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선 목사(영등포 가마산교회, 장로교정치원리연구소)

오늘날 기독교 신앙은 지적인 요소보다는 감정적인 요소에 더 중점을 두고서 성립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신앙에 있어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와 온 인류의 구속주이시라는 진리를 확신하며, 이를 바탕으로 더욱 친밀하고 인격적인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사랑을 심령으로 체험하는 것이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지극히 보편적으로 퍼져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풍토는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로 사도들과 교부들에 의해 견지되었었던 신앙, 그리고 이후로 역사 가운데서 면면히 이어온 바른 교회의 신앙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종교적 풍토임에 분명하다.

프랑스에서 영향력 있는 신비주의자였던 잔 마리 부비에르 드 라 모트 귀용[잔느 귀용Jeanne Guyon: 1647-1717]이 정적주의의 풍토를 널리 보급했으며, 귀용은 캉브레의 대주교였던 프랑수아 드 살리냑 드 라 모트 페네롱(François Fénelon, 1651–1715)의 지지를 얻었었는데, 페네롱은 반정적주의(Semi-Quietism)라고 불리기도 하는 순수한 사랑에 대한 교리를 전개했다.

사실 그처럼 신앙에 있어 진리의 인식, 곧 지적인 이해와 동의를 동반하는 일련의 진전들 가운데서의 건전한 신앙을 벗어나서 주관적인 감정과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는, 기독교 외에 모든 자연종교(natürliche Religion)의 형식을 취하는 것으로서, 지은바 된 이 세계 밖에 계시면서 이 세계를 지으실 수 있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여느 피조물들과 같이 유한한 신으로서의 하나님을 상정하는 가운데서나 비로소 가능한 발상이다. 그리고 그러한 종교의 폐단을 극명하게 입증한 대표적인 무리가 바로 ‘정적주의’(Quietism)의 집단이었다.

‘정적주의’는 17세기 후반, 좀 더 자세히는 1670년대 후반과 1680년대 후반에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서 인기를 끌었던 일련의 이단적 신앙양상이다. 특히 미겔 드 몰리노스(Miguel de Molinos, 1640∼1697)와 페네롤(Francois Fenerol, 1651∼1715)등이 작성한 일련의 글들과 관련이 깊은데, 그들은 흠 없고 완전한 신자가 되는 길이 인간의 경건한 노력 곧 ‘능동적 행위’에 있기보다는, 자기를 완전히 하나님께 맡긴 가운데서 이뤄지는 영혼의 정적상태 곧 ‘완전한 수동성’의 상태에 있다고 보았다. 그런즉, 완전한 신앙상태에 이르려면 완전한 수동성과 자의지의 소멸, 심지어 자기 자신의 구원까지도 내려놓을 수 있을 만큼 신의 의지에만 절대적으로 순복해야 한다고 보았다. 바로 그러한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덕, 심지어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추구조차도 생각하지 않는, 단순하고 순수한 신앙으로 안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동성, 즉 완전한 수동성의 추구는 사실 중세시대 여러 신비주의자들과 수도원의 수도사들에 의해 보편적으로 추구되어 왔었기에, 평범한 신자들 대부분은 그다지 거부감 갖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맥락의 확장 가운데서 율법폐기론(Anitinomianism, 혹은 무율법주의)가 곳곳에서 환영받을 수가 있었다.

통상적으로 정적주의라는 용어는 보통 몰리노스의 교리를 말하는데, 스페인의 사제였던 몰리노스는 기독교인의 완전에 이르는 방법은 ‘명상’이라는 내면적 방법으로서, 이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모든 사람이 이 명상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몰리노스의 명상법은 어떤 것도 확정하지 않은 모호한 태도로서 하나님을 숙고하는 것인데, 이는 인간의 내적 능력과 자아를 억제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아울러 영혼은 모든 명확한 사고와 내적 활동을 배제한 채, 소극적인 정화(Passive purification)의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정적주의의 맥락에서 볼 때에, 무언가 적극적인 행동을 하려고 하는 것은 사람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하고자 하시는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는 상태를 통해서 인간의 영혼은 그 근원인 신적 존재로 돌아가게 된다. 그들에 따르자면 유일하게 실체이신 하나님은 이러한 ‘신비적인 죽음’을 거친 사람의 영혼 속에 살며 다스린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가 사라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것만을 원하며 행할 수 있다 했는데, 이러한 정적주의의 양상이 아직도 로마 가톨릭의 수도원들과 뜨레스디아스(Tres Dias)와 같은 영성 프로그램들로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정적주의 교리에 따르면, 때로는 마귀가 명상하는 신자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주인이 될 수도 있으며, 심지어 그에게 사악한 행동을 하도록 조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렇게 하도록 동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행동에 대한 죄가 그에게로 전가되는 것은 아니다. 수동적 상태에서의 죄의 전가는 전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수동성의 강조로서 볼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능동적으로 율법을 행하는 모범[혹은 의]를 보이신 것이 아니며, 다만 수동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obedientia passiva)으로서 구속을 이루신 것이다. 만일에 그리스도께서 율법이 요구하는 능동적인 순종(oboedientia activa)을 따르셨다면, 율법이 가하는 정죄 또한 그리스도께 전가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전적으로 의로우시며 악이 없으신 사람으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는 전혀 모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위 예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에 관한 논쟁의 발상은, 비교적 최근의 것이 아니라 이미 17세기 후반에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서 인기를 끌었던 ‘정적주의’의 이단설에서 그 단서를 제공받은 것이며, 이를 고상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에 접목하여 쟁론을 만든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정적주의의 발상은, 경건주의(Pietism)와 퀘이커교(Quaker 또는 Religious Society of Friends)의 일부 교리로서 상당히 유사하게 계승되어 왔는데, 다만 로마 가톨릭의 영향력과 통제가 강력했었던 프랑스에서 정적주의는 좀 더 완화된 형태로 나타났다. 특히 프랑스에서 영향력 있는 신비주의자였던 잔 마리 부비에르 드 라 모트 귀용[잔느 귀용Jeanne Guyon: 1647-1717]이 정적주의의 풍토를 널리 보급했으며, 귀용은 캉브레의 대주교였던 프랑수아 드 살리냑 드 라 모트 페네롱(François Fénelon, 1651–1715)의 지지를 얻었었는데, 페네롱은 반정적주의(Semi-Quietism)라고 불리기도 하는 순수한 사랑에 대한 교리를 전개했다. 그러므로 그러한 변모를 통해 정적주의는 로마 가톨릭의 수도사들이나 경건주의의 여러 개신교 분파들을 통해 면면히 그 영향을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개신교의 경건주의 분파들과 정적주의의 이단, 그리고 그들의 영향을 받아 퍼진 정적주의적인 포자들 가운데서, 상당한 지적 사유를 요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에 대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며, 언젠가 그 포자가 발아하게 될 때의 양상은 분명 지적인(intellectual) 진리의 판별이 아니라 체험과 감정에 바탕을 둔 현대주의 종교의 풍토가 될 것임을 유의해야만 할 것이다. 특별히 정적주의에서부터 퍼져 나온 수동성의 추구양상이 바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부인하려는 주장에 담겨있다고 볼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만을 인정하는 주장의 위험성이 이미 교회사 가운데서 역력했음을 통찰하도록 하자. 

장대선 목사(영등포 가마산 교회, 장로교정치원리연구소)
장대선 목사(영등포 가마산 교회, 장로교정치원리연구소)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