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교의학 I/1』에서 2장 “하나님의 계시”를 진행하면서, 1부분은 “삼중일신(Der dreieinige Gott)”, 『교회교의학 I/2』에서 2장 2부분 “말씀이 육신이 됨(Die Fleischwerdung des Wortes)”이고, 2장 3부분은 “성령이 부어짐(Die Ausgießung des Heiligen Geistes)”이다.

바르트가 제시한 하나님의 계시는 삼중일신, 말씀의 성육신, 성령이 부어짐의 구도이다. 우리는 Der dreieinige Gott를 ‘삼위일체’로 번역하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영역(英譯)에서도 Trinity가 아닌 The Triune God으로 구분하여 번역했는데, 우리 번역에서는 ‘삼위일체’ 한 어휘로 번역되고 있다. 삼위일체는 Trinity에 대칭해서만 번역해야 한다. Dreieinigkeit(삼중성)은 삼위(three person)과 같지 않다. 바르트가 그것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부분이 교회교의학 2장 1부 “삼중일신(Der dreieinige Gott)”이다. 번역자가 “삼위일체성”이라고 번역하는 용례가 있는데 적합한 번역으로 보기 어렵다.

그리고 2장 2부분 “말씀이 육신이 됨”에서는 “§ 13.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자유”을 제시했고, 2장 3부분 “§ 16. 성령의 부어짐”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자유”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3장에서 “성서”, 4장에서 “교회의 선포”로 『교회교의학 I/2』을 구성하고 있다.

“§ 13.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자유”에서는 “계시의 객관적 현실성과 가능성”을 제시했고, “§ 16. 성령의 부어짐”에서는 “계시의 주관적 현실성과 가능성”을 제시했다. 바르트는 말씀의 성육신에서는 계시의 시간과 비밀을 제시하면서, 그리스도의 양성 교리를 해체시킨다. 바르트는 『교회교의학, I/1』 2장 1부(Der dreieinige Gott, 삼중일신)에서는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경으로 삼위일체를 해체시켰다. 그래서 우리는 바르트의 Der dreieinige Gott를 ‘삼위일체’로 번역되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다. 바르트는 § 9에서 “해체될 수 없는 존재양식”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하나님(das Du)과 인간인 나(das Ich) 관계로 신학을 구성시킨다는 발상이다. 바르트는 특이하게도 콘스탄티노플 신조에서 2조(성자 하나님) 조항만을 주해했다. 그것을 필자는 전통적인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를 제거하고 자기 사상으로 재구성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전통적으로 성자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고백하는데(요 1:1), 바르트는 성자 하나님께서 창조주됨을 거부했다. 이것을 서철원 박사가 박사논문 과정에서 밝힌 내용이고, 바르트의 창조론을 평가할 때에 바르트가 삼위일체를 해체시켰다고 각주로 포함시켰다(The Creation-mediatorship Of Jesus Christ. A Study in the Relation of the Incarnation and the Creation, 1982).

바르트는 2장 2부와 3부를 “계시의 객관”과 “계시의 주관”으로 분화시켰다. 계시의 객관은 신에게 부착시키고, 계시의 주관은 인간에게 부착시켰다. 바르트는 1부에서 신 존재를 계시 안에서 인간에게 인식되는 수준으로 정리했다. 바르트는 신존재는 “계시 안에 있는 신”이다. 이 계시에 객관과 주관이 있는데, 객관은 신에게, 주관은 인간에게 부착시켰다. 바르트는 “계시 안에 있는 신”을 말하지만, 우리는 “계시하시는 하나님”말한다(참고. 프란시스 쉐퍼,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 이건 역, 생명의말씀사). 콘스탄티노플 신경(381년)에서는 성령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구도를 밝혔다.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한영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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