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숙 집사(포항충진교회)가 기독교신문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오경의 저자가 모세가 아니라 여러저자의 글들을 편집해서 만들었다는 자유주의적 주장들이 있다. 특히 19세기 후반에 벨하우젠이 오경은 전승된 여러 자료가 합쳐진 것이라는 자료비평을 내세운 후로 그런 주장이 있어왔지만, 모세오경의 저자는 모세임이 틀림없다.

그러면 오경은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오경을 누가 기록하였는가? 모세오경의 모세 저작설을 반대하는 주장들은 벨하우젠의 문서설 외에도 단편설, 보충설, 신문서설, 발달설, 최신문서설 등 다양하다. 왜 그들은 모세의 저작을 의심하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많은 연구와 학설을 발표하는가? 그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들이 인지하고 있던 하지 않던 간에 “성경의 권위의 약화”인 것이다. 성경을 하나님의 거룩한 도모에 의해서 성령의 영감으로 쓰여진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진리에 대한 도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성경을 단지 시대적인 필요에 의해서 인간에 의해 편집되어진 책으로 보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처럼 5경이 4가지(JEDP)의 자료에 의해서 먼 후대에 정치적, 종교적인 목적으로 편집되었다면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책이란 말인가?

문서설의 주장은 결과적으로 ①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게 되고, ②성경의 영감설을 부인하고, ③성경의 능력을 부인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다시 말해 성경은 하나의 문학작품이나 유전, 전설, 역사적 기록, 고전 등에 불과하게 만들어 버렸다. 필자는 오경이 모세가 저자임을 확신하며 그 증거를 말하고자 한다,

가장 핵심은 모세가 저자임은 성경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출 17: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민 33:2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 노정을 따라 그들이 행진한 것을 기록하였으니 그들이 행진한 대로의 노정은 이러하니라 

출24: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신31:9 또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그리고 구약의 나머지 책들이 신명기를 모세의 저작으로 돌린다(참고, 삿 3:4, 왕상 2:3, 왕하 14:6, 스 3:2, 느 1:7, 시 103:7, 단 9:11, 말 4:4).

신약에선 눅24: 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즉 예수님이 모세가 저자임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신약의 많은 구절이 신명기를 모세의 저작으로 알고 인용하였다(마 19:7, 막 12:26, 눅 24:27. 44, 요 7:19. 23, 행 13:39, 15:5, 28:23, 고전 9:9, 고후 3:15, 히 9:19, 10:28). 탈무드와  역사가 요세푸스도 그렇게 전한다. 그렇다면 모든 오경의 글짜가 다 모세의 글인가? 그것은 문서설과는 다른 의미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오경을 모세가 저작했다는 뜻이 그 글짜 전부를 일일이 다 기록했다는 뜻은 아니다 역사 기록, 율법 부분, 시적인 문헌 등 중요핵심 부분 거의 전부를 모세가 기록한 것은 틀림 없다 다만 부분적으로는 수정 내지 첨가되어져 전승되어졌다고 본다, 복합적이고 혼성적인 그 구체적 전승과정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이러한 과정도 틀림 없이 하나님이 동일하게 감독하시고 영감을 주신 것으로 우리는 믿는다,  오경뿐 아니라 모든성경은 유기적영감으로 된 것으로 하나님께서  저자의 지식 문화 등을 사용하여 성경을 쓰도록 하신 것으로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그러므로 모세가 쓴 오경중에는 모세가 이전의 문서를 인용한것도 있고 후대에 수정내지 첨가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수정 내지 첨가 된 것과 문서설(후대 편집설)과는 전혀 다른 뜻이다. 문서설은 아시는 대로 하나님의 명칭, 본문 내용의 중복 여부, 어휘와 문체의 유사성, 신학적 관점 등을 기준으로 해 오경의 본문을 네 자료로 구별지은 것이다. 그래서 모세의 저작이 아니라 야웨 기사(J), 엘로힘 기사(E), 신명기 문서(D), 제사장 문서(P)를 여러 시대에 걸쳐서 여러 작가들이 집대성해서 포로시대나 그 직후에 편집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수정 혹은 첨가는 A. Grisanti란 신학자가 “Maintenance Changes”라고 표현했듯이 후세대의 독자들에게 더 읽히기 쉽도록 고친 것이다. “maintenace(보수)”는 “renovate(혁신)”나 “rebuild(재건)”와는 다르다.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브레이크 패드나 엔진 오일을 가는 것은 보수인 반면에 신형 엔진, 구조 개선, 모델 체인지 등은 혁신 내지 재건이다. 보수는 자동차를 있는 그대로 가만 두고 단지 작동만 잘 하게 하는 것인데 반해 혁신과 재건은 완전히 새로운 자동차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세 후대의 수정(Post Mosaic Update)내지 첨가는 모세가 저작한 내용과 본질을 하나 변경 없이 동일하게 유지하되 최초 저작에서 정경화까지 천년이나 걸렸기에 부분적 보수 과정은 반드시 있었어야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런 수정과 첨가로 인해 최초 저작에 부여된 하나님의 영감과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무오류성은 절대로 손상이 안 되었을 뿐 아니라 또 그런 과정 중에도 영감성과 무오류성은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그런데 편집설(문서설)을 주장하는 근거로서 다른 사람들이 쓴 내용들이 몇군데에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저자가 여러사람이라는 말이 아니다. 먼저 모세오경에는 모세가 이전의 다른 기록들을 인용한 것들이 있다. 

