장이라는 직분도 성경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별 문제될 것이 없는데 그것은 성경에 언급된 직분들의 근본정신이나 의미에 의거하여, 그리고 각 교단의 특성과 효율적인 부흥과 발전 등을 고려하여 기도하면서 제도상의 직분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간적인 욕심과 세상적인 원리를 좇아 만들어진 직분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실상, 성경 자체에도 공식‧비공식 직분의 명칭이 생성 소멸되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통치자를 초기에는 ‘사사’라고 하다가 나중에 ‘왕’(임금)을 세우게 되었고, 서기관이라는 직분 등등이 생기게 되었고, 천부장과 백부장과 십부장이 나라가 망한 다음에는 없어졌습니다. 회당이 생기면서 회당장이라는 직분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2) 성경에는, 위에 논한 바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인 교회에 제사장이라는 직분이 아예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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