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세창 목사의 신약이야기】 난해성구 연구 (2)

 

최세창 목사 / 1977년 감리교목사안수, 한국성서신학교 출강, 인천여신 출강, 협성대 출강, 훼이스신학대학원객원교수, *논문* “바울의 인간이해” “야고보서의 저자에 관한연구”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문제” “고용주와 고용인의 도리” “부부간의 도리” “부자간의 도리” “기도에 관한 성서적 개요” “서원기도에 관한 연구” “칭의에 관한 연구” “바울의 성 이해” “주석과 설교에 관한 소고” “히브리서의 저자 연구” 외 교계 잡지 연재 및 세미나 인도 다수
최세창 목사 / 1977년 감리교목사안수, 한국성서신학교 출강, 인천여신 출강, 협성대 출강, 훼이스신학대학원객원교수, *논문* “바울의 인간이해” “야고보서의 저자에 관한연구”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문제” “고용주와 고용인의 도리” “부부간의 도리” “부자간의 도리” “기도에 관한 성서적 개요” “서원기도에 관한 연구” “칭의에 관한 연구” “바울의 성 이해” “주석과 설교에 관한 소고” “히브리서의 저자 연구” 외 교계 잡지 연재 및 세미나 인도 다수

베드로전서 2:7-8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 대해 논한 베드로는, 다시금 그들과 대조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신분에 대해 논하고 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2:9)

이 구절은 이미 서신의 첫머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가 진짜 이스라엘이며,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함으로써 선민의 자격을 상실한 옛 이스라엘에 속한 모든 특권과 의무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들에 대한 합법적인 후사일 뿐 아니라, 그 이상의 공동체임을 암시한 바 있는 베드로(1:1의 주석을 보라.)가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옛 이스라엘에게 붙여졌던 명예로운 칭호들을 교회에 적용한 것이다.

[택하신 족속](게노스 에크렉톤, γένος ἐκλεκτόν) 은 신명기 10:15의 “여호와께서 오직 네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음이니라”와, 이사야 43:20의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니라”를 인용한 것이다.

믿음의 조상들을 따른 교회는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신령한 족속으로 하나님의 특별하고도 놀라운 은혜와 복을 누리는 것이다. 이에 대해 1:2에서는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하였다. 즉, 하나님의 선지 및 구원 계획에 따라 그리스도를 믿어 천국 유업을 물려받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 웨슬리(J. Wesley)는 “선택이란 우리의 공로나 능력이 간여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하나님의 참된 예정이나 예약이란 (1) 주님을 믿는 사람은 죄책과 죄의 권세에서 구원받으리라는 것, (2)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으리라는 것, (3) 믿음의 아름다운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그로써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됨으로써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과 같이 행할 수 있는 성결의 영을 받으리라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선택을 통해 약속과 의무는 동일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값없이 거저 주시는 은사이다.”라고 주석하였다.

[왕 같은 제사장들] 은 출애굽기 19:6의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를 인용한 것이다.

왕 같은 제사장들(바실레이온 히에라튜마, βασίλειον ἱεράτευμα)에 대해서는 (1) 왕정(王廷)의 제사장들, 즉 하나님께서 임금이 되어 친히 다스리시는 조정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이라는 설(J. A. Bengel, I. H. Marshall), (2) 왕들이요 제사장들이라는 설(J. Wesley, C. Bigg, 박윤선), (3) 왕다운 제사장들이라는 설,① (4) 왕가 또는 제사장들의 집단이라는 설(E. A. Blum), (5) 왕들의 존엄성과 제사장들의 거룩함을 지녔다는 뜻이라는 설(Doddridge),② (6) 제사장들의 직무의 존엄성을 뜻한다는 설(A. Barnes), (7) 충성스런 제사장들이라는 설(김철손), (8) 왕에게 속한 왕족이고 신령한 제물을 드리기 때문에 제사장들이라는 설(B. C. Caffin, A. M. Hunter) (9) 새 이스라엘에는 제사장 계급이 없으며,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의 왕권으로부터 비롯된 왕적인 기능과, 그의 제사장직으로부터 비롯된 제사장적 기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는 설③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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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 Henry, W. Schrage, 黑崎幸吉, AV, RV, RSV.

2) in A. Barnes.

3) J. Calvin, R. C. H. Lenski, J. N. D. Kelly, A. M. Stibbs, C. R. Erdman, W. Barc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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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공동체인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실제의 왕들이나 실제의 제사장들 또는 실제의 왕들이자 실제의 제사장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1)~(4)설과 (7)설은 받아들일 수 없다. 또, 교회란 존엄하고 거룩한 교인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를 좇아 왕 중 왕이시며 제사장 중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존엄해지고 거룩해져야 할 교인들의 공동체이므로 (4)설도 적합하지 않다. 결국 여러 학자들의 견해인 (9)설을 취해야 하는데, 여기에 (8)설을 추가해도 무방하다.

어드만(C. R. Erdman)은 “임금께서 불러 세우고 그의 죽음과 영광을 나누게 하셨으니 왕 같은 존재일 것이며, 신령한 제사인 찬송과 기도와 봉사를 하나님께 드리며 사람들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릴 수 있으니 제사장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거룩한 나라](에트노스 하기온, ἔθνος ἅγιον) 역시 출애굽기 19:6을 인용한 것이다. 이 표현은 성령을 좇아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나님에 의해 성별된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1:15의 주석을 보라).