창세기 5;1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이때 책은 이미 문서화된 것으로 모세가 성령의 감동으로 진실된 사실을 인용한것이다 

출24:7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이런 경우 모세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다른 문서들을 인용(차용)한 것이기에 모세가 저자임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오경을 쓰셨음을 더욱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편

신 34: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

이것은 분명 모세사후의 얘기이다. 특별히 모세의 죽음에 대한 신명기 마지막 장(34장)은 아마도 그 시대의 관습에 따라 후계자 여호수아가 썼을 것이다. 

그리고 창34;10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이는 모세이후 이구절을 추가한 시기까지 그런 선지자가 없었다고 본다.

민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이것도 모세가 적은게 아니라고 본다. 또한 오경뿐 아니라 다른 성경에서 가끔 나오는 오늘날까지라는 말이 쓰인것들도 이후시대에 추가된것이다.

창19:9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창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오늘날까지란 모세이후 오랜 세월이 지난 것으로 본다.

특히 창14:4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에서 
단은 여호수아가 붙인 말이므로 그 이후 사람이 적은 것이다. 모세는 “Laish”로 기록했지만, “Dan”이라고 지명이 변경된 이후에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성경 보관과 유지의 책임을 맡은 한 기록자가 해당 성경 기록을 수정한 것으로 본다.(신33:22, 34:1도 동일한 경우로 간주함)

그리고 창세기 36장 31절에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던 왕들은 이러하니라”가 나오는데, 이 구절에 의하면 창세기를 기록한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모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사사시대 후에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기 때문에 사울 이후에 살았던 사람이 그 구절을 기록한 것이 분명하다. 이 또한 후대에 수정된것이다,

그러면 왜  누가 모세오경을 수정했을까? 맛수라 학자들이 필사하고 가르치면서 더 잘 가르치기 위해서 혹은 에스라가 백성들이 히브리어를 잘모르는 상황에서 성경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 허구가 아니라 사실임을 확증하기 위해서 내용을 추가한 것이다. 이또한 성경을 당위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영감으로 수정되어진 것이므로 하나님의 권위에 손상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말씀을 더욱 단단히 한 것이고 모세가 저자임을 말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면 이제 벨하우젠이 모세가 저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몇가지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며 반론하고자 한다.(이부분은 모세오경-9장 오경의 저술을 중심으로: 고든 웨함 지음, 박영대 옮김, 성서유니온선교회, 2007.)에서 발췌함

1. 하나님의 이름의 다름(여호와:Y자료, 엘로힘:E자료 설)

하나님의 이름의 차이점들은 오경에 관한 현대이론에 열쇠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문서설 연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창세기의 엘로힘이 33번 나오며, 여호와 엘로힘이 20번, 여호와가 10번 나온다. 

①“여호와”와 “엘로힘” 사용에 있어서 규칙적인 차이를 찾아볼 수 없다. 어떤 경우에는 여호와를, 어떤 경우에는 엘로힘을 사용함에 있어서 어떤 규칙이나 반복된 변화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②이름이 결합되어 나오는 경우는 문서설로 설명할 수 없다. 창세기 2장과 3장에서 20번이나 함께 결합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엘로힘은 창조주 하나님을, 여호와는 구속주 하나님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었다. 창조와 구속의 개념이 함께 들어있는 문맥 속에서는 엘로힘과 여호와가 함께 등장하는데 이럴 경우에는 어떻게 문서를 구분할 것인가?

③문서설의 주장처럼 엘로힘과 여호와를 나누어 버린다면 문장이나 문맥이 절단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문맥에 따라 각자의 강조점을 가지고 사용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이것을 가자고 확대된 분해를 시도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본문을 절단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고야 만다. 

④성경은 자주 이름을 다양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계속적인 반복의 단조로움을 피한다.

⑤어떤 경우에는 이름을 다르게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다양한 측면과 관계들을 제시하고 있다. 

⑥또 한편으로 정확하고 빈번한 반복은 단조롭기는 하나 인상적이고 강조적인 용법으로 사용된다.

2. 반복과 중복에 대한 문제

문서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오경의 기사들은 독특한 두 개의 특징을 가진 문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이 오경을 다른 문서설이 편집되어진 근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①성경에 많은 반복이 있는 것이 사실이나, 그러나 반복은 히브리문체에 있어서 하나의 특징적이다. 

②문서설의 주장은 창세기 1장과 2장은 인간의 창조에 대해 서로 다른 설명을 하고 있으므로 이는 저자가 다른 두 개의 문서에 대한 증거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두 기사는 완전한 다른 기사가 아니다. 둘 사이의 차이는 다른 목적을 보여준다. 두 가지 사건이라기보다는 하가지 사건을 두 가지 목적을 가지로 기록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③족보들의 중복에 있어서도 다른 두 문서가 아니라, 이 두 족보는 다른 문서가 합쳐진 것이 아니다. 그 목적에 따라 그 내용도 달라지는 것이다.