[그의 소유된 백성](라오스 에이스 페리포이에신, λαὸς εἰς περιποίησιν) 은 출애굽기 19:5의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를 인용한 것이다(참조:신 7:6, 사 43:21, 말 3:17, 딛 2:14). 사랑과 진리로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뽑아 자신의 소유로 삼아 보호하는 백성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다 제사장 직분이라는 것이 아니라, 주 하나님과 불신자 사이를 연결해 주는 제사장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점은 벧전 2:9b(후반)로 뒷받침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삼아 주신 목적은, [그리스도인들을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다.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는 이사야 42:16을,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는 시편 36:9을 반영하는 것이다.

[어두운 데](스코투스, σκότους) 또는 어둠이나 밤은 {은유로서 ‘영적 무지’(고후 4:4, 6, 엡 4:18), ‘죄’(잠 2:13, 살전 5:5), ‘우상 숭배’(엡 5:8), ‘타락’(행 26:18), ‘고통’(사 9:1), ‘역경’(사 21:12), ‘사망’(사 9:2, 요 9:4) 등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말해, 사단과 그의 지배 아래 있는 인간 및 영역의 특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엘리코트(Elicott)는 “어둠이란 말은 사악함과 어두워진 이해력의 영역과 그것에 따르는 파멸이 가까운 것을 모르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롬 3:12의 주석).

[불러내어]는 칼레산토스(καλέσαντος)로서 일반적으로 ‘부른다’ 는 뜻인데, 칠십인역과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도하시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1:15의 주석을 보라).

[그의 기이한 빛(τὸ θαυμστὸν αὐτού φώς)에 들어가게 하신 자 의 ‘아름다운’(원문에는 없다.)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함이라]는, 경탄할 수밖에 없는 놀라운 그리스도의 빛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덕을 선전 또는 선포하게 하려 하신다는 뜻이다.

[빛](φώς)에 대해 켈리(J. N. D. Kelly)는 “유대교에서 메시아 및 메시아 시대와 연결되어 있었다(SB Ⅰ, 161f.:곧 시 36:9의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나이다’에 관한 랍비들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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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와 같이 원시 기독교에서 예수께서 빛이셨으며(요 1:4, 8, 8:12 등), 그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자들은 종말론적인 빛에 들어가 그분 안에서 거하는 자들로 간주되었다(요 12:35, 행 26:18, 엡 5:8, 골 1:12, 살전 5:5, 요일 1:5-2:11).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그들의 과거는 ‘어둠’으로, 그들의 세례는 ‘빛을 주는 것’으로 간주되었다(롬 13:12, 엡 5:14, 히 6:4, 10, 32. Justin, ⅠApol. lxi. 12f.; lxv. Ⅰ; Dial cxxii. Ⅰ).”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고 빛과 신자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완전하고도 특수한 계시인 그리스도를 빛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빛이시요(요 1:4), 세상의 빛이신(요 8:12) 참 빛이시다(요 1:9). {알란(J. A. Allan)에 의하면 “이 빛은 충분히 그리고 명백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비취므로 무지와 죄와 죽음이 극복된다(눅 1:78, 마 4:16, 요 1:1-18, 8:12, 9:1-41, 고후 4:4-6). 그리고 그리스도로 인해 인간은 빛의 본질을 나누어 갖는다(요 12:35-).”라고 한다}(엡 5:6의 주석). 그러므로 빛이란 신자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마 5:14, 요 3:20).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은 어둠의 영역에서 빛의 영역으로 옮겨진 사람들이다(고후 4:6, 행 26:18, 골 1:13). 달리 말하면,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자요(롬 13:14, 갈 3:27), 빛의 갑옷을 입은 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참 빛이신 성자와 그 빛의 본질을 나누어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빛의 아버지이시다(약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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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은 아레타스(ἀρετάς)로서 ‘도덕적인 탁월’, ‘우수’ 등을 뜻한다(빌 4:8, 벧후 1:5). 고전 헬라어에서는 특별한 도덕적 의미가 없지만, 그러나 모든 종류의 ‘위대한 행위’나 ‘뛰어남’을 지시하였다. 즉, 용감, 지위, 토지, 동물 등의 우수함 그리고 인간의 덕을 의미하였다. 다이스만(Deissmann)은 “베드로 당시의 통속 헬라어는 신이 행한 기적들을 아레타이(ἀρεταί)라고 일컬었다.”④라고 하였다. 특히, 켈리(J. N. D. Kelly)는 “이 말이 신에게 적용될 때, 이것은 그의 미덕이나 본질적인 속성이 아니라 그의 능력의 증시(證示)를 의미한다(TWNT Ⅰ, 457-461). 유대 기독교적 배경에서 이 말들은 하나님의 구원 행위, 즉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확연한 현시임에 틀림없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비그(C. Bigg)는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하나님의 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 위대하심, 모든 속성들, 지혜, 의, 힘 등을 말과 생활로 공표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과 지혜 등을 선전 또는 선포하는 삶이란, 그리스도인이 주체가 되는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도구가 되는 삶이다(갈 2:20, 빌 1:21, 요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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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in C. Bigg.

ㅡ출처: 최세창, 야고보서‧베드로전후서(서울: 글벗사, 2001년, 3판 1쇄), pp. 394-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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