3.문체의 차이에 대하여

문서설 학자들은 오경에 저자가 다른 여러 문서들이 있다는 것이 문체가 다양한 것에 의해 입증된다는 주장이다. 문서설자들에 의하여 J 문서는 이야기꾼 이고 하나님에 대해서 의인적이고 친근하게 표현을 하고 있고 E는 하나님 대신에 천사가 말하게 하는 등 좀 더 초연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P는 연대, 족보, 목록 같은 것에 관심이 많고 문체가 열거식이고 기계적이다. 이러한 그들의 주장에 대해 몇 가지 반박을 하고자 한다. 

①그들이 말하는 소위 그 저자들의 아무 문서도 보존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실 우리는 그들의 문체를 비교할만한 아무런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②그렇기 때문에 비평가들도 창세기 이외에서는, 그리고 창세기의 어떤 구절까지도 J와 E로 구분하려고 시도하기 보다는 단순히 JE라고 명칭을 붙인다. 

③그들이 문체의 차이라고 한 것은 실상은 주제의 차이다. 주제에 따라 같은 저자라도 다른 문체를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④실제로 하나의 작품 안에서 다른 문체들을 구분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모세오경 9장에서)

그리고 래니(J. Carl Laney)는 문서설의 오류를 아래와 같이 다섯 가지로 지적하였다. 

첫째로, 문서설의 가장 큰 문제는 성경에 대해 비초자연적 접근을 한다.  이들에 의하면 오경은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유오한 말씀이다.  모세의 저작을 부인함은 물론 기록된 역사적인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성경과 모순이다(딤후 3:16-17, 벧후 2:20-21).

둘째로, 문서설은 순환논법으로 물들어 있다.  그 비평은 오경은 인식 가능한 문학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으며 일관된 특징을 가졌다는 결론을 단정한다.  본문을 연구하면서 각 요소는 그것의 특수한 특징에 돌린다.  그리고 나서 성경적 본문에 있는 특징들을 JEDP 문서에 오경의 각 부분을 돌린다.  문학적 요소들을 발견하고 문서들을 분리하는 전 과정이 순환적이다.

셋째로, 문서설은 출애굽기와 신명기의 문학적 통일성을 지적해 주고 있는 15-13세기 봉주 조약에 대해 특별히 연구한 비평주의에서 얻어진 자료들에 의해 서서히 무너져 왔다.  그것은 신명기와 출애굽기의 부분들은 이 책들이 문학적으로 통일되어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당대의 조약들에서 설정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는 규칙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들은 다른 문학적 문서들에서 빌어 온 작은 조각이나 부분들이 아니다.

넷째로, 설화식 문학은 신에 대한 다양한 명칭들의 기초로 구분되어질 수 있다는 논거는 매우 약하다.  자주 J 문서가 엘리힘을 E 문서가 야웨란 이름을 사용한다.  

마지막 다섯째로  소위 쌍둥이로 불리는 병렬 구절은 두 개의 다른 문학적 특징이나 전통적 설명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창세기 1-2장의 내용들은 둘이 아니라 하나의 창조를 설명한다.  창세기 1장은 제2장이 남자와 여자의 창조에 초점을 맞춘데 비해 우주의 창조를 일반적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기술은 고대 셈족 문학에서 아주 넓게 시행된 것이었다(2).

따라서 이성적이며 진화론적인 접근 방법의 성경비평은 성경적이지도 않지만 온전한 이성적 비평주의도 되지 못한다.. J. Carl. Laney, Answers to tough Questions(Grand Rapids: Kregel, 1997), pp.51-53

결론적으로 오경은 모세가 저자이며 몇구절이 후대에 첨가내지 수정되었지만 본래의 의도와 의미와 뜻을 전혀 손상치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임을 더욱 확고하게 확증하게 위해서 더욱 성경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 된것임을 알수 있고 이는 하나님이 영감에 전혀 손상이 되지 않는다,

신명기는 율법서로 신약에서 대부분 인용되며 자주 모세가 참으로 말했다(행 3:22).  모세가 말씀하기를(롬 10:19) 혹은 모세의 율법이 기록되었다(고전 9:9)와 같은 말로 인용되었다. 우리 주님이 그가 마귀를 대적하실 때(마 4:7; 눅 4:12)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명기를 인용하셨다(6:13). 그리고 주님은 직접 그것을 모세의 저작으로 간주하시면서 모세가 말하되(막 7:10) 혹은 모세가 썼다고 하셨다(눅 20:28). 또한 그 책의 지리적이고 역사적인 상세함이 그 저자는 모세가 경험했던 것과 같은 목격자였음을 나타낸다.

이제 우리는 오경의 저자가 모세임을 다시 확인하며 성경말씀이 진리임을 다시 확신하게 된다.

김완숙 집사
김완숙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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